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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가 내 시동생이여!"

50년 만에 공개를 준비하는 김주열 열사 사진들

등록|2010.03.23 16:44 수정|2010.03.23 16:44
얼마 전 제가 나가는 모임의 나이 많으신 여자 분이 "혹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사진이냐"고 물어봤더니 "흑백으로 된 사진"이라고 하시기에, 제가 직접 해드리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며칠 후 그 분이 가져 오신 것은 열장 남짓한 작은 흑백사진이었습니다. 사진에는 개인 사진 몇 장과 장례식 운구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장면이 좀 심상치 않아서 "이게 무슨 사진이에요?"라고 여쭈어 봤습니다.

그 분은 "1960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 사진이여, 그분이 내 시동생되는데 이번에 50주년 기념해서 장례식을 치러준다고 하고, 이것 저것 준비한다고 해서 이렇게 사진 보내주려고 부탁한 거예요"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씀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저 교과서에서만 듣고 보았던 분의 생전의 모습을 제가 이렇게 사진으로 나마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가슴이 뛰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분의 말씀. 그분은 김주열 열사 태몽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시어머니께 들으니 시동생을 임신했을 때, 두 내외(김주열열사 아버지와 어머니)가 꿈을 따로 꾸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하늘에서 옥황상제가 내려와서 금열쇠를 전해주는 꿈을 꾸었고, 시아버지께서는 말이 자신에게 막 거세게 달려 왔는데 그 말이 지나고 다니 비둘기가 많이 날아가더라. 김주열 열사 사후에 시어미니께서 소파상을 수상했는데, 그 때 금반지를 받으시면서 꿈 생각이 나서 우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됐든 그 분이야 말로 우리나라 민주화를 앞당기는 큰 열쇠가 되셨다는 점에서 태몽이 그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장례식 사진을 보시면서 "경찰이 시신을 싣고 와서 얼굴도 못보게 했다고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며 "자신을 먼저 보내고 남편과도 일찍 사별하시고도 남은 자녀들과 함께 열심히 사신 정말 멋있는 시어머니셨다"고 회고 했습니다.

사진을 모두 스캔하고 나서 돌려 드리면서 "이 사진 몇 장 인터넷에 올려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모습을 뵐 수 있게 해드리면 어떨까요?"라고 말씀 드렸는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모두 공개하는 것은 어렵고 그 분이 살아 생전에 찍은 사진 몇 장만 공개합니다.

* 이 사진은 허락을 직접 받은 분 이외에 어떤 곳에도 게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합니다.

▲ 고 김주열 열사 개인사진 ⓒ 김해영


▲ 당시 중학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김주열 열사의 모습. ⓒ 김해영


누이와 함께4294년 1월 라고 뒤에 써 있었던 (서기 1959년) 사진. 함께 찍은 분은 누이로 추정된다. ⓒ 김해영

덧붙이는 글 첨부 된 사진은 허락 받은 분 이외에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사용을 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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