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제일봉 정상에 소금 단지를 묻는 이유는?
한 번은 꼭 가고 싶은 산, 경남 합천군 남산제일봉
▲ 경남 합천군 남산제일봉 ⓒ 김연옥
한 번은 꼭 가고 싶은 산이 합천 남산제일봉(1010m)이었다. 청량사에서 그곳에 이르는 등산로가 2년 7개월간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지난해 10월 31일에 비로소 개방되었는데, 이상스레 산행을 나서기로 작정하면 비가 내려 어쩔 수 없이 산행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나는 가까운 친구와 단 둘이 드디어 남산제일봉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가슴이 콩닥콩닥할 만큼 절묘하게 생긴 수많은 기암괴석들로 신비스럽기까지 한 산으로 천불산(千佛山), 월류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는 종종 매화산으로 통하는데, 매화산은 남산제일봉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별개의 산이다.
해마다 단옷날이 되면 해인사 스님들이 산꼭대기에 다섯 개의 소금 단지를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중앙에 묻으며 한 해 동안 불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곳이 남산제일봉이다.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도 전화(戰禍)를 면했던 해인사에 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제일봉의 기운과 해인사 대적광전의 기운이 맞부딪치면서 일곱 차례나 큰불이 난 것. 이 때부터 남산제일봉이 품고 있는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소금을 묻는 행사를 100여 년 동안이나 계속해 왔다고 한다.
▲ ⓒ 김연옥
오전 10시 10분께 마산을 출발하여 11시 20분께 해인사 나들목에 도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든든하게 먹고 산행을 해야 할 것 같아 음식점을 찾고 있었는데, 이곳을 빠져나가자 마침 별난 맛, 괴짜 요리사로 방송을 몇 번이나 탄 적이 있는 소문난 맛집, 이대(二代) 두진각이 바로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얀 테 안경에 큼직한 귀걸이까지 하고 있는 주인 아저씨의 범상치 않은 모습에서부터 벌써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들도 드실 수 있도록 고기와 양파를 안 넣고 요리하는 '스님 자장면'으로 유명한 집이다. 그의 아들에게 현재 요리 비법을 전수하고 있어 아마 가업이 삼대로 이어질 것 같다.
▲ 합천 청량사의 삼층석탑(보물 제266호)과 석등(보물 제253호) ⓒ 김연옥
▲ 합천 두진각의 '스님자장면'에는 고기가 있다? 없다? ⓒ 김연옥
우리는 황산저수지를 지나 낮 12시 30분께 가야산 국립공원 청량동 탐방지원센터(경남 합천군 가야면 황산리)에 이르렀다. 거기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청량사가 나온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즐겨 찾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지고 있어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절집으로 짐작된다. 설영루를 거쳐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에 정겨운 징검다리처럼 깔아 놓은 돌들이 참 예뻤다. 저마다 다른 모양과 무늬가 오히려 잘 어울려 보기에 좋다.
청량사에는 보물이 세 개 있다. 9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석불상으로 주목받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을 비롯하여 삼층석탑(보물 제266호), 석등(보물 제253호)이 바로 그것이다. 대웅전에 모셔 놓은 돌부처님, 그리고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은 거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다.
고요 속에 잠겨 있는 듯한 청량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 초입부터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져 친구는 숨이 차서 꽤 힘들어 했다. 그렇게 50분 정도 걸어갔을까,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웅장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남산제일봉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가슴은 벌써 콩닥거렸다.
▲ 기묘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 앞에서 사진 찰칵~ ⓒ 김연옥
▲ ⓒ 김연옥
▲ ⓒ 김연옥
얼마 안 가 전망대가 나와 시원하게 탁 트인 조망을 잠시 즐겼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기묘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마치 별천지에 온 기분이었다. 어떤 바위들은 드넓은 하늘을 튼튼한 손으로 받쳐 들고 서 있는 듯하고, 뾰족뾰족 솟아 있는 바위들은 깔깔거리며 하늘에 닿을 듯 말 듯 발꿈치 들고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비로운 자연에, 또 남산제일봉 바위들의 화려한 매력에 나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 2시 10분께, 여러 개의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다 우리가 한순간 정상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상당히 우람한 바위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 ⓒ 김연옥
남산제일봉에는 철계단이 매우 많다. 그만큼 덩치 큰 바위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온갖 형태의 묵직한 바위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범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지나가게 될 때면 보다 가까이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에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정상에 이른 시간은 오후 3시께. 등산객들로 북적댔다. 하지만 정상 표지석이 없어 서운했다. 그곳에 서면 홍류동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가야산(1430m)뿐만 아니라 오봉산(968m), 비봉산(856m), 두리봉(1133m), 깃대봉(1113m)이 보이고 해인사, 홍제암도 한눈에 들어온다.
▲ 남산제일봉 정상에서 치인주차장 쪽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 ⓒ 김연옥
▲ 남산제일봉 바위들의 화려한 매력에 취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김연옥
우리는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잠시 쉬다가 왔던 길로 다시 하산하기 시작했다. 청량사 절집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께. 자동차를 주차해 둔 장소까지 또 걸어가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마산에 도착하여 다정생아구찜이란 음식점에 들어가 맛이 기막힌 아구찌개를 먹으면서 시원한 동동주를 곁들였다.
산은 어느 계절에 가도 좋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오면 남산제일봉을 다시 찾고 싶다. 화려한 단풍과 어우러진 웅장한 바위들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만 보아도 매우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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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고속도로 해인사 I.C →가야면 →청량동 탐방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