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돈 받고 팔 거 아니면 누구나 퍼가시오"

[서평] 파워블로거가 준 깨달음 <이그노어! 너만의 생각을 키워라>

등록|2010.03.27 16:13 수정|2010.03.27 18:02

▲ 휴 매클라우드(Hugh Macleod) ⓒ http://gapingvoid.com

영문학을 전공한 광고 카피라이터였던 휴 매클라우드는 취미 삼아 시작한 카툰 그리기(밤마다 맨해튼의 바에서 소일하는 동안 명함 뒷면에 끄적거린)와 블로깅을 통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블로그 (http://gapingvoid.com)는 유수의 평가기관들로부터 미국의 10대 블로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매달 150만여 명이 방문하는 인기 사이트이다.

GapingVoid(입을 딱 벌리고 있는 텅 빈 공간)라는 블로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카툰과 에세이들은 철학적 성찰로 가득하며, 때로는 비트겐쉬타인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2004년부터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한 'How to be creative' 시리즈의 내용과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2009년 미국에서 출간한 <이그노어! 너만의 생각을 키워라>(Ignore Everybody, 페이퍼로드 펴냄. 4월 출간 예정)는 아마존닷컴의 2009년 최고 경제경영서로 선정되었다. 이 책은 붓다의 가르침도 인용하고 있다.

"붓다가 말하듯,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란 없다. 깨달음이란 6백만 개의 문이 있는 집이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절대적인 문'도 '그냥 문'도 아닌 우리 자신만의 독특한 문을 찾고자 한다."

▲ 카툰1-백만장자 아티스트 ⓒ http://gapingvoid.com


   남:내가 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 백만장자인지 아티스트인지.
여:그냥 타협해버리면 안 돼? 백만장자 아티스트가 된다든가…

모든 사람은 아티스트다

아티스트가 흔해진 세상이다. 전통적인 예술 장르에 종사하는 이들 말고도 아티스트라 불러야 좋을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블로거,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소믈리에, 셰프, 파티셰… 심지어 연애의 고수들도 '픽업 아티스트(pickup artist)'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불린다. 바야흐로 아티스트의 시대인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은 아티스트다"라는 명제를 바탕에 깔고 삶과 조직, 창의성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촌철살인의 텍스트와 카툰에 담아 40개의 소주제로 풀어놓고 있다.

조직 내의 권력관계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견제하려는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고 용기 있게 밀고나가라는 조언, 기업에서 다른 사람의 창의성으로 잔치를 벌이며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에 환장하는 인간 기생충들이 창궐하는 이유, 취미를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의 위험, 본인이 사랑하는 것은 절대 팔지 말라는 권고 등 상식을 뒤집는 참신한 생각들을 독특한 스타일로 제시하고 있다.

읽는 이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건(조직원이든 프리랜서든)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비즈니스와 아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가볍게 집어들고 즐겁게 읽는 동안 육중한 무언가가 뒤통수와 가슴을 쿵쿵 두들기는 신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힘이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은 친구나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이건 아마도 저자 본인의 생생한 체험에서 길어 올린 절실한 깨달음들을 '가슴으로 써내려간' 정직함 덕분인 듯하다. 

카툰으로 들여다보는 인간 존재의 심연

▲ 카툰2_양과 늑대 ⓒ http://gapingvoid.com



양이 된다는 것의 대가는 지루함이다.  
늑대가 된다는 것의 대가는 외로움이다.
어느 쪽이건 신중하게 선택하라.

책의 각 꼭지마다 붙어 있는 카툰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책을 구성하고 있다. 때로는 텍스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상당수는 독립적으로 음미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우디 앨런과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인물들처럼 시니컬하고 신경증적인 캐릭터들은 뉴욕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허위의식과 경박함, 인간조건의 무의미함을 단순한 선묘로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다.

휴 매클라우드는 독자들로 하여금 캐릭터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보기 드문 카투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캐릭터의 존재 전체를 한두 줄의 문장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 카툰3-아티스트 ⓒ http://gapingvoid.com


(아티스트의 바)고통스러워. 고통스러워. 고통스러워.
아가씨,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죠? 고통스러워.

"마음껏 퍼가시오"

창작물에 대한 상업적 권리를 주장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발하며, 자유로운 나눔과 소통을 추구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네티즌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자신의 카툰을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마음껏 퍼가라는 매클라우드의 공지를 읽으면 이 책을 깊이 있고 힘이 있게 만든 저자의 통 큰 마음자리를 느낄 수 있다.

매클라우드는 다운로드 받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블로그, 티셔츠, 액자, 머그잔, 기타 등) 프린트용 고해상도 파일을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에서 신청만 하면 거의 매일 따끈따끈한 카툰과 글을 담은 뉴스레터를 받아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작품에 돈을 내지 않는데 그는 대체 뭘 먹고 살까?

"사람들이 예술은 사지 않지만 와인은 사더라"는 깨달음을 얻은 매클라우드는 남아공産 와인 브랜드를 자기 블로그를 통해 마케팅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카툰을 다운 받으려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할수록 와인을 팔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재미있는 생각이다. 게다가 그는 지금도 틈틈이 카피라이터 일을 하기도 한다. 본인의 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생계를 위한 본업은 유지하면서 창조적이고 섹시한 일은 취미로 할 때 더 많은 자유와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에 능숙하다는 건 피겨 스케이팅을 타는 것과 같다. 뭔가에 능숙하다는 말은 그것을 쉬워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절대로."

"그들은 당신으로부터 110퍼센트를 원하지만 같은 만큼을 돌려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아티스트는 큰 그릇에 담긴 파스타의 한 가락에 불과하다. 그들의 비즈니스모델은 기본적으로 파스타를 통째로 벽에다 던지고는 어떤 가락이 벽에 붙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가락들은 그냥 잊혀지고 만다."

"오랫동안 전해져오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20년 경력을 자랑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진짜로 가진 건 20번 반복된 1년 경력일 뿐이다.'"

▲ 한국 번역서 표지 ⓒ 페이퍼로드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song1600)에서 휴 매클라우드의 블로그와 뉴스레터, 책의 일부를 번역하여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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