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보다 더 넓은 땅 차지한 위성유목민
2010 백남준 '랜덤액세스' 기획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5월9일까지
▲ 백남준아트센터입구 백남준대형초상화. 백남준의 'TV 샹들리에 1번' 1989년 작으로 신소장품임(아래) ⓒ 김형순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2010년 첫 상설전과 전면개편 '랜덤액세스' 기획전이 5월 9일까지 열린다. 그리고 독일TV방송국에서 구입한 1989작 'TV(비디오) 샹들리에 1번' 등 올해 구입한 신소장품도 선보인다. 2010년을 맞아 기존의 관점을 뒤엎고 유목민 칭기즈칸의 직속후예라는 관점에서 백남준을 다시 썼다.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재해석한 현대작가 브루스 나우만, 리처드 세라, 박찬경, 아라키 노부요시, 일레나 알메이다, 전미래, 타미 킴, 장영혜, 중공업, 김민정, 임민욱, 최태윤, 지민희, 양아치, 이진원, 토마스 허쉬온, 볼프 포스텔, 클레이톤 캠벨, 마사 콜번, 유리 스즈키, 엑소네모 등의 작품도 2층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사실 백남준은 캐면 캘수록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메마르지 않는 샘인데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최근 나온 백남준 저서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를 읽어보면 오리무중에 빠진다. 의도적으로 애쓴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고 우연히 깨우쳐야 한다.
랜덤액세스, 백남준의 비밀을 푸는 열쇠
▲ 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1995. 5개 국어로 되어 있고 내용도 독해하기가 쉽지 않다 ⓒ 김형순
랜덤액세스(Random Access 비순차적 접근, 임의접속)는 현대예술의 개념어로 백남준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일종의 흔들기 내지 어지럽게 만들고, 순차적인 것을 뒤죽박죽 만드는 것이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체계가 있다.
동양엔 이미 '아니다'가 '그렇다'(不然其然)와 같은 랜덤액세스가 있었다. 백남준은 이런 동양사상을 통해 서양예술의 숨통 뜨려고 했다. 그리고 서양이 만든 게임을 이길 수 없다면 그 규칙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이 유럽에서는 나치즘의 악몽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다.
랜덤액세스는 일종의 카오스이론으로 현실을 비틀어 삶에 충격을 주거나 우연성을 기반으로 삶과 우주를 아우르는 다의적 개념이다. 이것은 반예술보다 무예술(anart)에 가깝다. 왜냐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역설적 상황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프로이트의 무의식세계, 아르토의 부조리연극 등과도 통한다.
▲ 지민희 I '숲의 특징' 2010(왼쪽). 백남준 I '그랜드 스트리트 스튜디오 사물'. 여기서 랜덤액세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백남준도 "책은 랜덤액세스가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라고 말했다. 이번의 시간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은 어디서 펴서 읽어도 상관이 없다 ⓒ 김형순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에게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랜덤액세스가 뭐냐고 물으니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Karma)'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주동자가 없는 무위정치인 촛불시위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랜덤액세스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을 잇는 세계적 작가 김수자의 보자기퍼포먼스도 랜덤액세스와 같은 맥락이다. 보자기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손바닥만한 것을 펼치면 우주공간보다 넓다. 서양의 고정관념으로 만들 수 없는 우리네 가옥구조가 비슷한 것이다. 이불을 개고 펴고 하는 불편은 있지만 그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지 않던가.
이것을 한국미에 적용한다면 멋이다. 그 멋은 '엇'이 없으면 안 된다. 즉 엇박자인데 틀을 깨는 파격을 말한다. 이를 보들레르에 대입하면 참되고 윤리적인 것에서 자유로운 '악의 미'를 뜻한다. 이를 통해 서양에서는 비로소 예술의 모더니티를 확보하게 된다.
몽골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정체성
▲ 백남준 I '칭기즈칸의 복원' 1993. 신소장품 ⓒ 김형순
백남준은 그의 정체성에서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몽골의 피가 섞인 유목민의 전승에서 찾았다. "한국인들은 몽골족 출신이죠"라고 그의 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층 전시장에 엉덩이를 까고 찍은 백남준 사진이 있는데 이는 그가 몽골반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몽골의 정신유산까지 받았다. 북방민족은 조화와 융합을 중시하고 푸른 하늘을 섬기는 샤머니즘에 근간한다. 백남준은 서울보다 울란바토르를 마음에 두었다. 그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도 제목이 <일렉트릭 수퍼 하이웨이-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1993)>이다. 몽골제국코드다.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했고 "하나의 달빛에 수천만 개의 강이 흐른다"라는 노래한 '월인천강지곡'에서 달의 상상력을 즐긴다. 칭기즈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야간에 적을 기습할 때 달을 애용했다. 달은 이렇게 북방유목민에게는 승리의 여신을 뜻한다. 백남준은 몽골의 후예답게 이런 달을 좋아했다.
칭기즈칸보다 더 넓은 땅 차지한 탈영토 정복자
▲ '지도 B'와 '달에 홀린 피에로 백남준' 세계미술계에서 백남준은 피카소는 물론이고 워홀보다 한수 위다. 다만 그가 한반도출신이라는 것이 약점이다. 그의 유일한 라이벌은 마르셀 뒤샹이다. 그렇지만 백남준은 그를 "비디오 빼고 다 했다"며 20세기에서 비디오를 빼면 사실 무슨 예술을 할 수 있냐고 그를 은근히 꼬집었다 ⓒ 김형순
칭기즈칸은 무력으로 유럽을 정복했지만 백남준은 문화로 유럽을 정복한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칭기즈칸보다 더 넓은 탈영토를 차지한 것이다.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 건 바로 1984년 1월 1일 뉴욕과 파리에서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이 오페라를 통해 전 세계 2천5백만 명(?)사람들은 시공간을 넘어 하나로 통했다.
이런 위성예술은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최대로 끌어올렸고 그래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는 애국주의를 싫어했다. 전략적으로 미국 국적을 얻었으나 그만큼 애국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난 문화계 속물이 가장 싫다"라는 말처럼, 예술가인 양하는 위선이나 권위주의를 격멸했다.
백남준은 단군 이래 그보다 더 지적이고 경이롭고 위대한 인물은 없었다. 5개 국어에 능통했고 어려서 최고 부잣집 막내아들로 자랐다. 백남준의 소꿉친구인 수필가 이경희 여사는 어려서 같은 유치원 다닐 때 같이 캐딜락을 타고 다녔다고 백남준 이야기에 적고 있다.
독일 부퍼탈 첫 전시회에 내린 원자폭탄
▲ 독일 부퍼탈 시(市)에 있는 파르나스화랑. 위는 이영철관장이 독일에 가서 직접 찍어온 사진. 아래는 음악전시회 전자 텔레비전 흑백사진 사진 만프레드 레베 1963. 오른쪽 하단 흰 가면을 쓴 사람은 백남준으로 추정됨 ⓒ 김형순
백남준은 1956년 독일에 도착하여 처음엔 뮌헨에서 활동하다가 너무 보수적이라 다름슈타트로 옮긴다. 그렇게 7년을 방황하며 준비한 첫 전시가 독일 부퍼탈 시에 있는 파르나스화랑에서 1963년 열렸다. 전시제목도 '추방(EXPEL)'전이라 의미심장하다. 대감놀이를 통해 자신이 스스로 그곳의 터줏대감이 된다.
마네가 1863년 '낙선전'을 연 지 꼭 100년 만이다. 마네하면 세잔과 함께 서구 모더니즘미술을 연 장본인인데 백남준은 이런 유럽현대미술100년을 맞아 그의 목을 쳤다. 그뿐만 아니라 서양예술의 상징인 뮤즈 여신을 욕조에 처박아 질식사시켰다.
그는 칭기즈칸처럼 유럽을 문화로 정복하려는 야망과 포부로 넘쳤다. 그의 음모는 겉으로 평화로워 보여도 그 내용은 지극히 잔혹하다. 그러나 독일의 동료작가들조차도 몰랐다. 완전범죄였다. 그리고 서구인들의 기를 꺾으려 전시장 입구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머리를 걸어놓았다. 그래서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일은 이미 예고되었다. 첫 전시가 열리기 1년 전에 백남준은 "황색 재앙이 바로 나다(Yellew Peril, C'est moi)"라고 선언했다. 칭기즈칸처럼 동양의 유목민이 서양의 땅에 재앙을 내리겠다는 단단한 각오였다. 여기서 "바로 나다"는 루이14세의 말을 차용한 것이다.
피아노 부수기 등 시대우상과 성상파괴
▲ 피아노 부수기 만프레드 레베 사진 1963 흑백사진(중앙) 백남준국제예술상을 받은 안은미의 피아노부수기 퍼포먼스영상 및 부서진 피아노(위아래) ⓒ 김형순
▲ 무용가 안은미 피아노부스기 퍼포먼스무용가 안은미 피아노부스기 퍼포먼스 제1회 백남준국제예술상을 받은 무용가 안은미 씨는 포클레인으로 공중 부양하여 피아노부스기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후편에는 가위로 피아노를 묶은 끈을 잘라 피아노는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다. 여기서 피아노를 박살되는 것은 정치적 독재, 경제적 독점, 종교적 독선 등을 상징하는 시대우상을 파괴를 뜻한다 ⓒ 김형순
백남준은 놀랍게도 스승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 부순다. 그뿐 아니라 <벽암록>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지만 백남준은 부처의 목도 쳤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와 창조를 구속하는 일체의 권위에 대한 거부이자 작가로서 우상파괴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
백남준이 이런 과격한 몸짓이 가능한 건 그런 배경이 있었다. 모든 논리는 허망하다고 보고 모든 위계질서에 반대한 다다이즘, 인간의 상상력에 최대의 자유를 부여한 초현실주의 그리고 인간의 감정표출을 중시하는 표현주의 등의 미술사조와 맞물려있다. 유럽은 거의 백년간 전쟁과 혁명으로 놀지 못했고 그런 불행을 축제로 바꾸려했다.
그리고 백남준의 혈육 같은 요셉 보이스도 생각이 같았다. 그는 개념미술가로 머리로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문명 위기를 경고했고 독일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다 교수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의 위상은 현재 독일에서 절대적이다.
비디오로 철학하는 천진난만한 예술의 황제
▲ '바이바이 키플링'에서 제국(EMPIRE) TV를 들고 있는 백남준 1985 ⓒ 김형순
백남준은 비디오로 철학하는 예언자 같은 예술가였다. 엄청난 파급력으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되었고 마르크스도 능가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문화제국의 황제가 되기를 꿈꿨다. 서양 것에 누구보다 정통한 그는 보이지 않게 서양적인 것을 추방시킬 수 있었다. '서양미술의 죽음'을 선언했다.
그는 비디오아트와 행위예술에는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이제 그의 텍스트는 경전처럼 해석되고 있다. 주석이 붙어야 할 판이다. 이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그는 동시에 개구쟁이들 같은 천진난만하고 맑고 깨끗한 혼을 가지고 있다. 짓궂은 장난기와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익살맞은 유머와 언변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또한 그는 기계에도 숨을 불어넣어 인간화를 추구했고 기술의 오작동과 과부하를 예술로 이겨냈다.
과학과 예술도 유희처럼 가지고 노는 천재
▲ 2010년 백남준 랜덤액세스기획전 포스터. 백남준 I '로봇 K-456' 전자장치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아래) ⓒ 김형순
20세기 최고발명품 중 하나는 역시 TV다. 그는 TV를 가장 잘 가지고 노는 유희의 천재였다. 소니에서 나온 세계 최초 소형비디오가 출시 전부터 주문하여 이를 비디오아트로 만들기도 했다. 전자초고속도로를 예견했고 댓글 같은 쌍방향소통문화(interactive)를 낳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TV와 부처를 나란히 놓고, 과학과 예술을 맛있게 비비는 랜덤액세스도 고안했다. 진중권과 정재승의 신작 <크로스>는 그런 면에서 백남준과 통한다.
백남준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나이였다.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하고 아무도 가지 않을 길을 가고 아무도 상상하지 않은 예술을 창조했다. 이보다 스릴 넘치고 가슴 벅찬 일이 또 있으랴. 백남준은 이 세상에 와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갔다. 그런 면에서 피카소, 뒤샹, 워홀과 동급이다. 그는 마침내 이런 탄성을 터트렸다.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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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전 소개 http://njp.kr/root/html_kor/cur_exh.asp
약도 및 교통편 참고 http://www.njpartcenter.kr/ie.html 입장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