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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좀 그만 괴롭혀라

'리얼'이란 이름으로 노동하는 아이돌 스타들

등록|2010.03.15 18:12 수정|2010.03.15 18:21
아이돌의 노동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 키워드인 '리얼' 때문이다. 저 옛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지만 요즘 리얼은 예전처럼 단순한 권장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핵심요소다. 방송이 리얼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바로 비판을 가할 정도이다. 이를테면 <패밀리가 떴다>의 일부 대본이 공개 됐을 때 시청자들이 <무한도전>과 비교하며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보자. 싫든 좋든 리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방송의 피할 수 없는 대세, '리얼'

▲ 최근 등장한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리얼을 콘셉트로 잡고 있다. 사진은 <패밀리가 떴다2>에 출연하는 소녀시대 윤아. ⓒ SBS


그러다 보니 최근 등장한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리얼을 콘셉트로 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그 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누가 다 출연하냐는 것이다. 일반인 대상 리얼리티도 있고 동물 리얼리티도 있지만 진짜 답은 간단하다 - 바로 아이돌이다.

요 몇 년간 <와일드바니><스캔들><Off the Rec><2ne1 TV><샤이니/소녀시대의 헬로베이비><티아라닷컴><2AM Day> 등 여기서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그만큼 많은 아이돌이 출연하고 있다. 여기에 '리얼'을 콘셉트로 한 <강심장> 같은 토크쇼까지 포함시킨다면 그 범위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 출연하는 아이돌의 노동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제작 조건과 영상 언어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돌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삶 자체를 카메라 앞에 전시해야만 한다. (지난해 9월에 종료되기 했지만) <2ne1 TV>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 막 2ne1은 SBS 인기가요에서 무대를 마쳤다.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2ne1 TV> 카메라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미처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카메라에 찍혀야 하는 것이다. 아니, 찍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카메라에 말을 걸어야 하고, 농담 한 마디라도 더 하면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때 노동/비노동의 구분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이게 다가 아니다. 2ne1은 방송 기간 동안 숙소 현관에서부터 주방에 이르기까지 각 방 마다 카메라를 달았으며 각 멤버들의 침대에도 카메라를 달았다. 여기에 추가로 한 대 이상의 카메라가 멤버들을 따라 다닌다(마이크 때문에 카메라가 적어도 멤버들의 반경 2미터 안에는 있다고 봐야 한다).

이미 리얼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볼 만하다면

▲ 소녀시대는 무대 연습도 해야 하고, 아기도 돌봐야 하고(<소녀시대의 헬로 베이비>), 농촌 생활도 해야 하고(<청춘불패>)한다. 사진은 청춘불패 홈페이지 캡처 화면. ⓒ KBS


이 정도 수준이면 이제 더 이상 리얼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돌이 자신의 삶 자체를 '볼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카메라를 향해 아침 인사를 해야 하는 아이돌이라니. 포스트모더니티 사회의 노동의 한 극단을 현재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멤버들이 아무리 카메라 앞에서 잘 놀아도 이것만으로는 내러티브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기 어렵다. 게임을 하고 미션을 수행하고 몰래카메라를 찍어도 자칫하면 식상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제작자는 '한 방'을 준비하는데, 이때 많이 선택하는 것이 눈물이다. 이를테면 화룡점정이랄까.

이때 그 눈물의 감정 노동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사람도 역시 아이돌이다. 끊임없이 웃고 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눈물은 진짜 울지 않고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감정의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산다라박과 박봄은 자기 코앞에 놓인 카메라 앞에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떨어뜨렸으며, <IVY BACK>의 아이비는 카페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제작진이 눈물을 강요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녀시대가 <김정은의 초콜릿>에 나왔을 때 제작진은 한 멤버의 어머니를 출연시켜 편지를 읽게 하는 강수를 뒀고, 어머니가 안 계신 티파니는 결국 울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무대가 곧 모든 멤버들의 울음바다가 됐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초콜릿>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이 정도다.

정리하자면 - 이제 소녀시대는 무대 연습도 해야 하고, 아기도 돌봐야 하고(<소녀시대의 헬로 베이비>), 농촌 생활도 해야 하고(<청춘불패>), 결혼 생활도 해야 하고(<우리 결혼했어요>), 갯벌에서 라면도 끓여야 하고(<패밀리가 떴다2>),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서 눈물도 흘려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일상을 둘러싼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고달파질 아이돌의 리얼 노동

아이돌들의 이러한 노동 조건은 이제 앞으로 더 고달파질 것이다. 애초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즐거움은 리얼리티(reality)와 리얼(real) 사이의 긴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시청자가 즐기는 것은 현실감이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 바로 그 현실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황우슬혜가 이선호보다 연상이었다든지(이 커플은 우결에서 가장 빨리 하차한 기록을 세웠다), 알고 보니 '6PM'이 재범의 복귀를 반기지 않았다든지(이 그룹은 앞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 것이다) 하는 정말 '리얼'한 것은 리얼리티라는 환상구조가 만드는 즐거움을 깨트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자와 시청자는 더 리얼해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니 이것은 일종의 치킨런 게임이다. 리얼을 추구해야 하지만 정말 리얼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걸 아이돌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에게 주어진 건 카메라 앞에서 더 '빡세게' 자신을 드러내거나 그러다 '선'을 넘어버려 끝장이 나거나 둘 중 하나이다. 현재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앞에서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는 이유도 아이돌이 처한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나 더 리얼해져야 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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