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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벚꽃나무 무료 급식소

등록|2010.04.01 20:55 수정|2010.04.01 20:55

벚꽃무료 급식소 ⓒ 송유미


1.

저승꽃이 벚꽃보다 
예쁜 복돌이 할머니…
둥글 둥글 엉덩이가

호박덩이만한 손주
업고 나와,
바다가 보이는 용두산 공원에서
무료 급식소 차리셨다고
온동네 방네 소문이 자자하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전기 밥솥에 밥을 안쳐놓고
새벽 시장 봐서
벚꽃 냄새 나는
우윳빛 재첩국도 끓이고,
지난밤 잠도 안 자고 
장만한 밑반찬에
쉬어빠진 김장김치 씻어
김치전을 부쳐서,
손수레에 끌고 나왔다네.

2.

늙은 벚꽃 나무 그늘 아래로
오후 2-3시면 실업자들 노숙자들
벚꽃 냄새 은은한 
우윳빛 할매 재첩국 맛이
끝내준다는
그 발 없는 소문에
귀가 솔깃해
긴가 민가 몰려든다네.

올봄이면 복돌이 아빠가
집을 나간 지 이태라네.
심청이가 눈먼 아버지 찾듯이,
행방불명 된 복돌이 엄마 소식이라도
행여 귀동냥 얻어 들을까... 
우수수 꽃잎들이
하얀 쌀밥처럼
손내미는 합반에 
수북하게 퍼담아주는
벚꽃 무료 급식소 차렸다네.

길고 긴 겨울 동안
떼를 지어 모여 있는
용두산 공원
늙은 벚꽃 나무에
꽃 피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타는 할머니의 속은
아무도 모른다네.

(...할매는 젊었을 적에 진짜 고았지예?
언제 나하고 데이트 좀 할낀교 ? ....)

복돌이 할머니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바빠도
동네 방네 할아버지들은
신선 같이 바둑만 두며
짖궂은 농만 걸다가
바람에 꽃잎처럼 흩어지네.

3.

신혼 때부터 적금 부어 유모차 사서 
큰 아들 태우고 작은 아들 등에 업고

펑펑 꽃폭죽 터뜨리면서
흑백 가족사진 찍던, 
째깍째각 둥근 꽃시계 바늘
돌아갈 때마다 다부지게 생긴
큰 아들과 며느리가 웃으며
걸어나오다가 침침한
복돌이 할머니 눈앞에서
한나절 동안에도 
수천번 나타났다 사라지네.

빠진 그릇 있나 알뜰히 챙긴 
잔설거지 그릇 함지 옆에
호박덩이만한 든든한 
손주 놈 태우고 
그새 아들 내외 돌아왔을까 
연분홍 치마자락 휘날리는
벚꽃그늘 속으로 
왼손도 모르고 오른손도
모르는 벚꽃 나무 무료 급식소
낡은 손수레 한대
아름다운 꽃마차처럼 지나가네

꿈속의 꿈속처럼 그렇게….

벚꽃그늘 아래 ⓒ 영화, 4월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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