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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도 못하고 해산된 중딩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다'

[현장] '두발 규제' 개선 요구하던 인천 한 중학교 학내 시위, 저지 당해

등록|2010.03.17 12:01 수정|2010.03.17 12:01

버려진 학생들의 요구16일 인천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학교의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지만 교사들과 선도부학생들에 의해 강제해산당했다. ⓒ 오대양


"이거 어린 학생들 선동하는 것이란 거 모르세요?"

'중딩'들이 두발 자유와 보충수업 반대, 벌점제 폐지를 요구하며 학교 밖으로 나섰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학생들의 인권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더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구는 학교에게 '소란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16일 오후 4시 인천의 모 중학교(공립) 학생 40여 명과 청소년인권단체 회원들은 교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학교 측에 요구안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발언도 한 번 하지 못한 채 학교 교사들에 의해 강제 해산당했다.

교사들은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의 명단을 일일이 적었고, 이날의 집회를 지원한 청소년인권단체 회원들에게 "학생들을 선동하지 말라"고 거칠게 따지기도 했다. 선도부 소속 학생들은 "학교에 부끄러운 일"이라며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을 질책했다.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교사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의 철없는 행동에 마음이 아프다"며 "학생들은 학교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며 학교 정문 앞에 모였던 학생들은 삽시간에 흩어졌다. 항의하는 학생들은 교무실로 끌려갔다. "학생도 학교의 주체"라며 소통을 요구했던 학생들은 끝내 소득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학생도 학교의 주체"... 누구 맘대로?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이 지역의 일제고사 성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자 학교장이 학생들에 대한 단속과 규제를 강화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학교의 경우, 최근 성적 개선 방안으로 학생 두발 규제를 강화하고 오전 보충수업을 신설했다. 학생들은 8시 30분까지 등교해 의무적으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생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5cm를 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정한 머리 모양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교사들의 단속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적발시에는 체벌 뿐만아니라 벌점도 받게된다.

강제적인 보충수업 출석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았다. 한 학생은 "이런 조치는 사실상 학생들의 자율적인 생활을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라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학생은 학교의 조치에 대해 "이 지역은 일제고사 최하위일 뿐만 아니라 학생인권도 최하위"라고 비꼬았다.

그는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접하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면서 "학생들도 어른들에 의해 재단되지 않고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생도 인간이다"한 학생이 "학생도 인간이다, 인격적으로 대우하라"는 내용의 종이피켓을 들고 있다. ⓒ 오대양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이번 집회가 학생들 간의 자발적인 논의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학교의 규제가 강화되자 한 학생이 청소년인권단체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측에 집회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교내 집회 소식을 들은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게로게론(닉네임)'은 "학생들이 학교의 지나친 규제로 인한 고통을 청소년인권단체에 호소해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학교의 지나친 규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서처럼 학교가 소통 창구를 닫아놓는 것이 보통이다"라고 전했다.

일단 학내시위는 무산됐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학내시위 사례를 볼 때, 이 학교 역시 집회 참가 학생들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현장에서도 교사들은 집회 참석자의 이름을 적으며 민감하게 대처했다.

이후 학생들은 다시 집회를 열어 규제 개선과 함께 학생들에 대한 징계 반대도 주장할 계획이다. 요구안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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