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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지은 동기부터가 잘못이었다"

다석 류영모의 강의에 직계제자 박영호의 풀이 <다석 마지막 강의>

등록|2010.04.01 17:29 수정|2010.04.01 17:29

책겉그림〈다석 마지막 강의〉 ⓒ 교양인

이번 일요일인 2010년 4월 4일은 기독교계가 축하하는 부활절이다. 예수께서 죄와 죽음을 깨트리고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며, 그 뜻을 받들고 기리는 날이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부활한 그 시점으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가 가르친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전하며 나누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교회가 사람들 모임인데도 건물이나 제도만을 키우고 공고히 하려는데 혈안이 돼 있다. 교회가 허우대만 멀쩡한 기독교이지 속은 샤먼들이 지닌 굿판으로 가득 차 있는 까닭이다. 교회가 살아 있는 삶을 보여주는 제사는 없고 교회당 안에 죽어 있는 교리만 난무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많은데 참교육이 없듯이, 교회는 많은데 참신앙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때에 다석(多夕) 류영모는 뭐라 말할까. 그가 육성으로 이야기하고, 그 직계제자 박영호가 풀이한<다석 마지막 강의>는 오늘날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강의에서 사람은 몸나와 맘나인 제나(自我)를 다스리기 위해서 참나(얼나)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때에만 사람이 탐·진·치(貪瞋痴) 같은 짐승 성질을 다스릴 수 있고, 제나를 강조하는 기복종교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영성으로 일어설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여러 한자말을 풀어쓰는 데서도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른바 제사(祭祀)라는 것도, 기도(祈禱)라는 것도, 복(福)이라는 것도 참된 얼나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이는(示)' 것이라 강조한다. 참된 신앙은 예배당이나 조직 안에서만 착하고 진실한 척 한 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세상 한복판에 참된 얼나를 항상 보여주는 것임을 일깨우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참된 제사요, 기도요, 곧 복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요가체조'도 기도라 한다. 그는 20대 초반 오산학교 교사 시절 80세 교장인 치당 백이행을 통해 요가 체조를 배웠다 한다. 백이행은 환갑이 지나 폐결핵을 앓다가 요가 체조를 통해 몸을 살려냈고 그 이후 아흔까지 살았다고 한다. 류영모도 그 덕에 요가체조를 배웠고, 그것이 곧 기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을 향해 보여드리는 참된 얼나이자 바른 뜻을 세울 수 있다는 까닭이다.

다석은 23살까지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예배당에 잘 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왜 이듬해 예배당을 떠났을까? 그건 교회가 주장하고 강조하는 교리(敎理) 곧 사도신경 때문이요, 비대해진 조직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도 사도신경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많은데, 그는 그것이 바울이 강조한 교리신앙이지, 예수가 밝힌 참된 얼나로 솟아나는 신앙고백은 아니라고 한다.

"사도신경은 또 지은 동기부터가 잘못이었다. 사도신경은 7세기에 예수의 영성 신앙을 좇는 이들을 탄압하고자 색출하는 방편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신도들에게 사도신경을 들이밀고서 믿느냐 안 믿느냐고 묻고서 안 믿는다면 무조건 죽였으니 그런 포악한 독재자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렇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20-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은 바로 예수의 가르침을 좇으려는 영성 신앙인들이었다."(396-397쪽)

위에 것을 가슴에 새기려니 문뜩 한완상 님이 쓴 <예수 없는 예수 교회>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분도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너무 교리화 되었다고 개탄한 바 있다. 그것으로는 예수님이 보여주고 가르친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그분도 그 책에서 사도신경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데에서 돌아설 것을 주문한 바 있는데, 그런 깨우침을 다석으로부터 얻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 <다석 마지막 강의>는 류영모가 81살 때인 1971년 8월 12일부터 일주일간 동광원에서 수녀와 수사들에게 한 강의한 것인데, 여기에서 그는 성경과 함께 <맹자><중용><주역>과 불경 등 여러 사상을 아우르는 멋과 맛을 펼친다. 그가 내 뱉은 육성은 얼마나 구성 찬지 실감할 수 있다. 

다석은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익혔고, 1910년인 20살 때 남강 이승훈을 통해 오산학교 교사로 봉직했으며, 최남선과 가까운 교류를 했고, 정릉의 김교신과도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함석헌은 그때 다석에게서 배운 졸업반 학생이었는데, 종종 우찌무라 간쪼에 대해서도 들었다고 한다. 다석은 또 우리말과 우리 글로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니, 얼마나 그 제자들이 흥미로웠겠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다석은 1928년부터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맡아 30년 넘게 강의를 했고, 1946년부터는 25년간 전남 광주에 있는 자생적인 금욕 수도 공동체인 '동광원'에서 해마다 동계와 하계 특강을 했다고 한다. 그는 세 끼를 합쳐 저녁에 한 끼를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多夕)으로 했다는데, 일일일생(一日一生)이 무엇인지 참되게 보여 준 산 증인이라 평가 받는다.

다석이 육성을 통해 들려주는 이 강의록이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까. 구약 율법으로 예수의 제의신학을 해석하고 매달린 바울로부터, 그를 통해 나온 사도신경과 같은 교리적인 신앙으로부터 탈피하여 참된 얼나로 솟아날 수 있도록 큰 깨우침을 주는 게 분명할 것이다.

그 때에만 탐·진·치(貪瞋痴)라는 삼독(三毒)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그 때에만 교회당 안의 죽은 교리로부터 벗어나 삶 속에 참된 제사를 보여줄 수 있으며, 그때에만 사람다운 사람, 복된 신앙인들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부활주일은, 그래서 다석의 바람처럼, 한국교회가 참 얼나로 깨어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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