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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아, 나보다 먼저 떠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

간암으로 사망한 33세 제자를 떠나 보내며

등록|2010.04.05 14:55 수정|2010.04.05 18:08
흔히 우리네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간을 일컬어 간사하다고들 말한다. 간은 제 기능이 완전 마비될 때쯤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제 서른세 살 나이에, 돌도 안 지난 자식과 사랑하는 아내를 남기고 눈을 감아야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 아니던가!

목련활짝 피어도 아쉬운데 너무 빨리 떠났구나! ⓒ 박병춘


지난 4일(일) 오후, 휴일을 맞아 평소 지인들과 봄 나들이에 빠져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반가운 제자 이름이 액정을 장식하여 정겹게 전화를 받았다.

"오오! 동화야! 이제야 봄이 왔구나. 햇살이 아주 고운데, 안녕?"
"선생님, 저는 동화가 아니구요. 동화 친구 김인성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어어, 그래~ 인성아, 오랜만이구나! 가능하지, 무슨 일이야?"
"…"

약간 울먹이는 투로 인성이가 말을 잇는다.

"선생님…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동화가 오늘 오전 11시에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뭐?… 뭐라고?"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6개월 전에 간암 선고를 받고 투병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빨리 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동화가 휴대폰을 남기고 떠났는데, 일단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저장된 분들께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전화드리는 거고요."

"정말 미치겠구나! 발인은 언제고?"
"6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저녁 때 당장 올라가마. 이럴 때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장례 끝까지 우정 발휘하길 바란다. 이따가 보자."

봄 나들이를 접고 집으로 왔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고속 열차를 탔다. 내 마음만 급했을까? 고속 열차는 더디기만 했다.  

동화가 고3때 나는 담임을 했다. 법 없이 산다는 말은 동화에게 잘 어울렸다. 매사 솔선했고 다정다감했다. 대학에 가서 학사 장교가 되었고, 누구보다 반듯하게 군 생활을 마쳤다. 동화가 취업을 하고 나서 몇 차례 만났고, 시시각각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후 동화는 결혼 소식을 알렸다. 당연히 하객으로 나서야 했지만 나는 동화에게 죄를 짓고 말았다. 집안 중대사와 겹쳐 결혼식에 불참했다. 동화는 그런 나를 충분히 이해해주었지만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이었기에 불참한 내겐 늘 부담으로 남았다.

결혼 이후 우리는 사계절마다 소통했다. 동화는 아기를 낳았고 나는 첫돌이 되면 결혼식 불참의 원죄를 씻고, 반드시 축하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동화는 내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떠났다.

'아아, 제자의 영정 사진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동화의 부모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지?'

밤 9시 경, 겨우 마음을 다스려 서울 K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전화했던 인성이랑 여러 제자들이 조문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좋은 일로 반갑게 만나도 부족한데 장례식장에서 제자들을 만나야 하다니!

동화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자의 영정 앞에서 향불을 피웠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속 깊은 절을 했다. 미망인의 눈시울에 고인 눈물이 그대로 내게 전이됐다. 첫돌을 앞둔 아가 엄마! 그들을 두고 떠난 남편이자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망연자실하고 있는 동화의 부모님이 내 손을 꼬옥 잡았다. 두 분의 눈에 고인 눈물이 내 이를 악물게 했다. 침묵도 말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침묵과 눈물이 말이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서면서 나는 망자의 친구인 인성이에게 따지듯 물었다.

"6개월 동안 암 투병하면서 왜 내게 연락 한 번을 안 했단 말이냐?"
"선생님! 동화는 떠나는 순간까지 지극히 제한적으로 지인들과 소통했다고 합니다. 저희들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함부로 슬퍼하지 않게 연락을 자제했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 끝까지 의연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던 동화의 천성에 고개를 숙인다. 저승에 가거들랑 부디 아프지 말고 영정 사진보다 더 환한 모습으로 잘 살아다오!

부디 제자들이여! 그게 무엇이든 나보다 내 능력보다 너희들의 삶이 위대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이라는 단어가 넘쳐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나보다 먼저 이승을 떠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동화야! 내가 너를 어쩌겠느냐! 좋은 곳에서 편히 쉬거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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