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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26회)

눈 위를 달리는 뱀 <2>

등록|2010.04.02 09:51 수정|2010.04.02 14:22
정약용은 은장이 노인의 푸념이 끝날 때를 기다려 슬그머니 서기원에 대해 끄집어냈다.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냉랭해지며 사나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 선비님은 법 없어도 살만큼 죄하고는 담을 쌓았어요. 아마 세 해 전이었을 겁니다. 내가 관음사 주지 스님의 간곡한 청을 받고 잠시 들른 적이 있어요. 어느 이의 관상을 살피는 것이었는데, 몇 번을 뜯어봐야 별 일 없는 것 같아 죽을 때까지 편안하겠습니다 했더니 돈냥을 넉넉히 내놓지 않겠소. 절 아래 마을에서 술 한 잔 먹을 양으로 방을 나서는데 대웅전에서 절을 올리는 부부를 발견했어요. 그 뒷모습이 너무 측은해 잠시 기다렸는데 이윽고 절을 마친 부부가 나오지 뭐겠습니까."

은장이 노인이 본 부부의 상은 이미 사신(死神)이 자리 잡았다는 한숨이었다. 만삭의 부인이 객방에 들어가 잠시 곤한 몸을 쉴 때 방을 빠져나온 사내에게 노인이 말했다.

"나는 한때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예단하여 큰 돈을 벌었소만, 하늘의 응보로 자식들을 모두 잃어버렸소. 지금은 연주대에서 사람들의 운명을 살펴 피해나갈 방법을 은반지 안에 새겨주는 일을 하고 있소만 불행하게도 선비님은 세 식구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갑작스러운 얘기인데다 듣기에도 끔찍했지만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걸 목전에 둔 상태인지라 서기원은 빙그레 웃는 것으로만 답변하고 물러날 기색이었다. 돌아서는 그의 걸음을 은장이 노인이 붙잡았다.

"선비님 부인은 내일 밤 해시(亥時)에 딸을 낳을 것이오. 워낙 허약한 몸이라 산고가 심할 겁니다. 아이를 낳은 즉시 혼절해 사흘간 깨어나질 못할 것이니 부인을 살리려면 산을 내려가는 길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핏덩이를 맡기고 부인을 비롯해 만나는 사람에겐 죽은 아일 낳았다 하십시오. 그리하면 첫 번째 닥친 사신은 멀리할 수 있습니다."

노인은 그 말만을 남기고 휘적휘적 아랫길로 사라졌다고 들려줬다. 얘기를 듣던 송화의 물음이 정중했다.

"어르신께서 그분에게 문둥이 부부를 소개하셨군요?"
"오호, 젊은 처자가 그 일을 안다니 놀랍구려. 아이를 낳은 부인이 혼절해 정신이 있었겠소. 절을 나서는 정신없는 참에 어둔 밤길 처음 만난 문둥이 부부에게 자식을 맡긴 걸 어느 누가 알겠소. 자식을 낳은 것 같았는데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으니 아이를 찾아 해치려는 무리가 있었다면 반신반의 하지 않았겠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사흘인가 나흘째인가 찾아왔기에 내가 반지 하나를 주며 말했다오. '이 반지의 임자가 당신 집안의 주인이오'라고 말이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에 '그걸 알면 당신이 죽는다'고 경고했어요. 다만, 한 가지 부탁은 당신의 딸은 문둥이 부부가 잘 키우고 있으니 아이를 찾아 절에 맡기고 문둥이에겐 치료할 신약(神藥)을 구해 주라고 당부했어요. 그런데 이 일은 목을 매단 부인의 죽음이 발견되면서 흐지부지 잊혀지고 말았지요."

이후로도 은장이 노인은 귓속질을 하듯 말소리를 낮추며 정약용에게 뭔가를 심각하게 들려주었다. 가끔 상대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 보면 상대의 말이 이해된다는 것으로 송화는 해석했다. 어느 덧 하늘은 어두워지고 간간이 날리던 눈발은 우박으로 변해 쏟아지더니 거친 바람 소릴 휘몰아왔다. 오후 늦게부터 산 아래 마을에도 함박눈이 쏟아지며 음습한 거리의 정경을 덮고 있었다.

아침 일찍 관원들을 파견해 일 처리를 지시한 정약용은 송화를 불러 다시 검시기록을 살피게 했다. 일행들은 시형도(屍形圖)를 비롯해 검험장 기록을 토대로 얘길 나누다 송화가 의문점을 제기했다.

"'간'을 도둑맞았다는 건 서기원의 살해를 문둥병자의 소행으로 보이게 할 속셈이나 이점을 분석하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관아에 왔던 문둥이 부부의 나약한 체격이었다. 그 체격으로 서기원을 살해하려면 정면에서 칼로 찌르는 건 불가했다. 아무래도 뒤에서 급습하듯 찔러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마주 보고 선 위치라면, 칼끝은 당연히 아래로 치우치기 마련이므로 정면 살인은 어느 모로 보나 불가했다. 정면에서 살해할 때 특별히 안면이 있는 경우, 상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으므로 전연 배제할 수 없다는 꼬리를 달았다.

또한 의혹이 일어났다. 사체를 관아로 옮긴 후 죽은 자의 옷을 벗기고 사인(死因)과 정황증거를 살펴나갔다. 관측대가 놓인 방은 사방이 밀폐돼 있으므로 외부에서 이물질이 날아올 리 없었다. 그런데 죽은 자의 겉옷에 핏자국과 범벅을 이룬 물체가 발견됐다. 굼벵이었다.

"굼벵이는 배가 터져 죽었지만 피와 엉켜 있습니다. 이것은 서기원이 살았을 적엔 굼벵이도 살았다는 증겁니다. 그러다가 서기원이 살해되면서 굼벵이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굼벵이가 산 속에서, 그것도 영하의 날씨에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초가(草家)나 모옥(茅屋)에서만 살 수 있으니, 만약 죽은 자의 옷에 피와 함께 엉킨 것이라면 서기원은 산 속에서 살해된 게 아니라 다른 장소인 초가집입니다. 그곳에서 살해된 후 범행현장으로 옮겨진 게 분명합니다."

"잘 보았네. 서기원이 살해된 현장이 어디라는 건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송화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밖의 관원들을 데리고 급히 어디론가 떠나갔다. 정약용은 채근했다.

"범인에 대한 윤곽은 드러났지만 범행도구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그것을 범인들이 아직껏 지니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어쨌든 관원들이 그들을 잡아 꿇렸으니 어찌 말하는지 들어 보아야 하질 않느냐."

두 사람이 남산골에 이르렀을 때, 소문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서기원의 집 근처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형체 없는 소문을 은밀히 나누며 일이 어찌 처리되는지에 관심을 보였다. 굳게 닫힌 문이 열리고 뒤늦게 도착한 정약용이 들어서자 뒤를 따라 사람들이 따라왔다. 몸채로 향하는 중문을 지나니 서기원의 후취 김씨 부인의 악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네 놈들이 죄 없는 사람을 죄인인양 다루는 건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짓거리다. 네놈들을 편히 죽게 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은 포청에서 물러났지만 우리 일문은 누대로 죄인 다루는 일에 힘을 썼거늘 너희 같은 일개 무지랭이 관원들이 죄 없는 나를 다짜고짜 죄인으로 몰아붙였으니···."

정약용이 들어서면서 한 소릴 던졌다.

"그렇소이다, 부인! 모든 정황이 부인을 범인으로 몰고 있소이다.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부인께서 범인이 아니라고 증명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3자가 범인이라고 고변하시겠습니까?"

부인은 대답 대신 싸늘한 눈길로 노려보았다. 여전히 정약용의 말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부인을 범인이라 믿습니다. 여러 정황이 하나같이 증명하고 있소이다. 부인께선 혹여 이런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이런 저런 말을 했어도 직접 살인은 하지않았다고 말입니다. 부인께서 이런 일을 저지른 목적이 무엇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털어놓으면 다소 형량이 줄어들지 모르나 계속 부인하면 부득이 관아로 압송할 수밖에 없소이다."

부인이 냉소를 흘리는 바람에 일단 압송해 관아로 구금시키고 색주가에서 기생년을 끼고 권주가 부르던 서기원의 조카를 잡아들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관아엔 소문을 듣고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북적거렸다. 먼저 정약용의 사건 경위 설명이 있었다.

"본 건은 누군가가 서기원을 살해하고 집안의 재물을 착복하려는 데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평소 서기원은 주위 사람들에게 적선을 베풀었으나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부인은 첩실이라도 얻어 자식을 보려 했으나 첩실에게서도 여러 해 동안 자식이 없었지요. 그러던 중 부인의 몸에 아이가 생기자 이를 불안하게 여긴 첩실 김씨는 서기원의 조카와 공모해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일을 규명하기 위해 관원들이 각기 조사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천호가 발끈했다. 의혹이라는 건 만들면 생기는 것으로 자신의 누이는 결코 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편이 이미 저승으로 떠났으니 충격에 빠진 누이와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주장을 내놓자 정약용이 나섰다. 그는 한쪽에 검시기록을 펼치고 그 옆에 은반지를 올려놓았다.

"관악산에서 처음 사체를 발견한 이후 사헌부로 옮겨올 때만 해도 피에 엉겨 붙은 이 반지가 그저 주위에 떨어진 흔한 물건이라 생각했으나 이 반지는 사체의 뱃속에 들어있던 것으로, 사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반지는 얼어붙은 상태로 옷이든 어디든 붙어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이 반지를 발견한 당시에는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물 기운이 반지에 남아 있었으니 반지는 사체의 배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에는 송화가 뒤를 받아 얘기를 이어갔다.

"반지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기에 앞서 세 해 전 남산골에서 일어난 자액(自縊)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목을 맨 부인의 주검은 좌포도청에서 조사하여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음에도 종사관의 주장을 받아들여 평범한 자액 사건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만, 부족하나마 작성된 시장과 시형도를 참조하면 부인은 자액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끈으로 목이 졸린 채 살해된 게 분명합니다. 이에 대한 증거론 목에 건 끈의 흔적이 여러 개 있는데다 대소변이 좌우상하로 범벅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목을 맸다면 아무리 요동을 하여 고통을 참는다 해도 목엔 흔적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부인의 목에 난 것처럼 여러 개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끈을 목에 건 후 뒤에서 잡아당겨 절명시킨 채 목을 매단 것이기에 대소변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고 좌우로 범벅을 이룬 것입니다."

여전히 김천호는 당치않다는 듯 냉소를 뿌렸다. 이미 세 해 전에 죽은 자의 관을 열어 살이 도망간 송장의 뼈를 놓고 자액(自縊)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짓이냐고 비아냥거렸다. 송화가 다시 검시기록을 펼쳤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가 보이지 않았지만, 범인은 서기원의 주변 사람이라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서기원이 문둥이 부부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일을 꾸몄기에 '간'을 도둑맞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문둥이 부부가 속설을 믿고 서기원을 살해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정약용이 나서며 부인을 바라보았다. 냉기가 어린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던 부인의 표정은 여전히 상대를 경멸하는 듯한 조소의 찌꺼기가 흘러 다녔다. 그 표정은 관원들이 가져온 새로운 증거 앞에 일순간 굳어졌다.

"지금이야 부인은 안방으로 옮겼지만, 예전에 머물렀던 별채는 초옥(草屋)이었습니다. 초옥엔 당연히 굼벵이란 녀석이 살게 되는 거고, 놈들은 서기원이 살해되던 날에도 방에 떨어져 있었소이다. 그곳에서 묻혀 관악산 산중에 버려진 것이니 죽음의 여행을 했다고나 할까요. 부인께선 현장을 잘 닦았을 것입니다만, 이미 관원들은 방에 고초를 뿌리고 피의 흔적을 확인했으니 살인에 대해 달리 말이 필요 없을 것이오!"

그런데도 부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나름대로 어떤 궁리를 했는지 모든 죄를 서기원의 조카 서경석(徐耕奭)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곳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나완 상관없어요. 멍청한 서방을 죽인 놈은 그의 조카요. 서가의 조카가 나와의 불륜이 들통난 것으로 보고 살해한 것이니 죄가 있다면 그놈에게 있을 것 아니오?"

이미 서경석은 하루 전 관아에 잡혀올 때부터 정신적인 이상 징후를 보였다. 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자꾸만 헛것이 보인다고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몽총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서경석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김씨 부인은 말꼬리를 흔들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 당시를 말하지요. 하루는 서가에게 오라비가 연루된 서산 쪽 땅을 주면 모든 게 탈 없이 해결될 것이라 말했어요. 오라비가 잡혀간 후 마음자리가 불편한 탓에 그런 말을 했는데 서가의 대답이 엉뚱했어요.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내놓더니 자신의 모든 재물은 은반지의 임자라 하지 않겠어요. 처음엔 농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해서, 그 동안 통정해오던 서가의 조카에게 그런 말을 했었죠. 우리 사이를 알고 있으니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다고요. 만약 일을 꾸미게 되면 서가의 몸에 있는 반지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이것은 '묵시적인 살해'의 유발이지만 직접적인 교사는 될 수 없었다. 이 날은 서경석이 발작 증상을 보이므로 심리와 판결은 다음 날로 미루었다. 다음날 정오쯤에 심리는 다시 시작됐다. 정약용은 은반지에 관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 반지는 죽은 서기원의 뱃속에 들어 있다가 관아로 옮겨진 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생각해보면 죽은 자가 스스로 자신의 뱃속에 반지를 넣을 리 없고 보면 이 반지는 범인의 손에 의해 뱃속에 넣어졌거나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하여 그리됐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문서를 만들어 공표하지 않았지만 죽은 자는 '반지의 임자에게 재물을 남긴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한 공언은 여러 사람이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김씨는 조카인 서경석을 통해 반지를 입수하고 대신 다른 반지를 넣게 했는데 이 반지 안쪽에 쓰인 원(元)자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좌중의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분명 서기원은 자신의 이름자에서 한 자인 '원'을 골라 반지를 만들었고, 그것을 딸에게 주어 스스로의 재물을 모두 상속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한 일의 정표가 '은반지'였다. 그러나 정약용의 말은 전연 다른 뜻이었다.

"서기원 씨가 남긴 반지는 살해 위험에 처한 자식의 생명을 건질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부인의 성은 김씨로 이름이 연숙(涓淑)이니 물(水) 기운이 왕성한 이름잡니다. 그런가하면 서기원의 딸 이름은 희정(熙貞)으로 불(火) 기운이 강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이니 어느 한쪽이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은장이 노인 강씨는 관음사에 온 부인이 딸을 낳을 걸 예견하고 반지를 만들었는데 그 안쪽에 새겨진 건 '원(元)'이라는 글자가 아니라 손괘(巽卦;☴)였습니다. 팔괘 음양으로 보면 손(巽)은 장녀이고 초효(初爻)는 음이기에 딸을 낳을 것이라 하여 반지에 새긴 것입니다. 그런데 부인께서 사람을 보내 다른 반지를 만들게 하고, 그것을 죽은 자의 몸에 넣었으니 이 일은 모두 부인이 꾸민 일로 밝혀진 것이오."

죄인을 구금하고 나오자 사람들은 굳이 딸아이를 관악산 관음사에 머물게 한 데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 점을 정약용은 이렇게 해석했다.

"물(水) 기운이 강한 김씨 부인의 독수를 피하려면 아무래도 불(火) 기운으로 채워진 딸(熙貞) 아이의 운수를 키워야 했을 것입니다. 관악은 풍수지리상 왕도남방지화산(王都南方之火山)이라 하여 '화형(火形)의 산'으로 알려졌습니다.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기에 관악이라 부릅니다만, 뾰족뾰족한 봉우리 모양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입니다. 그러한 기상을 딸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정약용은 말을 마치고 문을 활짝 열었다. 저 만큼 보이는 관악산은 점점이 쏟아지는 눈발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주]
∎자액(自縊) ; 목을 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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