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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경쟁력의 핵심지표 '표정속도'

등록|2010.03.31 11:33 수정|2010.03.31 11:33
지하철은 대도시의 가장 유용한 공공교통수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울산을 제외한 모든 광역시가 1개 이상의 지하철노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울-수도권은 지하철 9개 노선에다가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광역철도 노선까지 함께 운영되고 있다.

▲ 아침에만 제한적으로 급행열차가 운행되는 경의선 전철 ⓒ 코레일



한편 지하철의 목적은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인 만큼 속도가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 그런데 지하철의 속도의 기준은 자가용과는 다르다. 중간에 정차하지 않는 자가용은 평균속도만 알면 된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처럼 중간에 정류장이 있는 공공교통은 '표정속도'라는 기준을 사용한다. 표정속도란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으로 나눈 것인데, 이때 소요시간에는 정류장에 정차한 시간도 포함된다. 따라서 지하철의 최고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중간에 정차역이 많으면 표정속도가 떨어진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하철의 최고 속도는 70~90km/h에 이르지만 표정속도는 대체로 30km/h 중반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표정속도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수도권전철의 표정속도 ⓒ 한우진



표정속도가 빠를수록 승객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즉 전철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철의 표정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정차역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활용한 것이 바로 급행열차이다. 지하철에서 급행열차란 중요한 역만 정차하며 빠르게 달리는 열차를 말하는데, 정차역이 줄어든 만큼 표정속도가 올라간다. 9호선 급행열차의 경우, 완행열차에 비해 14개 역을 덜 정차하며 덕분에 표정속도가 31.2km/h에서 46.8km/h로 올라가게 된다. 단 급행열차만 운행시킬 경우, 완행역 승객은 열차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급행과 완행을 적절히 섞어서 운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차량의 가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비록 역에 정차를 했더라도 다시 출발하여 재빨리 원래 속도로 돌아오면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경량전철이다.

경전철은 기존의 전철보다 크기, 폭, 무게, 편성량수가 작은 미니 전철을 말하는데, 이들 전철은 가벼운 만큼 가속도도 높다. 현재 대도시에 운행 중인 지하철 전동차의 가속도는 3.0km/h/s이다. 이는 속도를 시속 3km 높이는데 1초가 든다는 것으로, 정지 상태에서 60km/h까지 올리는데 20초가 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전철들은 이보다 높은 3.5km/h/s이상의 가속도를 낼 수 있어서, 정거장 출발 후 더 빠르게 원래 속도로 복귀가 가능하다. 실제로 김포공항부터 김포 한강신도시까지 건설되는 김포경전철은 표정속도가 42km/h로 지하철보다도 더 높게 설계되고 있다. 이는 경량전철 전동차의 높은 가감속도에 기인한 것이다.

▲ 높은 표정속도를 갖는 경전철로 계획 중인 김포경전철 ⓒ 국토해양부



마지막 방법은 역간 거리를 넓히는 것이다. 역간 거리를 넓히면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달릴 수 있어서 표정속도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현재 분당선 전철(선릉~보정)의 평균 역간 거리는 1.5km에 불과하며 표정속도는 36.1km/h이다. 하지만 강남역과 분당의 정자역을 연결할 예정인 신분당선 전철의 역간 거리는 평균 3.4km에 이르며 표정속도는 64.9km/h가 된다.

▲ 급행열차로 표정속도를 높이는 9호선과, 넓은 역간거리로 표정속도를 높이는 신분당선 ⓒ 서울시메트로9호선(주), 신분당선(주)



전철이 자가용이나 광역급행버스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표정속도 때문이다. 시간이 돈인 현대 사회에서 느린 교통수단이 승객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 이렇게 전철이 승객을 흡수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끌고 도로로 나서기 때문에 결국 도로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철의 표정속도가 올라간다면 사람들은 자가용 대신 전철을 타기 시작할 것이고, 도로에는 자동차가 줄어들어 소통도 원활해진다. 결국 도로의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철의 표정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표정속도는 대도시내의 도시철도보다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광역철도에서 더 중요하다. 광역철도의 승객이 더 먼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도권의 광역철도들은 마치 도시철도처럼 일일이 모든 역에 정차하는 운행을 하고 있어서 표정속도가 매우 낮은 실정이다. 다행히 경인선과 경부선에는 하루 종일 급행열차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고, 경원선, 중앙선, 경의선, 안산선 등에는 평일 아침 출근시간에 급행열차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빠른 표정속도를 원하는 승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급행열차의 운행거리가 완행열차보다 짧거나, 퇴근 시간에는 운행되지 않는 등 한계도 있다. 너무 소극적으로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기관에서는 전철의 표정속도를 높이기 위하여 급행열차의 운행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편 급행열차 확대 운행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당국에서는 차량이 부족하다거나 완행역 승객의 불편이 예상된다는 답변을 하고는 하는데, 기존의 완행열차를 급행열차로 전환하면 차량이 더 필요할 일은 없다. 오히려 급행열차의 속도가 높아 회전률이 높기 때문에 차량은 덜 필요하게 된다. 또한 급행열차와 완행열차가 환승이 고려되어 상호보완적으로 운행한다면 완행역 승객도 피해를 보지 않고 급행의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버스와 전철의 요금이 통합되어 있으므로 급행비정차역은 버스로 연계수송을 할 수도 있다.

▲ 안산선 급행열차의 정차역표. 출근시간대에만 운행되는 한계가 있다 ⓒ 코레일





높은 표정속도는 전철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건설되는 전철들은 높은 표정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기존 전철의 표정속도를 높이는 다양한 대책도 시행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에서는 수도권 광역교통망 계획 등 다양한 노선 신설 종합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이러한 계획 외에도 기존선의 표정속도를 높이는 종합계획도 준비해주었으면 한다. 수요가 불확실한 신선을 건설하는 것보다, 기존선 주변에 주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표정속도 개선이 더 효과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전철은 양적인 팽창에만 집중해왔다. 하지만 질적 발전 없이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관계기관은 경쟁력 강화에 중심을 두고 전철의 건설, 개량에 힘써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경쟁력의 최우선 지표는 바로 표정속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한우진 시민기자는 교통평론가, 미래철도DB 운영자(frdb.wo.to), 코레일 명예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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