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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86) 들뜨고 흥분

[우리 말에 마음쓰기 881] '클래스'와 '학급', '원폭에 피폭'

등록|2010.03.19 11:12 수정|2010.03.19 11:12
ㄱ. 자유분방한 클래스였던 특수 학급

.. 자유분방한 클래스였던 특수 학급의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나 ..  <마루야마 겐지/조양욱 옮김-산 자의 길>(현대문학북스,2001) 33쪽

'자유분방(自由奔放)한'은 '자유가 넘치던'이나 '홀가분한'이나 '마음껏 뛰놀던'으로 다듬어 줍니다. "특수 학급의 친구(親舊)들"은 "특수 학급 동무들"이나 "특수 학급에서 사귀던 동무들"이나 "특수 학급에서 어울리던 동무들"로 손질하고, "안 된다는 사실(事實)"은 "안 된다는 대목"으로 손질해 봅니다.

 ┌ class
 │  1 (공통적 성질을 가진) 종류(kind), 부류
 │  2 (학교의) 클래스, 학급, 반;(클래스의) 학습 시간, 수업;(편물·요리 등의) 강습
 │  3 [집합적] 클래스의 학생들;《미》 동기 졸업생[학급];(군대의) 동기병(同期兵)
 │
 ├ 자유분방한 클래스였던 특수 학급
 │→ 자유가 넘치던 특수 학급
 │→ 마음껏 뛰놀던 특수 학급
 │→ 홀가분한 특수반
 │→ 거리낌이 없었던 특수반
 └ …

미국말 'class'를 우리 말로 옮기면 '반'이나 '학급'입니다. 보기글에서는 "자유분방한 학급이었던 특수 학급"이라고 적을 수 있을 터이나, 같은 말을 겹으로 넣어야 할 까닭은 따로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쓸 말을 내버리고 미국말을 들여와서 겹으로 써야 할 만한 까닭이 있을는지요.

그런데, 영어사전에서 'class'를 찾아보니, '클래스'라는 낱말로 옮기고 있군요. 바로 뒤에 '학급'과 '반'도 넣었습니다만, 첫 번째 풀이말이 '클래스'인 대목을 보며 아찔합니다. 설마, 이런 엉터리 영어사전을 뒤적이면서 번역을 하는 분이 있지는 않을까요? 아니, 이 나라 아이들은 이런 엉터리 영어사전을 뒤적이면서 'class = 클래스'라고 배우거나 익숙해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ㄴ. 원폭에 피폭

.. 한국 원폭피해자들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피폭당하였지만, 59년 동안 일본 정부의 차별적인 피폭자 원호법 정책으로 인권이 유린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  <전진성-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휴머니스트,2008) 290쪽

"일본 정부의 차별적(差別的)인 피폭자 원호법(援護-) 정책으로"는 "일본 정부가 피폭자를 차별하는 법을 만든 탓으로"나 "일본 정부가 피폭자를 돕는 법을 차별한 탓으로"로 손질합니다. "인권이 유린(蹂躪)된"은 "인권이 짓밟힌"으로 다듬습니다. "삶을 살아가고"는 딱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삶을 꾸리고"나 "살아가고"로 고쳐 줍니다.

 ┌ 피폭(被曝/被暴) :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됨
 ├ 피폭(被爆)
 │  (1) 폭격을 받음
 │   - 피폭을 당하다
 │  (2) 원자탄이나 수소탄의 폭격을 받음. 또는 그 방사능으로 피해를 입음
 │   - 피폭 피해자들의 구제 방안을 모색하다
 │
 ├ 원폭에 피폭당하였지만
 │→ 원폭에 피해를 입었지만
 │→ 원폭을 맞았지만
 │→ 원자폭탄을 맞았지만
 └ …

한자말 '피폭'은 두 가지입니다. 보기글에 쓰인 '피폭'은 두 번째 '被爆'으로 보이며, 이 가운데에서 둘째 풀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원자폭탄을 받았다"는 '피폭'이니, "원폭에 피폭당하였지만"처럼 적으면 "원폭에 원폭에 피해를 받았지만" 꼴이 되어 버립니다.

 ┌ 피폭 피해자들의 구제 방안을 모색하다
 │
 │→ 원자폭탄 피해자들을 도울 길을 찾다
 │→ 원자폭탄을 맞은 이들을 도와줄 길을 살피다
 └ …

그나저나, 한국 원폭피해자들은 얼마나 따스한 손길을 받으면서 아픔을 씻어 나가고 있을는지요. 일본 정부는, 또 한국 정부는 얼마나 도와주고 있을는지요.

국어사전 보기글로 '구제 방안을 모색하다' 같은 글이 보이는데, 뭐, 국어사전에 싣는 보기글이니 이렇게도 싣고 저렇게도 실을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2008년 오늘날까지 우리 나라 정부가 원폭피해자를 도우려고 한 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원폭피해자들 스스로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권리'를 찾으려고 용을 쓰고 있으며, '생존권을 지키려'고 애쓸 뿐입니다.

ㄷ. 들뜨고 흥분했는지

.. 임설분은 그동안 학교에서 그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얼마나 들뜨고 흥분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  <중자오정/김은신 옮김-로빙화>(양철북,2003) 245쪽

"볼 수 있는 것 때문에"는 "볼 수 있기 때문에"나 "볼 수 있어서"로 손질합니다. "흥분했는지에 대(對)한 기억(記憶)을"은 "흥분했었는지를"이나 "흥분했던 일을"로 고쳐 줍니다.

 ┌ 흥분(興奮) : 어떤 자극을 받아 감정이 북받쳐 일어남
 │   - 흥분을 가라앉히다 /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다 / 북받쳐 오르는 흥분 /
 │     흥분된 목소리 / 흥분된 마음을 달래다
 │
 ├ 얼마나 들뜨고 흥분했는지
 │→ 얼마나 들뜨고 기뻤는지
 │→ 얼마나 들뜨고 반가웠는지
 │→ 얼마나 들뜨고 들떴는지
 └ …

국어사전에서 '들뜨다'를 찾아보면, '흥분'과 같은 뜻이라고 나옵니다. 한자말 '흥분'을 찾아보면 '북받치다'와 같은 뜻이라고 나옵니다. 다시 '북받치다'를 찾아보면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치밀다'는 '솟구치다'를 가리키고, '솟구치다'는 '밖으로 나오다'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저 말이고, 저 말이 그 말이며, 그 말이 이 말이 되는 셈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한자말로는 '흥분'이요, 우리 말로는 '들뜨다'인 셈입니다.

 ┌ 흥분을 가라앉히다 → 마음을 가라앉히다
 ├ 흥분의 도가니로 → 들떠 신나는 도가니로
 ├ 북받쳐 오르는 흥분 → 북받쳐 오르는 마음
 ├ 흥분된 목소리 → 들뜬 목소리 / 떨리는 목소리
 └ 흥분된 마음을 → 들뜬 마음을 / 북받치는 마음을

보기글을 생각해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들뜨고 들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들뜨고 설레었다"고 해도 됩니다. "들뜨고 두근두근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들뜨고 가슴이 뛰었다"고 해도 어울려요. 한 가지 낱말만 넣을 수 있는 한편, 두서넛 낱말을 이어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뜻이라 할지라도 "들뜨고 흥분했다"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반드시 토박이말로만 잇달아 적으란 법이 없으니까요. "웃고 미소지었다"처럼 쓰고프다면 이렇게 쓸 노릇이요, "웃고 스마일했다"처럼 쓰고프다면 이와 같이 쓸 노릇입니다. "웃고 미소짓고 스마일했다"처럼 쓰고프다면 이렇게 써야겠지요.

다만, 우리가 읊조리는 말마디가 얼마나 알맞춤하며 얼마나 살가웁고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내 뜻과 느낌을 힘주어 나타내고자 "들뜨고 흥분했다"처럼 말하려 했는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우리 말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가운데 이런 말이 터져나왔는지를 헤아려 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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