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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당한 소수'인가!

오연호대표의 25년전 기고문... 김예슬양 떠올라

등록|2010.03.15 21:02 수정|2010.03.15 21:02

▲ 25년전 오연호대표기자는 '우리들의 발언대'를 통해 '당당한 소수'를 바라보는 '머뭇거리는 다수'를 향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 동아일보



누가 '당당한 소수'인가!


25년 전인 1985년 3월12일 <동아일보> '우리들의 발언대' 신문지면. 당시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깨어있는 젊음' 오연호 학생은 이렇게 외친다.

<누가 '당당한 소수인가'>(오늘의 학원, '의사교환'풍토부터)라는 제목으로 당시 <동아일보>에 '우리들의 발언대'란에 감히 기고한 글은, 당당함과 정당성을 가지고 가식없는 양심으로부터 우러나온 행동을 공감대로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이미 25년 전에 최근 김예슬씨의 소신있는 행동과 자퇴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미리 예언한 것은 아닌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오연호 대표는 당시 기고문에서 '당당한 소수'를 바라보는 '머뭇거리는 다수'를 향해 이렇게 주장한다.

인류가 사용해 온 낱말들은 그 자체 속에 선악의 가치개념이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한자어 '소수'(작은수)라는 말이 생겨난 이래 지난해 같이 곤욕을 치른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요즈음 우리는 학원문제를 다루는 언론과 정부발표문에서 '대다수 선량한'에 대한 대비 개념으로 '극소수 극렬'이라는 용어를 자주 발견한다.

지난해 서울대 결시율 80%이상이라는 기사를 실었던 신문에서는 '당당한 소수'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대부분의 선량함에 밀려 항상 나무람만 당해온 '소수'가 모처럼 '당당한'이라는 말과 어울린 것을 보는 것은 반갑기조차 했었다. 부당징계 철회, 학원자율, 사회 민주화를 외치는 결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험을 치른 소수와, 그 외침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소수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는가를 보여주는 일면인 것 같다.

건실한 의사교환과 확인의 기회가 마련되지 않거나 외면될 때 옳은 소수는 다수의 횡포에 의해 무시되고 싶고 순진한 다수는 狂人(광인)을 따라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당당하지 못한 다수를 '당당한 소수'와 함께 걷도록 유도하기 위해 '소신, 부모님 걱정, 본분, 어렵게 들어간 대학, 있는 돈 없는 돈' 등을 들었고 적극 앞장선 소수학생은 머뭇거리는 다수에게 함께 하자며 '자유는 희생을, 시대아픔에의 동참, 허위는 진리에 의해, 민족양심'등의 말을 썼다.

같은 소수지만 한쪽은 보살핌과 격려를 받으며, 다른 한쪽은 나무람을 들으며 공존했으나 나무람을 받은 소수의 원성은 계속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소수가 제약없는 의사교환과 확인을 통한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인정될 때 진정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학원문제는 활발한 의사교환과 확인과정을 거치며 서로의 주장간에 갈등을 없애야만 한다.

의사교환과 확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요구가 나올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당당함이 정당성을 가지고 가식없는 양심으로 부터 우러나온 행위를 일컫는다는 평범한 확인과 그 실천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하다면 진정 당당한 소수는 누구이며 어떤 소수의 주장이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우리의 공감대로 형성되어야할 가치를 지녔는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오연호<연세대국문과3년> -1985년 3월12일 동아일보 '젊은이광장'중에서

오연호 대표의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소수'의 믿음은 결국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을 바꾸고 말았다. '머뭇거리는 다수'를 향해 의미의 메시지를 던졌던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25년 전의 외침처럼 오마이뉴스를 통해 '머뭇거리는 다수'를 향한 '진정한 소수'가 되는 참여민주주의의 꽃으로 찬란히 피어나기를 주문한다.

얼마 전 김예슬씨가 '학교를 자퇴하면서'를 통해 제시한 문제들은, 이미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체감하고는 있지만 회피하고 싶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마도 오연호 대표의 25년 전 기고문이 던져주는 상징적의미는, 김예슬 양의 소리없는 외침을 단지 '소수의 문제'로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울림을 받았다면 실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대자보 붙이신 분이 저런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쓸데없이 냉소적인 이곳 리플들을 보고 두 번 안타깝네요. 요즘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닌 기업의 인재생산라인으로 전락한 사실, 20대 청년들이 꿈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현실... 저 대자보에서 딱히 틀린 말 한 것 있나요? 저는 못 찾겠네요. 사람마다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저분은 약간은 특이하고 약간은 과격한 방법을 택하신 것 뿐이고, 그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뿐일 겁니다. 그 의도가 자신이 이런 길을 택하게까지 한 사회와 학교에 대한 도전의 표시이든(뭐 저는 이쪽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분들 말대로 용기를 얻기 위해서든, 왜 그 의도를 가지고 삐딱하게 바라봐야만 하나요? 막말로 길바닥에서 전도하는 사람들마냥 같이 자퇴하자고 붙잡는 것도 아니고요. - 고파스(http://www.koreapas.net) 댓글중에서(아이디 : 삶은달걀 2010-03-10 13:14:36)

나는 오연호 대표기자의 25년 전 글로 인해  하루종일 감동과 자책, 그리고 충격에서 빠져 나올수 없었다. 오늘따라 그 노래가 생각나는것은 왜일까?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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