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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계신 어머니께 선물을...

상사화 심고, 책 한 권 드렸습니다

등록|2010.03.31 10:52 수정|2010.03.31 10:53
해마다 찾아오는 봄은 잦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해마다 봄을 맞이하여 어머니 계신 곳에 꽃과 나무를 심으러 갑니다. 그렇게 3월이 되면 언제나 어머니를 찾아 가는 것이지요.

▲ 어머니가 계신곳입니다. 묘지 앞에 노란책을 두고 왔습니다. 어머니는 책을 보며 아들을 생각하시겠지요. 푸른 잎이 돋아난 상사화가 힘이 넘쳐 납니다. ⓒ 배만호


올해에는 어머니 계시는 곳에 상사화(相思花)를 심었습니다. 슬픔이 많은 꽃이라 심지 않으려 했는데, 마치 저와 어머니의 관계를 뜻하는 것 같아 심었습니다. 상사화는 봄이면 남들보다 빨리 진한 초록의 잎을 내밀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푸른 잎이 사라진 뒤에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예쁜 꽃을 피우지요. 어머니는 제게 있어 상사화의 푸른 잎이 되는 것이지요.
  상사화의 잎은 자신이 그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이른 봄에 추위를 견디며 자라났다는 것을 알까요? 상사화의 예쁜 꽃 역시 이른 봄에 돋아난 푸른 잎 덕분에 더운 여름에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알까요?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이 없습니다. 그래서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相思花)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한 만큼 더욱 아름다운 분홍빛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상사화를 닮았습니다

▲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어머니 앞에서 나지막하게 책을 읽어 드렸습니다. 분명 어머니는 듣고 계셨을 것입니다. ⓒ 배만호


잎이 진 뒤에 석 달 열흘을 보내고서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상사화처럼, 저도 어머니가 떠난지 수 년이 지나서야 어머니 이야기를 조금 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병 간호를 하며 어머니 이야기를 꼭 글로 쓰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그게 이제야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앞에 큰절 두 번 하고, 조용히 기대어 앉았습니다.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노란 책을 펴 들었지요. 이미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은 책이지만, 어머니 앞에서 읽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어머니께 책을 읽어 드렸습니다(관련 기사 : 날마다 우는 남자의 아름다운 고백)

어머니는 한글을 못 깨우쳤습니다. 아들 하나에 달 셋을 둔 외할아버지는 막내인데다 딸인 어머니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들마저도 공부를 시키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글을 모르는 것에 대하여 많은 서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아들은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어머니께 한글을 가르쳐 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긴 겨울밤에 어머니의 답답함을 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알게 된 어머니의 이름 석자와 자식들의 이름과 숫자들. 어머니는 이제 혼자 전화를 걸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어머니는 당신의 이름 석자를 겨우 썼습니다. 정다순(鄭多順). 그리고 겨우 읽을 줄 알게 된 자식들의 이름을 보고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닮은 꽃은 책으로 피어났습니다. 상사화가 꽃을 피운 것이지요. 비록 잎을 만나지는 못해도 잎이 있었기에 꽃을 피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주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그 꽃을 드리겠습니다.

어머니께 제가 쓴 책을 두고 왔습니다. 가만히 두고 온 책을 어머니는 읽고 계실테지요. 글은 몰라도 아들의 마음은 읽을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 저도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제게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상사화가 그런 것처럼 서로 만나지 않아도 느낄수는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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