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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시골로 전학가면 안 되요?"

학교 생활에 힘들어하는 아들

등록|2010.03.17 20:06 수정|2010.03.18 14:37

▲ 구름에 걸린 산입니다. 아들의 마음에 구름이 잔뜩 걸려있는데 언젠가는 저구름이 걷히고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겠지요 ⓒ 김현



오늘도 아들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벌써 3주째입니다. 개학하고 첫날부터 셋째 주가 시작되는 오늘까지 아들은 힘들어합니다. 정신적 힘듦은 몸의 아픔까지 몰고 왔는지 며칠 전부턴 설사까지 합니다. 이틀을 학교에 빠지고 요 며칠 다니는가 싶더니 어젠 조퇴까지 하고 왔다 합니다.

개학 첫날, 학교를 갔다 온 후부터 아들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새 학년 개학하자마자 5년을 마치는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을 겪자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학교 부적응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첫날부터 말입니다.

3월 2일, 아들은 울먹이며 전화를 했습니다. 늘 쨍쨍 마른 볕처럼 활기찼던 목소리는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아빠한테 혼이 날까봐 전화기 너머 숨죽이던 아들은 그냥 무섭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뜸 반을 옮기면 안 되냐고 합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무섭다고 합니다.

자초지종 들은 이야긴 이렇습니다. 조금 깐깐한 담임 선생님은 첫날부터 아이들을 잡아야 한다며 무서운 표정을 짓고 큰소리를 냈나 봅니다. 또 다른 반에 비해 조금의 흐트러짐도 놔두지 않고 지적을 하고요. 물론 아들 녀석이 지적당한 건 아니지만 큰 소리에 민감한 녀석은 그 모습이 무섭고 마음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날부터 아들은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가슴앓이를 시작했고 눈물이라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떤 날은 몇 시간을 울어 눈자위가 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들 녀석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시간이 약이겠지 하는 식으로 기다리기엔 녀석의 상태가 심각했고요. 그래도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도 별 무소용이었습니다. 녀석은 무조건 반을 옮겨 달라고 합니다. 그것도 소리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리면서요. 그러면서 학교에 전화를 해보라고 또 울먹입니다. 아이의 요청에 아내는 학교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안 된다는 소리와 적응하기 힘들면 다른 데로 전학을 가라는 소리였다며 한숨을 푹푹 쉽니다.

▲ 비에 젖은 패랭이꽃. 비바람에도 꿋꿋하게 자라고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되길 바라지요 ⓒ 김현



반을 옮겨주지 않는다는 소식에 아들은 절망적인 표정을 짓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면서 개구쟁이 행동을 일삼던 아이는 말을 잃어갔고 고민 때문인지 배와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곤 설사까지 한다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음 날 학교 안 가면 안 되냐며 애처롭게 쳐다봅니다.

▲ 아들의 눈입니다. 아직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눈이지요 ⓒ 김현



여러 말로 스스로 극복하라고 설득하고 힘을 줘보지만 그리 큰 효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하루,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 있던 녀석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나 시골로 전학가면 혼자 있어야 돼?"
"왜 시골로 전학가게?"
"아니, 그냥. 근데 정말 혼자 있어야 돼?"
"그래. 너 전학가면 엄마랑 아빠랑 누나랑 떨어져 지내야 돼."
"…알았어."

'알았어'란 말을 힘없이 뱉고는 수화기를 놓는 녀석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다 다시 전화를 하곤 일찍 오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10시에 들어간다고 하니 말하고 일찍 오면 좋겠다고 합니다. 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싶다는 걸 알면서도 아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을 녀석은 알까 싶습니다.

어제 학교에 가기 전에 '아들아 힘 내!' 했더니 녀석의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아빠는 내 맘 몰라."

그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학교에 가면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는 선생님이 있고, 얼굴이 떠오르고 목소릴 들을 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드는데 어른들은 그 마음을 추상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니 모른다고 할 수밖에요.

그렇게 '아빠는 내 맘 몰라'하며 학교 갔던 녀석은 끝내 머리와 배, 설사병까지 겹쳐 보건실을 들락거리다 조퇴를 하고 왔나 봅니다. 아이 담임선생님은 아이를 보내놓곤 집에 전화해서 다른 조치를 강구해보라는 뜻을 전달했다며 아내는 한숨을 쉽니다. 서로 힘드니 전학을 가든지 하라는 소리입니다. 그런 소릴 들은 아내는 못난(?) 아들 녀석에게 화가 났나 봅니다. 녀석의 맘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단 남들 다 적응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아들이 미웠나 봅니다.

아내의 마음이 이해는 가면서도 아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가끔 아빠의 화난 목소리에도 눈물을 흘리던 녀석의 마음을요. 그런 아들에게 무조건 네가 참고 견뎌라 하는 것은 부모로서 아니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야 할 어른으로서 적절치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난 무조건 꼭 한 번 안아주고 아들과 장난을 칩니다. 안아주는 건 널 믿는다, 널 이해한다는 의미이고 장난을 치는 것은 얼었던 마음을 풀어주고자 함입니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들 녀석은 장난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양 손바닥 치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곤 합니다.

다행히 스스로 참는 건진 모르지만 이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소린 안 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다는 소린 하지만요. 그러나 우리는 녀석이 잘 참고 이겨내리라는 걸 믿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이번 경험이 자신을 좀 더 단련시키는 계기가 될 것도 믿습니다. 그렇기에 아들이 나약한 모습을 보였어도 무조건 혼을 내기 보단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또 하나, 아들을 보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게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좀 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며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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