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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직 이후

꽃단추

등록|2010.04.03 17:36 수정|2010.04.03 17:36
어머니, 차디찬 꽃샘 바람에 우수수 꽃들이 떨어지듯이,   단추꽃 문양  내 스무살 원피스 입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만원 지하철 탔다가 꽃단추가 떨어졌습니다.    주부라서 IMF로 다니던 회사에서 1차 해고 정리되어
직장 주부 동료들과
우수수 함께
세찬 바람에
지는 꽃처럼 떨어졌듯이….

어머니,

세상의 모진 바람에
떨어지지 않을 꽃이
어디 있을까마는요,

내 딴은 밀리지 않으려고
입술 깨물수록
세상 밖으로
세상 밖으로...

한 잎 두 잎
세월에 녹슨 꿈들이
더는 여밀 수 없는
헐거운 꽃단추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어느 시인은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지만,
첫단추 채우기 전에
요즘 중국산 헐 값의
만냥 옷들은 
첫단추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평생 나를
다독이며 여미어 주셨으나,
이제 단 한시도 단추 채워 
내가 나를 여미지 않으면,

세상의 언짢은
한마디에도
치부를 겁 없이
드러내고 삽니다.

(어머니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몰라요…)

우수수 창 밖의
가로수들은 
살점을 찢고 나와
화약냄새 풍기며
꽃폭탄 터트립니다.

어머니 저 우수수 
실업처럼 꽃들이
떨어진 자리,

내년이면
다시 촘촘하게
매달릴 꽃들은 

작년에 떨어진 꽃보다, 
더 목줄기 튼튼한
꽃들이 필 것입니다.

▲ 천일홍, 일명 단추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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