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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갸륵한 곳에서 열린 미술 전시회

[서평] 용산참사 추모 파견미술 헌정집 <끝나지 않는 전시>

등록|2010.03.21 15:18 수정|2010.03.23 18:02

표지<끝나지 않는 전시> ⓒ 삶이 보이는 창

그런데 작가들은 왜 이 넓은 곳들을 놔두고 자꾸 인적이 드문 전시장만을 고집할까. 작품을 통해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왜 상실하고 있을까. 왜 정작 미술이 필요한 곳에서는 미술이 없을까. 왜 미술은 먼저 사람들을 찾아갈 수 없을까. (책 속에서)

실수로 큰 소리라도 내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것 같은 적막강산. 그림이 무얼 뜻하는지  몰라도 짐짓 아는 것처럼 점잖은 표정으로 한참을 그림에 시선을 두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그림과 덜 친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미술전시회에 대한 단편적 생각들이 대체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돈 들이고 시간 내서 미술전시회 참석하기 쉽지 않고, 어쩌다 숙제로 꼭 갔다 와야 한다는 자녀들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가서 감상하는 모습들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지 싶다. 자신의 삶과 거리가 먼 낯선 전시장에서 낯선 그림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감동으로 승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적 드문 곳에서만 열리는 미술 전시회가 아닌, 그림이 꼭 필요한 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동고동락하는 미술인들이 있다. 대추리로, 기륭전자로, GM 대우 농성장으로, 때로는 국경을 넘어 머나먼 이국땅 티베트 분쟁현장으로 가기도 했다. 모두 아프고 갸륵한 곳이고, 새로운 꿈과 희망과 연대가 자라야 할 곳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견미술가'라 부른다. 아프고 갸륵한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버려지는 모든 것들에 '뼁끼'를 칠하고 작품을 만들었다. 물건 아닌 사람들조차 버려질 수 있는 세상에서, 버려지는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미술 작품을 제작했다. 버려져야 할 것은 따로 있다는 무언의 항의를 담아서.



판화여기 사람이 있다 ⓒ 삶이 보이는 창



이들은 2009년 1월 21부터 1년간 '용산참사와 함께하는 미술인'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영정 그림을 그리고, '용산참사 추도기금 마련전'을 열어 추도 기금을 모아주고, 현장에서 행위 미술(퍼포먼스)도 했다. 건물 옥상에서 불에 타 죽어가던 사람들의 외침 "여기 사람이 있다!"를 그림으로 되살리고, 게릴라 기획전 망루전(亡淚戰)을 열어 망루에서 울면서 죽어간 이들을 추모했다.

이들의 작업은 쉼없는 날선 긴장과 투쟁의 과정이었다. 투쟁 거점을 주지 않으려는 경찰들에 맞서 참사 건물인 남일당 건물을 지키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추모 상징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없는 돈에 재료를 사고 뺑이치게 진행해서 건 걸개그림이 수시로 뜯겨지고 철거되어도 그리고 또 그렸다. 살기 위해 싸운 다섯 분의 철거민과 살아야 하는 유족 분들을 또다시 죽이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개무시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이들의 1년간의 활동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용산참사 추모 파견미술 헌정집 <끝나지 않는 전시>란 이름으로. 절망의 공간에 예술의 꽃을 피운 파견미술가들의 그림이 살아 꿈틀대며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향해 책 속에서 손짓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용산참사화 함께하는 미술인들/삶이 보이는 창/2010.2/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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