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비극... 러시아 쿠르스크호와 천안함
10년 전 러시아 침몰 사고와 꼭 닮은 천안함 침몰
▲ 러시아의 오스카급 전략 핵잠수함인 K-141 쿠르스크와 동급인 K-186 옴스크 ⓒ 위키피디아
정확히 10년 전이다. 그건 내가 <오마이뉴스>에 쓴 두 번째 글이었고 톱에 올라서 오다 가다 읽혔던 첫 번째(관련기사 : 차가운 바다에서 숨져간 러시아의 젊은이들에게) 글이기도 했다.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병사 118명이 탄 핵 잠수함이 훈련 중 침몰했다. 이 소식은 서방 언론에 의해 먼저 알려졌고 러시아 국민들은 사건 보도 후 이틀이 지나서야 정부로부터 사실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늦은 건 정부 발표만이 아니었다. 취임 100일 전야를 맞은 푸틴의 새 정부는 악천후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구조를 서둘지 않았고 영국과 노르웨이의 해저 장비 지원도 거부했다. 핵 잠수함의 기밀 유출을 우려한 러시아 정부는 결국 자국의 인양 작업이 연거푸 실패를 거듭하자 노르웨이의 지원을 받아들여 잠수함을 인양했다.
사흘 만에 시작된 구조가 인양까진 꼭 열흘이 걸렸다. 사고 원인도 계속 달라졌다. 처음엔 주변을 정찰하던 서방 잠수함과의 충돌이라고 했다가 같은 러시아 핵순양함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발표를 했다. 그건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만이었다.
항의하는 유족에게 강제로 진정제를 맞춰서 끌어 내고 서방 언론에 실종 병사의 명단을 팔려한 러시아 해군 관계자가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그들이 압도적인 표차로 뽑아준 새 대통령은 동계올림픽이 열릴 소치라는 곳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10년 전 러시아 침몰 사고와 꼭 닮은 천안함 침몰
▲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나흘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조속한 구조작업을 요구하며 해군 관계자를 붙잡고 항의를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10년 전 난 그들이 안타까웠다. 북극의 그 차가운 바닷속에서 기약 없이 죽어갔던 118명의 러시아 젊은이들을 난 진심으로 추모했다. 그들이 지키려던 조국 러시아, 그들이 몸 담았던 군대가 저런 더럽고 흉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해저·하늘 그 어딘가에서 몹시 슬퍼하고 있을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로서 말이다. 더불어 대선과 최악의 잠수함 사고 등의 위기를 체첸 사태같은 더 큰 위기로 넘기고 있는 계략과 기교의 푸틴이 앞으로 러시아란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지 '주제넘게' 걱정하기도 했다.
4월 1일로 꼭 이레째다.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원인 불명의 사고로 두 동강이 나 가라앉은 게. 이제 더 이상 방송에도 나오지 않는 46명의 이병, 일병, 상병, 병장…. 이 명단 속 사람들은 여전히 실종자다. 함장은 나왔고 그들은 아직 잠겨있다.
살아온 이들은 입단속을 당하고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와 군 당국과 날씨와의 싸움에 지쳐가고 있다. 정부의 늑장 대처, 어디 하나 똑 부러지는 곳 없는 사건 정황 속에서 어떡하든 북한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뜬 이들의 의지만이 자못 결연해 보일 뿐이다.
10년 전 나는 쿠르스크호의 침몰에 대처하는 러시아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고 후진성을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하고 있을 것 같다. 아이들 장난하냐고. 눈 가리고 아웅하냐고. 거긴 차가운 북극해 부근이었고 깊이도 100m가 넘었다고. 그건 천안함과는 비교가 안되는 154m짜리 거대한 잠수기였다고. 억울하지만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누구네 국가가 누구네 군대가 더 후진적인지 이젠 우리도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다.
지금 실종자들은 애타게 구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0년 당시, 열흘 만에 인양된 핵 잠수함에선 한 대위가 작성한 메모가 발견됐다.
'15:45분, 너무 어두워 글을 쓸 수 없지만… 손의 느낌으로 써나갈 것이다.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10~20%정도, 최소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되기를 희망한다. 9번 격실에 모여 살아서 나가고자 하는 승무원들의 명단을 여기 적어둔다. 모든 이들이여 안녕… 결코 절망하지 마라.'
러시아 정부가 실종자들이 이미 사망했을 거라고 했던 그 시각, 그들은 108m 해저에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정부가 악천후 핑계를 대던 그 시각이었다. 그 정부는 결국 메모에 적힌 '9번 격실에 모여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승무원들의 명단'을 밝히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 백령도 어느 해저 9번 격실 어둠속에서 '절망하지 말라'고 쓰고 있을 누군가가 아직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