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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판결, 항소심서 함부로 못 뒤집어

대법 "배심원 평결과 일치된 1심 판결 항소심은 더 존중해야"

등록|2010.04.05 13:18 수정|2010.04.05 15:47
배심원 평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적 효력만 있지만,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과 일치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항소심에서 한층 더 존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배심원 평결을 존중해 내린 1심 판결을 항소심 재판부가 뒤집으려면 배심원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증명할 수 있는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새로운 사정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으로, 배심원 평결에 대한 항소심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로 의미가 크다.

A(23)씨는 2008년 8월 16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모텔에서 자신의 후배 여자 친구인 S양을 J(33)씨가 성매수 하려는 것을 알고 찾아가 J씨에게 "얘가 내 동생인데,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느냐"라며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또 A씨는 이날 290만 원 상당의 J씨의 금목걸이를 빼앗고, 현장에 함께 간 공모자에게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이야기해 달라며 거짓증언을 하도록 부탁한 혐의(강도상해, 범인도피교사) 등으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한창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A씨의 강도상해와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 배심원의 만장일치 평결을 받아들여 증거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하고, 상해 부분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10형사부(재판장 이강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피해자 J씨에 대한 추가 증인신문 결과를 토대로 1심 국민참여재판 판결을 뒤집고,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후배 여자 친구가 성매매하는 것을 빌미로 모텔에 쳐들어가 그 상대방인 피해자에게 경찰에 신고한다는 등으로 협박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코뼈 골절상을 입히며 반항을 억압한 뒤 금품을 빼앗고, 공모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은폐해 발각되지 않도록 범인도피를 교사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 무죄 깨고, 유죄 판결한 항소심 파기환송

그러나 결과는 대법원에서 또 뒤집어졌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강도상해와 범인도피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A씨에게,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항소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피해자를 비롯한 다수의 증인과 피고인에 대한 심리과정을 직접 지켜본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내린 평결결과를 받아들여 재판부가 이를 토대로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원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무죄에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는 경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피해자의 원심 법정진술을 제외하고는 1심 판단을 뒤집을 만한 특별한 사정으로 내세울 것이 없고, 피해자의 법정진술도 피고인과 대립되는 이해당사자로서 수사과정에서부터 대체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일관해 진술의 반복에 지나지 않아 역시 특별한 사정이라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강도상해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1심을 뒤집고 유죄라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이루어진 형사공판절차를 통해 1심 판단을 합리적 근거 없이 뒤집음으로써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진행된 형사공판절차에서, 엄격한 선정절차를 거쳐 양식 있는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제시하는 평결은 사실심 법관의 판단을 돕기 위한 권고적 효력을 갖는다"며 "배심원이 만장일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1심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와 정신에 비춰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명백히 반대되는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층 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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