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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57)

[우리 말에 마음쓰기 885] '귀여운 존재들만의 평화', '내 존재 가치' 다듬기

등록|2010.03.24 13:27 수정|2010.03.24 13:27

ㄱ. 귀여운 존재들만의 평화

.. 캔디는 귀여운 존재들만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밤낮 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  <후루야 우사마루/김동주 옮김-최강 여고생 마이>(애니북스,2006) 189쪽

"평화를 위(爲)해"는 "평화를 지키려고"나 "평화를 생각하며"로 다듬어 줍니다. 또는, "평화를 사랑하기에"나 "평화를 좋아하기에"로 다듬어 봅니다.

 ┌ 귀여운 존재들만의 평화를 위해
 │
 │→ 귀여운 녀석들한테만 평화를 지켜 주고자
 │→ 귀여운 녀석들한테만 평화를 베풀어 주고자
 │→ 귀여운 이들만 평화를 누리게 하고자
 │→ 귀여운 이들만 평화로이 살게 하고자
 └ …

이 보기글이라면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를 누리도록 해 주고 싶어서"쯤으로 손질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를 맛보게끔 해 주고 싶은 마음에"쯤으로 손질해도 괜찮으리라 봅니다.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로이 살도록 지켜 주려는 뜻으로"쯤으로 손질해도 잘 어울릴 테지요.

이야기 흐름을 살피면 알맞춤하게 적을 만한 말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흐름을 헤아리면 올바르게 추스를 만한 말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흐름을 곰곰이 짚으면 살가이 북돋울 만한 말매무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흐름을 돌아보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고리타분한 틀에 갇히듯, 생각하지 않으며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한결같이 따분하고 딱딱하고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말과 글에 머물고 맙니다.

 ┌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롭도록 지키고 싶어서
 ├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를 누리도록 하고 싶어서
 ├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를 맛보도록 하고 싶어서
 ├ 귀여운 사람들만 평화를 누리도록 돕고 싶어서
 └ …

생각이 있어야 하는 삶이요, 생각을 일구어야 하는 말입니다. 생각이 있어야 살찌는 글이요, 생각을 다스려야 하는 글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불쌍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거나 글쓰는 사람도 불쌍합니다.


ㄴ. 내 존재 가치

.. 내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실패만 안겨 주는 세상을 반복적으로 원망하게 되면 자기 존재를 알리고 힘을 과시하려고 가장 연약한 사람을 찾아 난폭하게 구는 거죠 ..  <정희운-너 아니면 나>(이매진,2009) 22쪽

'인정(認定)하지'는 '받아들이지'나 '살피지'나 '헤아리지'로 다듬습니다. '실패(失敗)'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쓴맛'이나 '아픔'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반복적(反復的)으로'는 '끝없이'나 '자꾸자꾸'로 손질하고, "원망(怨望)하게 되면"은 "미워하면"이나 "못마땅하게 여기면"으로 손질하며, '자기(自己)'는 '내'로 손질해 줍니다. '과시(誇示)하려고'는 '뽐내려고'나 '자랑하려고'로 고쳐쓰고, '연약(軟弱)한'은 '여린'이나 '힘없는'으로 고쳐쓰며, "난폭(亂暴)하게 구는 거죠"는 "거칠게 구는 셈이죠"나 "함부로 굴어 버리죠"나 "마구 괴롭히지요"로 고쳐씁니다.

보기글을 곰곰이 살피니 첫머리에서는 '내'라 적었으나 곧이어 '자기'라 적었군요. 보기글을 통틀어 헤아릴 때에도 한결 쉽고 살갑게 적을 수 있었는데, 그예 딱딱하고 어렵게 적었군요. 말 한 마디이든 글 한 줄이든 우리 마음을 좀더 넉넉하고 따뜻하고 알차게 담아내도록 애쓰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 내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
 │→ 내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 내 값어치를 헤아리지 않고
 │→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 나라는 한 사람을 살피지 않고
 └ …

아무래도 '존재 가치' 같은 대목에서는 한자말 '존재'라든지 '가치'라든지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여기겠구나 싶습니다. 이런 말마디는 학문말이라 여기거나 전문 낱말로 생각하겠구나 싶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말로는 학문말을 일구지 못하거나 우리 글로 전문 낱말을 지어 보고자 마음쓰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아주아주 옛날부터 이 나라 지식인들은 여느 사람들 말로 학문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여느 사람들 말투로 지식을 쌓지 않았으니까요. 여느 사람들 말씨로 전문 갈래를 드높이지 않았으니까요. 여느 사람 말마디로 학자가 된 적은 없으니까요.

 ┌ 자기 존재를 알리고
 │
 │→ 나를 알리고
 │→ 내 모습을 알리고
 │→ 내가 누구인가를 알리고
 │→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리고
 └ …

1930∼40년대에 나온 소설이나 시나 수필을 읽어 보면, 이무렵에도 숱한 한자말과 함께 영어가 섞여 있습니다. 1980∼90년대 문학이든 2000∼10년대 인문학이든, 갖가지 한자말과 더불어 영어가 곁들여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한자말 아닌 한문으로 당신들 지식인 생각을 적바림하고, 어느 자리에는 한두 가지 영어 낱말이 아닌 영어 줄글로 당신들 전문가 생각을 펼쳐 보입니다.

그나마 이제는 한자를 밝혀 적는 일이 줄었다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예 알파벳을 드러내어 적는 일이 늘었습니다. 참으로 엉망진창이요 엉터리인 겨레말이고 겨레글이며 겨레얼입니다. 이런 판에 '존재 가치' 같은 말투 하나를 곱씹는 일이란 더없이 부질없는지 모릅니다. 아니, 부질없겠지요. 이러한 말투를 쓰려고 하는 분들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이 말투를 끊임없이 쓸 테니까요. "내 값어치"라고든 "사람값"이라고든 "삶값"이라고든 우리 깜냥껏 우리 삶과 터전에 걸맞게 우리 말을 빛내거나 갈고닦으려고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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