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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그 모순의 증거

인공계류(溪流)에서 연명할 금강모치를 애도함

등록|2010.04.01 14:30 수정|2010.04.01 14:30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 곰에게 미안할 만큼 미련을 부리는 경우가 흖습니다.

신도시를 만든답시고 수백년 잘 조화된 산을 중장비로 애써 으깨고 짓이긴 다음 다시 인위적인 서툰 솜씨로 동산을 복원합니다. 종의 다양성이 보존된 늪을 메우고 나중에 생태연못을 만든다고 야단을 피웁니다. 집 주변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옥상을 녹화한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합니다.

▲ 여전히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산하 ⓒ 이안수


▲ 건물옥상을 녹화하는 법을 보여주기위해 시범적으로 시공된 지붕 ⓒ 이안수


이 모든 모순(矛盾)은 생명을 이롭게 하기보다 경제성과 효율성을 기준한 결과일 것입니다.

저는 어제(3월 30일) 30여년의 사력(社歷)를 가진 조경회사인 한수종합조경의 계열사인 강화도의 한수농원을 방문했습니다.

높은 산의 비탈과 계곡 그리고 그 산의 발치를 포함한 25만평에 갖은 수목과 조경용 수생식물과 세덤류들이 인공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 개천 어느곳이나 지천이었던 갯버들. 이런 관목들조차 이처럼 묘목으로 키워지고 있는 모습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 이안수


▲ 돌나물이나 기린초, 알붐 같은 세덤류도 이 처럼 비닐하우스로 찬 바람을 막아 온갖 정성으로 키워진 것들입니다. ⓒ 이안수


▲ 우리는 기존의 아름다운 생태를 파괴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고 또다시 그것을 복원하기위한 초목을 기르기위해서 또다시 비닐하우스를 짓고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 이안수


▲ 거대한 농원에 놓인 이 작은 묘목들이 우리의 모순과 희망을 동시에 웅변합니다 ⓒ 이안수


이미 30여 년 전에 북미동북부가 고향인 미국참나무인 대왕참나무같은 조경수목의 묘목을 심어 아름드리로 키워둔 안목이 돋보였습니다.

대왕참나무외에도 주목, 독일가문비, 이팝나무, 자귀나무, 메타세콰이아, 노각나무, 산딸나무, 두충나무, 때죽나무, 양광나무, 층층나무 등 수십 만주의 조경수들이 대처의 정원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화도 산의 한 사면이 이 조경수들로 원래의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것은 슬픔이고 이 조경수들이 대처를 푸르게 할 것임을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 회사의 곳곳에는 도회지에 적용 가능한 인공연못과 인공계곡이 샘플로 시공되어있었습니다.

이 기술들은 이미 복개된 하천과 갈대밭을 잃고 고수부지로 개발된 강변, 콘크리트로 열심히 정비된 개울 등을 대신해 자연스러움을 보여줄 것입니다.

▲ 인공계류. 돌을 타고 흘흐는 이 물은 지하로 매설된 관을 타고 역류한 물이 이 사진의 위쪽 돌 사이로 살짝 드러나 플라스틱관을 통해 다시 순환한 것입니다. ⓒ 이안수


물을 묻어둔 지하관로로 역류시키는데 소비되는 에너지를 상쇄하고도 남을, 잃어버린 생태계가 작게나마 복원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피라미나 금강모치, 선천어와 쉬리, 각시붕어와 가시납지리를 계곡이나 하천이 아니라 건물옥상이나 운동장 한 켠에 인공적으로 조정된 생태연못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어종으로 분류하는 날이 올 것이 두렵습니다.

▲ 인공계류. 멀지않은 미래에 금강모치를 이 인공계류에서나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 같은 예감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 이안수


머루나 으름덩굴, 큰꽃으아리나 다래, 인동과 자주종덩굴이 숲속에서가 아니라 노출콘크리트 벽면의 철망의 보호를 받고서만이 자랄 수 있는 것인 줄 알게될까봐 두려움입니다.

▲ 인동, 머루 으름덩굴, 큰꽃으아리, 참으아리, 덩굴장미, 줄사철, 다래, 자주종덩굴, 능소화 등으로 벽면을 녹화하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간의 행위를 가리는 가식假飾의 기술이 큰 비지니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안수


"당신이 이곳 안 와본들 내 어떠하며
벗들이 이곳 안 찾은들 내 어떠하리.

한적한 농장에 작은 꽃도 향기롭고
노을 진 석양도 제멋대로 아름답거늘

사내로 태어나 고운 흙에 씨뿌리며
끝나지 않은 아름다운 도전하고 있거늘

누가 나를 몰라준들 내 마음 어떠하며
세상사 내 모른들 그 무슨 상관이랴."

▲ 그래도 희망은 '농부'일 것입니다. ⓒ 이안수


숲속에 만들어진 그늘막 처마에 걸린 '위심(爲心)'이라는 이 회사 한경구 대표의 시가 초지일관 흙에  땀방울을 섞어야하는 우직스러운 농사꾼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기적인 개발과 과소비로 부터의 세상 구원은 농사꾼에 의해 이루어질지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 갯버들은 봄을 잊지않았고 벌도 이봄에 발걸음을 거두지않았으니 다행입니다. ⓒ 이안수


▲ 갓 피어난 마가목의 새순이 희망인양 손을 벌립니다. ⓒ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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