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흐르지 않는 강물, 이게 다 낙동강 하구둑 탓"

'4대강 현장'에선 수녀와 스님, 그들이 낙동강에서 본 것

등록|2010.03.22 14:36 수정|2010.03.23 13:12
지율 스님과 함께 낙동강을 따라 걸으며, 4대강 공사 전후의 낙동강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있는 낙동강 현장르포, '낙동강, 공사현장을 가다' 네 번째 편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수녀님들입니다. 부산에 있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토수도원' 소속의 두 수녀님이 우리들의 '순례길'에 동행했습니다.

스님과 수녀라, 어떻게 보면 안 어울릴 것도 같은 이 조합을 가능케한 것이 바로 이 '4대강 죽이기 사업'입니다. 국토의 혈맥을 따라 벌이고 있는 이 광란의 질주가 스님과 수녀님들을 거리로 나서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 수녀님들과 함께 걸으며 봤던, 낙동강의 아름다운 모습과 망가져가는 모습을 담아본 것인데요. 실은 이것은 4월 19일~22일에 있을 수도원의 수녀와 수사님들(더 넓어지면 스님들도 함께)의 순례길에 대한 답사 형식의 일정이었습니다. 그 길은 낙동강의 끝부분인 을숙도에서 시작해서 창녕 우포늪까지 이어졌습니다.

을숙도의 종교인들지율 스님과 두 수녀님이 을숙도를 둘러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 정수근


'을숙도'에서 낙동강의 미래를 보다

"우리가 을숙도는 먼저 보고 가야 해요. 그래도 이 아름다운 곳을 놓치고 갈 수는 없어요."

부산 구포역에서 만난 수녀님들과 우리는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인 '을숙도'로 먼저 향했다. 지율 스님의 제안으로 원래는 계획에 없었던 을숙도로 길을 틀게 된 것이다. 을숙도는 낙동강의 가장 하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미 개발이 거의 완료된 지점이기도 하다. 하구둑을 비롯해 작년에 개통한 그 문제 많은 명지대교의 대단한(?) 위용은 을숙도의 초입에서 먼저 방문객들의 기를 꺾어 버린다. 그러나 이내 혀를 차게 되는 게 현실.

"이제 현장에서 우리를 막으면 큰~일 난다. 우리가 (수녀님들을 돌아보면서) 움직이는 것은 종교계가 움직이는 것이니, 우리를 막으면 큰일 난다"는 스님의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다다른 을숙도.

몇 번 지나는 보았지, 이번처럼 을숙도에 직접 들어가보긴 난생 처음인 필자와 수녀님들은 그 광대한 을숙도의 모습에 너무 매료되고 말았다.

철새 천국, 을숙도 동양 최대의 철대도래지 을숙도답게 철대들이 한껏 노닐고 있다 ⓒ 정수근


한없이 펼쳐진 갈대숲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철새들 그리고 바다 냄새가 어우려져 그곳의 풍경은 한폭의 그림을 이루기에 충분했다. 그냥 그곳에 머물러 한참을 조망해도 좋을 을숙도는 바다만큼이나 깊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 천혜의 입지는 무분별한 주변 개발로 안타까움 또한 안겨주고 있었다.

낙동강물을 가두어놓는 구실을 하는 낙동강 하구둑과 명지대교 그리고 인근에 새로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은 이곳을 더 이상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남겨놓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참으로 이질적인 장면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곳만은 자연스런 모습으로 그대로 좀 놔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연한 푸념만 쌓이게 만드는 순간인 것이다.

을숙도과 명지대교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 을숙도가 무색한 풍경이다. 명지대교가 대단히 위용스럽게 서 있다 ⓒ 정수근


을숙도의 아쉬운 모습을 뒤로 한 채, 이 을숙도의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지율 스님께 전해 들으면서 우리는 부산을 떠나 삼량진으로 향했다.

"흐르지 않는 강물, 이게 다 낙동강 하구둑 탓"

'낙동강 순례길'이라도 온전히 강변을 따라 걸을 수는 없는지라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길과 차량으로 이동할 길을 체크하는 것도 이번 답사의 큰 임무다. 그래서 우리는 승용차로 부산을 떠나 삼량진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들어선 삼량진은 들머리에서부터 완연한 봄이 느껴진다.

거리 곳곳의 매화나무는 막 꽃망울이 터져서 향기를 흩날리고 있었고, 주변 낙동강 변 버드나무는 한껏 물이 올라 연두색 옷을 막 갈아입으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곳은 아직 '4대강 죽이기 사업'의 때가 많이 묻어있지는 않았다. 이곳을 몇 차례 홀로 답사를 하신 지율 스님 덕분에 우리는 예전에 오우진이란 나루터가 있었던 곳으로 이동을 해서 그곳에서 펼쳐진 낙동강의 진풍경을 두 눈으로 보고 또한 가슴 속에 한껏 담아올 수 있었다.

"강물이 흐르지 않지요? 이것이 다 낙동강 하구둑의 영향이래요. 하구둑을 막아버리니 그곳에서부터 정체된 물의 흐름이 이곳까지 연결이 되는 것이에요."

지율 스님의 설명에 제자리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흐르는 듯 마는 듯 있는 낙동강은 마치 거대한 저수지를 보는 듯했다. 

삼량진의 나루터삼량진에서 만난 옛 나루터의 흔적이다. 오우진 나루터가 있었던 모양인데, 저 아래 강물을 보면 강이라기 보단 호수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 정수근


일행은 나루터를 빠져나와서 그 좁은 삼량진교(이런 정도의 불편함은 있어야 할 듯한)를 건너 이제 본격적으로 '4대강 죽이기 사업'의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삼량진에서 낙동강을 따라 가는 길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공사현장은 저 멀리 함안보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니까 낙동강 8개보 쪽만 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낙동강 거의 전 구간을 따라 크고 작은 공사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건설업 살리려면 '4대강 죽이기 사업' 관둬야

이곳 삼량진 쪽도 하상 준설작업과 강변의 매립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또 어느새 왔는지 공사장 직원이 머리를 내민다. 우리는 다시 자리를 뜬다. 이곳 현장을 맡은 건설업체는 공교롭게도 태영건설이었다.

태영건설, 필자가 앞산터널반대 싸움을 통해 만나게 된,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태영건설이 대구 앞산에 이어, 낙동강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강과 산을 동시에 건드리는 불경(不敬)을 저지르는 것인데, 그 업보를 어떻게 할지 도리어 걱정이 앞선다.

삼량진 낙동강변삼량진 낙동강변도 '4대강 죽이기 사업'이 한창 진행중에 있다 ⓒ 정수근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건설업이란 것이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산업일진대, 왜 이토록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산업으로 이미지 메이킹 되고 있는가? 특히나 '4대강 죽이기 사업'을 통해 '삽질'이란 한 마디로 표현되는 현상, 이런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한국 건설산업의 미래는 암울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의미지를 더욱 확실하게 심고 있는 것이 건설족 출신의 MB의 정책이고 보면 건설산업의 입장에선 달리 생각해볼 지점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부디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소탐대실'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 '4대강 죽이기 사업'에서 손을 떼는 기업이 하나쯤을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보는 것이다.

낙동강 주변에 산재한 문화재를 찾아라

삼량진에서 수산으로 넘어가는 길에 고갯길을 만난다. 그 고갯길에서 내려다보니 저 멀리 낙동강변의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그런데 그곳은 더 이상 강이 아니었다. 거대한 공사장인 것이다. 그 거대한 공사장이 저 아래에 쭉 펼쳐져 있는 것이다.

삼량진의 고인돌삼량진 낙동강변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윗돌을 발견했다. ⓒ 정수근


그런데 우리가 조망한 이곳이 퍽 재미있다. 고갯마루에 놓인 거대한 바윗돌이 눈길을 끈 것이다. 지난 앞산터널반대싸움 때 필자와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줄여서 '앞산꼭지'라 명명함)들이 앞산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면서 찾았던 문화재 때문에 이제 이러한 '물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눈이 필자에겐 생긴 것이다.

필자의 심미안(?)에 따르면 이 돌은 거의 고인돌 상석이다. 조각이 딱 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놓인 다른 돌들도 모양이 예사롭지 않고, 이곳의 위치 또한 저 아래 삼량진을 굽어볼 수 있는 입지조건이라서 이곳은 그 옛날 무슨 터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를 잘 조사해 보면 분명 무언가 있을 것 같은 '감'이 직감적으로 드는 곳이었다.

하여간 이렇게 낙동강변의 문화재를 하나씩 찾아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낙동강 죽이기 사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일이기에 순례를 하면서 이런 일들도 병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전국의 강태공들이여, 일어나라

이렇게 고갯마루를 넘어 수산 쪽으로 가다 보면 낙동강의 지천을 하나 만나게 된다.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참 아름다운 지천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지천엔 강태공들이 드문 드문 박혀서 더 멋진 풍광을 연출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강태공들이 많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바로 '4대강 죽이기 사업' 때문이었다.

낙동강에서 쫓겨난 강태공들이 그 인근의 지천으로 낚시터를 바꾼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보면 낙동강에선 강태공들을 전혀 만난 적이 없었고, 이곳과 같은 지천에선 어김없이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던 것이다. 이 4대강 사업은 이렇게 강태공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낙동강의 강태공낙동강과 지천이 만나는 지점과 지천엔 강태공들이 아주 많았다. 낙동강이 공사중이니 모두들 지천으로 간 모양이다. ⓒ 정수근


그런데 사실 저 강태공들은 강의 또다른 주인들일 것이다. 그래서 공연히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만약 전국 강태공 연합이 있어서 저 수많은 강태공들을 불러 모아서 "우리의 강을 돌려 달라, 우리도 물고기를 잡을 권리가 있다"면서 낙동강변을 따라 혹은 청와대 앞에서 거세게 그들의 주장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말이다.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이 진짜 민주주의가 아닐까 하면서.

"고기 많이 잡았어요" 스님이 묻고, 수녀님들도 연신 신기한 듯 돌아본다. 어떻게 보면 강태공들의 입장에선 우리쪽이 더 구경거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웬 백주대낮에 수녀와 스님이 함께 길을 다니고 있나 면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은 으아한 눈으로 우릴 한번 처다보고 가곤 한다.

낙동강의 다른 두 모습아직 굴삭기의 삽날이 미치지 않은 강변 숲과 이미 삽질이 가해진 낙동강변의 모습이 이렇게 천양지차다. ⓒ 정수근


사실 이 두 수녀님들과 지율 스님의 인연은 천성산 싸움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녀님들과 스님의 관계는 서먹함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소녀 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길 주고받으면서 일종의 수다를 떨면서 길을 간 것인데, 그 모습이 가는 길을 참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하여간 이렇게 세 소녀(?)들의 이야기꽃이 만발한 승용차는, 저 멀리 함안보를 향해 낙동강을 따라 계속해서 길을 나아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 앞산꼭지에도 동시에 기재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