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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2)

― '기쁨의 눈물', '기쁨의 소리' 다듬기

등록|2010.03.17 13:50 수정|2010.03.17 13:50

ㄱ. 기쁨의 눈물

.. 고집 센 딸의 야망에 무릎을 꿇은 아버지는 1923년 10월에 열린 레니의 첫 리사이틀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오드리 설킬드/허진 옮김-레니 리펜슈탈 : 금지된 열정>(마티,2006) 14쪽

'야망(野望)'은 '부푼 꿈'을 말할까요, '큰뜻'을 가리킬까요. '너른 꿈'이나 '커다란 꿈'을 가리킬 수 있겠지요. 이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이 자리에서는 "딸이 품은 꿈"이나 "딸이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손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리사이틀(recital)'은 '발표회'쯤 될 텐데, '공연'이나 '무대'라고 적어 주면 한결 낫습니다.

 ┌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렸다
 │→ 기쁨 가득 눈물을 흘렸다
 │→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 …

슬퍼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나, 기뻐하면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지만,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한편, 기뻐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슬픈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고, 기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립니다.

"기쁘다 못해" 눈물이 흐릅니다. "기쁨이 가득하며"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집니다. "기쁨이 넘치"거나 "기쁨이 넘실거리"며 눈물이 맺힙니다.

또는 "기쁘게 웃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기쁜 얼굴로 눈물을 흘리"기도 할 테고, "기쁘게 웃음지으면서도 눈물을 흘린"다든지 "기쁘게 눈물을 흘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기쁨의 교회 → 기쁜 교회
 ├ 기쁨의 눈물 → 기쁜 눈물
 └ 기쁨의 캐롤 → 기쁜 성탄노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쁘니까 '기쁘다'고 하며, 기쁘기에 '기쁨'을 말합니다. 슬프니 '슬프다'고 하며, 슬프기에 '슬픔'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기쁨 있는 교회"나 "기쁨 가득 교회"나 "기쁨 넘치는 교회"라고 말하지 못하고 "기쁨의 교회"라고만 말합니다. 웃음이 넘치는 곳이라면 "웃음 교회"나 "웃음 찻집"이나 "웃음 빵집"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을 텐데, 이런 자리에도 "웃음의 교회"라고만 쓰고 있습니다.

 ┌ 1위를 탈환한 기쁨의 여운 때문인지 → 1위를 거머쥔 기쁨이 남은 때문인지
 ├ 성공이라는 기쁨의 선물을 → 성공이라는 기쁜 선물을
 └ 기쁨의 상봉 → 기쁜 만남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말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생각없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고, 어떻게 보면 생각잃은 우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한다는 삶이 없는 하루하루요, 생각할 까닭을 찾지 않는 온 나날이라고도 느낍니다.

옳고 알맞고 바르고 맑고 기쁘고 신나는 삶이 아니라, 오로지 남보다 잘나거나 잘살거나 잘되려는 삶이기 때문에 생각을 버리는지 궁금합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따스하고 넉넉한 삶이 아니라, 자꾸자꾸 남을 등치고 따돌리고 들볶고 괴롭히는 삶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생각을 억누르는지 궁금합니다.

기쁜 삶이 기쁜 생각이 되고, 기쁜 생각이 다시 기쁜 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넉넉한 삶이 넉넉한 생각이 되며, 넉넉한 생각이 차근차근 넉넉한 말로 자리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기쁨의 소리

.. 기쁨의 소리를 내지른 여자가 갈고리를 집어던지자, 그 깊은 구덩이는 닫히면서 사라졌습니다 ..  <팔리 모왓/장석봉 옮김-잊혀진 미래>(달팽이,2009) 321쪽

'환희(歡喜)'가 아닌 '기쁨'으로 적으니 반갑습니다. 그러나 토씨 '-의'를 붙이고 맙니다. 낱말을 알맞게 잘 고른 품새 그대로 토씨 또한 알맞게 잘 고르며 글을 쓴다면 얼마나 기쁘고 반갑고 고마우며 사랑스러울까요.

 ┌ 기쁨의 소리를 내지른
 │
 │→ 기쁜소리를 내지른
 │→ 기뻐하며 소리를 내지른
 │→ 기쁘다며 소리를 내지른
 │→ 기쁜 나머지 소리를 내지른
 └ …

국어사전에는 '희(喜)소식' 같은 낱말만 실려 있습니다. '기쁜소식' 같은 낱말은 안 실려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기쁜소식'이라고 붙여서 적어 놓지만, 우리 맞춤법으로는 띄어서 적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쁜일'이나 '기쁜이(기쁜사람)'나 '기쁜날'이 한 낱말로 실리지 않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텐데, 이 같은 낱말을 굳이 한 낱말로 안 삼아도 된다고 여길 수 있는 한편, 한 낱말로 삼아 놓아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 기쁜소리 / 슬픈소리 / 아픈소리 / 좋은소리 / 맑은소리 / 궂은소리
 └ 기쁜 날 / 기쁜 삶 / 기쁜 꿈 / 기쁜 넋 / 기쁜 길 / 기쁜 말

기쁨을 담은 소리라는 뜻으로 '기쁜소리'나 '기쁨소리' 같은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슬픔을 담은 소리라는 뜻으로 '슬픈소리'나 '슬픔소리' 같은 낱말을 빚어도 되겠지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 깜냥에 따라서, '아픈소리/아픔소리'와 '좋은소리/좋음소리'와 '맑은소리/맑음소리'와 '궂은소리/나쁜소리/궂긴소리' 같은 낱말을 지어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을 넓히며 말을 넓힌다고 하겠습니다. 눈길을 키우며 말을 키운다고 하겠습니다. 눈높이를 가다듬으며 글을 가다듬는다고 하겠습니다. 마음바탕을 일구며 글을 일군다고 하겠습니다.

생각길을 트며 말길을 트고, 말길을 트다 보면 삶길을 틉니다. 생각문을 열며 말문을 열고, 말문을 열다 보면 삶문을 엽니다.

하나하나 알차게 엮을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 생각 한 줌 삶 한 자락 알차게 엮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애써서 엮을 수 있습니다. 우리 힘과 슬기로 싱그럽게 엮을 수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되 게으르지 않도록 몸가짐을 추스르면서 내 삶과 네 삶 모두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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