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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21회)

강물 속에 숨다 <1>

등록|2010.03.16 10:41 수정|2010.03.16 10:41
사내 손길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단 종년을 집안에 들였으면 값을 치른 재물만큼 값어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임철형(林喆衡)의 일이었다. 이팔의 나이로 뽀얗게 일어나는 솜털이 햇살을 받은 수련(水蓮) 같아 아랫도리가 묵직해지고 한결 기력이 들끓었다.

그동안 강정에 힘 쓰고 정력을 보한다고 마신 약재도 그만해 계집의 속살을 더듬는 중에도 금방 폭발할 듯이 부풀어 있었다. 사내의 혀끝이 닿자 계집은 '나으리, 나으리' 하며 잦아지는 아양만 쏟아낼 뿐 응접을 한다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법이 없었다. 그게 이집 주인 임철형의 욕념에 불을 활활 지폈다.

급기야 은밀한 곳을 찾아들었을 때 계집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그게 사내에겐 여간 즐거운 모양으로 다시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가 힘껏 앞으로 전진시켰다.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를 듯 입을 벌리는 종년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죽는다고 사지를 비트는 계집의 고통쯤은 아랑곳없이 쉰 넷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두 번이나 방사를 치르고 혼곤한 잠 속에 빠져들었다.

하복부가 떨어져나간 듯한 고통이 엄습해 오던 중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종년은 깊은 혼돈의 잠 속에 빠져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악몽에 시달리며 비 오듯 땀을 흘리다 겨우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첫닭이 울었다.

"야 이년아. 주인 나으리가 새로 온 종년을 찾으실 거니 오늘밤 네가 들어갈 거야. 나으리가 어찌 나오든 절대 거부하면 안 돼. 그런 행동을 하면 너를 비롯해 우리까지 곤욕을 치를 테니까. 나으리 하는 대로 이를 악물고 일을 치르되 첫닭이 울면 나와야 해. 안방마님이 아는 날엔 네 년은 뼈도 못 추릴 것이야. 알았어? 첫닭이야, 첫 닭!"

사랑채로 가는 길에 사금(絲今)이가 들려준 당부이자 경고였다. 겨우 몸을 일으켜 벗어놓은 고쟁이와 적삼을 찾으려 주섬주섬 손을 움직였다. 옷가지는 잡히지 않고 무언가 손끝에 끈적하게 묻었다. 피였다. 불을 켜니 이부자리는 온통 피범벅이었다.

"아악!"

지난밤 여주 관아엔 한양에서 온 손님이 여주 관찰사 서길원(徐吉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던졌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바람 따라 천하를 돌아다니는 얘기꾼이니 사람들이 자신을 풍설가(風說家)라 부른다 했다.

행색이 선비 차림이니 홀대하는 게 마뜩치 않을 것 같아 서 관찰사는 상대의 말에 미소로 화답하며 귀를 기울였다.

"전라도 고흥에서의 일입니다. 평소 민화(民畵) 모으기를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한 관리가 있었지요. 그의 취미는 고흥에 부임했을 때도 계속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돈냥이나 있고 한량인 체 하는 작자들도 그 집을 기웃거렸어요. 근처를 지나는 사내들도 관청에 들려 자신이 얻어 들은 얘기 한 토막으로 하룻밤 신세를 대신했으니 관청 숙소엔 항상 외래객이 붐비기 마련 아닙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요."

한양 손님은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얘기는 꽤 오래 동안 이어져 첫닭이 울 즈음에야 끝났다. 잠자리에 든 관찰사는 한양 손님의 얘기를 곱씹으며 가닥을 추려보았다.

'가만, 그 손님이 도라지 타령에 대해 뭐라 했지? 왜소무력(矮小無力)이라? 으흐흐흐, 도라지가 사내 양물이며 타령이라는 게 양물에 대한 비유라? 해서, 네가 내 간장을 태운다는 건 형편없이 작고 힘이 없는 잠지라 그런 노래가 불러진 것이라? 으흐흐흐 말이 돼. 참으로 말이 되는 소리야.'

피곤해 금방 잠이 들 것 같은 몸은 선잠 깨인 아이처럼 조금 전에 들었던 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하나씩 일어섰다. 아무래도 한양 손님이 지적하는 고흥 사또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한 참판 벼슬을 지낸 임철귀(林喆龜)를 가리킨 것 같았다. 한양 손님의 목소리가 뇌리 한 귀퉁이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 분이 고흥 사또로 있을 때, 누군가 좋은 땅이 있다고 귀띔한 모양입니다. 풍수사들이 말하는 어옹수조형(漁翁垂釣形)이란 길지지요. 물고기는 수호신으로 집안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잠을 잘 때도 눈 뜨고 있다고 믿기에 절에 있는 풍경(風磬)도 물고기 형상이고 집에서 쓰는 자물쇠도 물고기 형상입니다. 이곳에 묘를 쓰면 나이 지긋한 노인이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이니 장차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가 이름을 떨친다는 곳이지요. 쌀 스무 가마면 그 장소를 일러드리겠다는 말에 사또는 집안 일을 도맡은 집사에게 그 일을 처리케 하여 그 땅을 사들였습니다. 한데, 세월이 흘러 그곳에 부임한 사또는 중앙정부의 관리가 돼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지낸 탓에 자신이 그런 땅을 샀는지 아니 샀는지도 몰랐습니다만, 몇 해가 지나 길지라는 그 장소를 파헤치니 사람의 유골이 나오더랍니다. 유골의 임자는 땅을 팔겠다고 고흥 관아를 찾아간 풍수사였으니 이 또한 황당한 일이 아닙니까."

때마침 첫닭이 울기에 얘기는 여기에서 접고 다음날로 미뤄졌다. 그러나 의문이 가는 얘기는 끝내 서 관찰사의 잠자리를 어지럽혔다. 그런 이유로 관아의 문을 열자 서둘러 한양 손님을 불러들였다.

"지난밤엔 경황이 없어 내가 결례한 것 같습니다. 지난밤 매듭을 짓지 못한 얘긴 어찌 결말났습니까?"

"참으로 묘한 일이지요. 풍수사가 좋은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노라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됐어요. 가족들은 가장이 없는 상태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풍진 세월을 견뎠겠지요. 마침내 풍수사의 부인이 병으로 죽기 전 홀로 남을 딸자식에게 땅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하여 장지를 정했는데 그 곳에서 풍수사의 유골이 발견됐으니 너무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그 딸아이는 관청 앞에서 꽹과리를 두들겨 탄원해 이 일을 알렸고, 급기야 사헌부에서 관원을 파견하게 됐습니다."

"하면, 그쪽이?"
"그렇소이다. 정약용이라 합니다. 명을 받고 이곳에 왔으나 이미 당사자가 세상을 버렸으니 사건이 종결된 것이라 보고 돌아가려다 이렇듯 좋은 분을 만나 한담을 나누게 됐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십년지기처럼 화기애애 진행되었다. 겨우 10여 분이나 되었을까. 관문 앞자락이 떠들썩하며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관노를 보내 사정을 알아보았더니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고변이었다.

서 관찰사는 즉시 의생(醫生)을 비롯해 율생(律生) 및 오작사령(仵作使令)을 대기시켰다. 준비가 끝나자 서 관찰사가 정중히 정약용에게 청했다.

"아무래도 동행하여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의생과 율생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각기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았다. 서 관찰사가 의생 한 사람을 불러 턱짓으로 지시를 받으라 귀띔하며 주위를 물리자 정약용이 앞으로 나서며 의생에게 물었다.

"시장을 작성해 봤는가?"
"양식만 보았을 뿐입니다."
"시형도(屍形圖)를 펼쳐 내가 부르는 위치에 기표하게. 나의 웅얼거림까지도 적어 넣어야 하니 정신 바짝 차리게."

즉시 조사에 들어갔다. 형식적이지만 은비녀를 입안에 꽂아 독물의 유무를 따진 다음 겨우 앞가림을 하고 있는 팬티 한 장을 경계 삼아 상하 전후의 상처 흔적을 살폈다. 상처는 얼굴뿐이고 다른 곳은 없었다. 칼에 찔린 자국이라면 머리 위와 귀의 뒤, 그리고 목 밑의 인후(咽喉)였다. 깊이가 심하였던지 피 흘린 양이 그것을 대변했다. 범인이 칼을 휘둘렀을 때, 엉겁결에 잡은 탓에 죽은 자의 두 손은 피가 흘러 굳은 채였다. 의생이 긴장하는 가운데 검시기록이 작성됐다.

"칼을 사용해 살해하는 경우, 살아있는 사람이 칼날에 상해를 입어 죽었다면 어쩌리라 보는가. 의생은 말하라."

화들짝 놀란 낯으로 의생이 대꾸했다.

"피육은 긴축하고 사방에 피가 어립니다."
"사지가 절단됐다면 어쩌리라 보는가?"
"근골과 피육이 엉겨 붙습니다."

"죽은 사람이 베이고 잘린 경우는 어떤가?"
"주검의 피육과 피는 그대로 있습니다. 피는 흘러내리지 아니하며 베인 곳의 피부 역시 오그라들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칼날이 끝난 곳엔 피가 흐르지 아니합니다."

"색깔은 어떤가?"
"흽니다."

칼날은 한결같이 급소를 노린 치명상이었다. 놓여 있는 베개가 두 개인 것으로 보면 분명 누군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돼 이곳을 무시로 드나든다는 사금이를 불러 닦달했다. 그것은 서 관찰사의 몫이었다.

"누가 함께 있었느냐?"
"어제 이 집에 온 초희(初姬)란 년이에요."
"불러오너라."
"그게···."

"어찌 그러느냐, 불러오라는데도!"
"사실은 광에 갇혔어요. 어젯밤 주인 나으리의 잠자리 시중을 들었는데···, 나으리가 그 지경이 됐는데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화가 난 안방마님이 치도곤을 안겨 광에 가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몰골은 처참했다. 가죽 띠로 얼마나 맞았는지 적삼엔 피가 배어났고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시 의생을 불러 치료하라 명한 후 조사는 반 시각 남짓 지나 시작됐다. 그 자리엔 안동 권문의 기세 좋은 안방마님이 자릴 함께했다.

"지난밤 일을 기억하는 대로 말하라!"

초희가 머뭇거리자 사금이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 일이라면 제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주인 나으리께선 이 집에 종년이 처음 오는 날엔 안방마님 모르게 사랑채로 불러들이는 게 행사처럼 돼 있습니다. 이 집에서 종살이를 편히 하려면 무엇보다 바깥양반의 손길을 타야 가능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여기 있는 초희 역시 정해진 순서대로 밤일을 치러야 합니다. 이런 때엔 나으리께선 안방마님의 외도를 모른 척 눈 감아 줬습니다."

안방마님 권씨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금방이라도 때려잡을 듯이 사금이를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 이년! 어디서 돼먹지 않은 수작이냐! 네 년이 죽기를 각오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이젠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나! 네 이년을 그냥···."

주위에 집어들 물건을 찾는 모양이지만 특별한 게 보이지 않자 씩씩대며 단숨만 몰아쉬었다. 그녀의 귓가에 사금이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우리 같은 종년에게 나으리는 안심하라 했어요. 나으리가 우리 속살을 더듬을 때면 안방마님의 침소엔 주사(主事) 일을 보는 모구서(毛鳩西)란 놈이 온다고 했으니까요. 그 놈이 잘못한 일이 몇 가지가 있는데 때가 되면 그놈과 마님을 엮어 쫓아내겠다 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안방마님은 모구서가 오길 목 빼고 기다렸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지난밤에도 그 자가 이 집에 왔느냐?"
"예에. 주인 나으릴 만나고 잠시 안방마님을 뵙고 돌아갔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오!"

안방마님 권씨는 그 말을 홱 던지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버렸다.

다음날 여주 관아로 소환된 모구서의 입에서 흥미로운 일이 밝혀졌다. 판사를 지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낸 임철귀가 동생을 불러 어떤 집안의 여식을 보살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녀는 명당자리를 팔러 온 풍수사의 딸이었다.

심부름을 한 것은 그 댁 사인 모구서였다. 그렇게 넉넉한 재물을 준 건 아니지만 한 때의 호구지책은 해결하였을 것으로 생각한 쌀가마를 주었다 믿은 탓에 그 집안의 근황을 알아오게 했으나 이미 그의 집안은 거덜 났고 어미가 죽은 후 홀로된 딸년이 격쟁을 신청한 후 여주 땅 어딘가에서 잡일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되자 임철귀는 동생을 불러 풍수사의 딸  초희를 부탁했으나 차일피일 데려오길 미루다가 천계(天癸)가 열렸다는 말을 듣고 다섯 달 남짓 지나 쌀 열 가마를 주고 데려왔다. 이 일엔 모구서가 나서서 처리해 주었지만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모구서가 소환되고 당연히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의 행적을 추궁받기에 이르렀다. 서 관찰사 곁엔 정약용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임철형이 살해되던 날 너는 무얼 했느냐?"

[주]
∎오작사령(仵作使令) ; 관에 소속돼 주검을 다루는 사령
∎천계(天癸) ; 첫 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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