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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봄을 느끼게 해주서 감사합니다"

봄 수업 이야기

등록|2010.03.21 15:26 수정|2010.03.21 15:26

봄 수업종이 한 장을 나누어주고 봄 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니 아이들은 결코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 안준철


지난 토요일(20일), 자치적응활동 시간에 반 아이들과 봄 수업을 했습니다. 봄 수업이란 아이들에게 계절과 행복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한 수업입니다. 영어교사가 수업시간에 모국어로 봄 수업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곤 했는데 올해는 제도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반 아이들과 하게 되어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퇴근 후 교정을 걸어 나오면서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이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글을 읽다가 비수에 찔리듯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걸음을 멈출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제 인간적인 미숙함이나 실수로 인한 것들이었지만 지내놓고 보면 약이 되었던 것들도 많았습니다.  

봄 수업에 어떤 특별한 형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너무 막연해 할까봐 칠판에 몇 가지 제목을 써주긴 했습니다. 그 제목별로 아이들이 쓴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35명의 반 아이들이 쓴 글을 다만 한 줄이라도 빼놓지 않고 옮겨 적으려다가 마음을 접습니다.  그래도 뽑히지 않은 아이들의 글이 마음에 걸리네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나에게 진짜 소중한 것은 내 머리에 들어 있는 소중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생각에서 나온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항상 어떤 것을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함께 생활해 왔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기뻐해주고 위로해 주었던 내 가족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비록 돈도 건강도 소중하지만, 가족이 없다면 그 큰 슬픔은 없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벌면 되고, 건강이 없으면 차근차근 회복할 수 있겠지만 내게 가족이 없다면 어떤 것으로도 가족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겐 너무 소중한 가족, 지금 이 봄이 지나기 전까지 바람처럼, 새처럼, 화사한 사람이 되자.'

♧봄에 느끼는 것들

'봄비, 신선하다.'

'봄은 후회를 소망으로 바꿔주는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 봄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난 절대 포기와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추워서 비틀거리는 것도 없고, 옷을 몇 겹씩 입지 않아도 된다. 햇볕이 살짝 비추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면 봄이란 새시작인 것 같다.'

봄 수업아이들에게 계절과 행복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봄 수업을 했지만 교사인 제 자신에게도 참 고마운 수업이었습니다. ⓒ 안준철


'봄에 느낄 수 있는 것은 꽃이랑 나무이다. 길거리에 돌아다녀도 쉽게 볼 수도 있고 추운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연두색 새싹도 새로 자라고 나뭇잎도 없었던 나무가 잎을 엄청 매달고 있어서 정말이 봄이 온 걸 알 수 있다. 또 봄에 오는 바람은 차갑지 않으니깐 정말 좋은 거 같다. 이런 걸로 난 봄을 느낄 수 있는 거 같다. 꽃이랑 나무 말고도 사람들로 봄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몸을 꽁꽁 싸매고 있던 두꺼운 옷들도 한 층 더 얇아지기 때문이다. 봄을 느낄 수 있는 것 참 많은 것 같다.'

♧나에게 쓰는 편지

'자신감 좀 가져라.'

'내 자신에게 편지 쓰는 거 참 어색하다. 어렸을 때도 내 자신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는데 요즘 네가 마음을 제대로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것 같구나. 빨리 마음을 잡고 열심히 해야지. 남자 친구 생겼다고 공부 소홀히 하지 말고! 넌 할 수 있어! 넌 잘 될 거야!'

'어디서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새로 시작한 고2생활과 컴퓨터 자격증을 꼭! 따서 보람 있는 1년을 보내야겠어.'

봄 수업봄 수업은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 안준철


'나야, 안녕! 나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쓰는구나. 순천으로 이사 오고 많이 느꼈어. 내가 낯을 많이 가린다는 것을.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 같아. 나에겐 어떤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선생님이 쓰신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읽고 시각이 달라졌어. 그들도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어. '

♧담임선생님께 쓰는 짧은 편지(짧은 순으로)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쓰겠습니다.'

'선생님, 봄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착하고 좋으신 분 같아요. 그런데 원래 이런 말 있잖아요. '착한 사람 건들면 무섭다!' 무서우실 것 같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이 웃고 있는 모습 보면 저도 모르게 제가 웃고 있는 거 같아요. 저희한테 사랑표현도 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제자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감사하고 사랑해요 샘~'

'선생님, 저희반 담임 맡아 주셔서 감사 드려요. 저희반이 많이 까불고 말도 잘 안 듣죠.(히히~ 저도 그랬지만) 그래도 애들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저도 이뻐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항상 '사랑해!' '보고 싶었다.'고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제 마음은 찡해져요. 항상 감사하면서, 머리로 아닌 마음으로 감사드려요.'

봄 수업한 아이가 담임선생님에게 쓰는 짧은 편지를 아주 길게 썼습니다. 고마운 아이입니다. ⓒ 안준철


여기까지입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니 아이들은, 어른들이 흔히 말하듯,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쓰는 짧은 편지'는 일종의 담임 중간 평가인 셈인데 다행히도 '화를 내지 말아주세요'라든가 '편애하지 말아주세요.'라든가 하는 부정적인 표현들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여,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순간 한 아이의 편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이 저 챙겨주시는 건 좋은데 너무 튀게 챙겨주시는 건 별로예요. 저도 다른 애들처럼 똑같이 대해줬음 해요.'

아이의 편지를 읽는 순간 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슴에 뭔가 깊이 박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뭔가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조금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제 잘못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곧 응답이 왔습니다.

'너의 편지 잘 읽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마.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 날 환한 얼굴로 보자!'
'선생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사랑해요. 월요일 날 웃으면서 봐요!'

봄의 수업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수업이지만 이렇듯 저에게도 약이 되는 수업입니다.  참 고마운 수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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