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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살 된 나무가 벼락을 맞았다고?

전라도 나주목사 내아에 선 '벼락 맞은 팽나무'

등록|2010.03.28 09:40 수정|2010.03.28 09:40

▲ 나주목사내아 '금학헌'. 옛날 나주목사의 살림집이었다. ⓒ 이돈삼


목사내아(牧使內衙)다. 나주 역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문화유적 가운데 하나다. 현재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돼 있다. 나주목(羅州牧)은 고려 성종 2년에 설치된 뒤 조선시대까지 1000년 동안 이어졌다. 전라도 나주가 '천년고도', '목사골'로 불리는 이유다.

목사내아는 이 목사골의 나주목사가 살았던 살림집이다. '금학헌(琴鶴軒)'이라 불린다. 거문고 소리에 학이 춤을 추는 곳이다. 그만큼 아늑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란 뜻 일 게다. 건물이 지어진 지 200여 년 됐다. 곳곳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산벚나무가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아래에는 그네와 투호가 보인다. 방문자들의 체험용으로 내놓은 것들이다. 그 오른쪽 담장과 나란히 선 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끈다. 나이 지긋한 나무다. 500살 된 팽나무란다.

나주의 큰 산인 금성산을 바라보며 관아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나주의 역사와 내아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을 나이다. 그런데 나무의 생김새가 보통의 것과 다르다. 안내판을 보니 '벼락 맞은 팽나무'라고 씌어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란다.

▲ 나주목사내아의 산벚나무.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 이돈삼


▲ 나주목사내아 전경. 오른쪽에 우뚝 선 나무가 벼락 맞은 팽나무다. ⓒ 이돈삼


예부터 벼락 맞은 나무는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큰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던 날 벼락을 맞았던 팽나무이고, 이 나무가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게 안내판의 요지다.

뿌리 깊은 나무의 강한 생명력으로 기적처럼 살아난 팽나무. 여전히 목사내아를 지키며 방문자들의 얘기를 모두 가슴 깊이 들어주고, 예상치 못한 큰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란다. 이 나무는 벼락을 맞은 이후 황토로 봉합을 하고 쇠사슬로 묶어 지탱을 하는 수술을 받아 지금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고.

대개 복을 빌어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기념품의 재료로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인기다. 아마도 여기서 힌트를 얻어 벼락 맞은 팽나무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소원을 들어준다니 살짝 눈을 감고 나지막이 희망사항을 말해 본다. 진짜 들어 주려는지 알 수 없지만, 기분은 좋다.

▲ 벼락 맞은 팽나무. 벼락을 맞아 벌어진 자리를 봉합해 놓았다. ⓒ 이돈삼


▲ 나주목사내아와 벼락 맞은 팽나무. 벼락을 맞아 벌어진 자리를 메우고 위 가지는 쇠사슬로 고정해 놓았다. ⓒ 이돈삼


건물은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안채는 관아의 살림집답게 당시 상류사회의 생활공간을 엿볼 수 있다. 옛날에는 본채와 문간채 사이에 아담한 담장이 있어 공간을 분리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일반적인 가옥보다 부엌이 많고 크다. 그 만큼 손님이 많이 드나든 모양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수들의 관사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형됐으나 최근 복원했다. 문화재를 복원하고 가꾸는 것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이곳 목사내아는 단순한 복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발 더 나아가 숙박체험 공간으로 만들었다.

전시 위주의 문화재 관리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이 문화재를 직접 체험하면서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나주시는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벽지와 전등을 깔끔하게 바꿨다.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전통가구도 배치했다. 샤워실과 탈의실, 수세식 화장실도 갖췄다.

아궁이도 고쳐 군불을 지피면 이튿날 아침까지 따뜻하도록 했다. 내부시설을 고쳐 숙박체험 공간으로 바꾼 나주시의 예상은 적중했다. 외지인들을 중심으로 주말과 휴일은 물론 평상시에도 숙박을 하려는 여행객들이 몰리고 있다.

▲ 나주목사내아 대청마루. 고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 이돈삼


▲ 여행객들의 숙박체험 공간으로 거듭난 나주목사내아. 고증을 거쳐 전통가구까지 배치해 놓았다. ⓒ 이돈삼


특별한 체험방은 유석증방과 김성일방이다. 고증에 의하면 나주에는 300여 명의 목사가 거쳐 갔다. 그 중에서도 유석증과 김성일 목사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유석증 목사는 1610년과 1619년 두 차례 나주목사로 재직했다.

역사기록(광해군일기)에 의하면 나주 백성들이 쌀 300석을 모금해 재부임운동을 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단다. 수탈을 일삼던 탐관오리가 판을 치던 시절 청백리 정신을 실천한 유석증 목사에 대한 나주 백성들의 진실한 사랑과 믿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김성일 목사는 서애 유성룡과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로 나주에서 3년 동안 인의정치를 실천했다. 어려운 송사(訟事)도 현명하게 해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어리석은 백성도 김성일 목사의 말을 들으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 나주목사내아의 대청. 가운데 의자에 앉으면 당시 목사가 될 것만 같다. ⓒ 이돈삼


요즘 전국 어디든지 한옥체험을 할 만한 곳은 많다. 하지만 관아 건물에서 하룻밤 묵으면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몇 백 년을 거슬러 나주목사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선인들의 지혜도 배우고 상큼한 기운도 얻을 수 있겠다.

나주목사내아는 나주 매일시장 부근에 있다. 나주의 별미로 이름난 나주곰탕 골목에서도 지척이다. 나주를 지나는 길에 곰탕도 맛보고 산책 겸해서 내아도 들러볼만 하다. 일부러 내아를 목적으로 가봐도 좋겠다. 목사내아는 물론 나주곰탕도 나주나들이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사실 나주는 한동안 여행객들의 마음에서 조금 밀려나 있었다. 역사와 전통은 있지만 크게 치장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웠던 나주에는 크고 작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목사내아는 그 가운데 하나다.

목사내아 외에도 객사건물인 '금성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돌로 쌓은 성인 '남고문'도 있다. 백제의 불교전파 경로를 밝히는 중요한 사찰인 불회사도 나주에 속한다. 왕건과 장화왕후의 로맨스가 어린 완사천도 있다. 마한시대 고분군도 있다. 가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스며 있다.

▲ 벼락 맞은 팽나무의 뿌리. 나주목사내아의 담장과 나란히 서 있다. ⓒ 이돈삼


▲ 나주목사내아 전경. 옛날 나주목사가 살던 살림집이었다. 지금은 여행객들의 숙박체험 공간으로 변신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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