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지가 아니고 '얼레지'라고요
우리 꽃, 야생화 얼레지꽃, 복수초, 현호색, 산자고 그리고 제비꽃과 매화
▲ 온 힘을 다해 팔을 뒤로 활짝 젖힌 얼레지꽃. 김연아선수가 연상되네요. ⓒ 조명자
기억도 선명하다. 6년 전 5월 5일 어린이 날이었다. 해발 3백 고지가 조금 넘는 전남 화순 백아산 정상엔 드넓은 산철쭉 군락이 유명하다. 연분홍 꽃송이가 환상적인 산철쭉 꽃 만개하는 시기가 5월 5일 경.
아무리 꽃구경을 좋아해도 때맞춰 나들이하기가 어려운데 그 해는 용케도 때를 맞췄다. 산철쭉도 그냥 산철쭉이 아니라 아주 거목(?)에 가까운 군락이었다. 어찌나 넓고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산마루를 뒤덮었는지 같이 갔던 친구들이 자지러지듯 환호성을 지르던 생각이 난다. 그때 철쭉 군락 사이 발밑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유혹하던 그 꽃.
▲ 무리져 피어있는 얼레지꽃. 나빌레라~~ 조지훈시인의 승무가 떠오르네요. ⓒ 조명자
생전 처음 본 꽃의 자태가 하도 아름다워, 게다가 희귀하게 생겨 아주 정신없이 땅에 엎드려 감상을 했는데 세상에, 한두 개가 아니라 아주 무리진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팍 숙이고 꽃 수술을 아래로 향한 모습으로 몇 장의 꽃잎을 완전히 뒤로 젖혀 흡사 발레리나 몸동작을 연상하게 하는 꽃. 꽃잎은 연 진분홍과 보라색이 적당히 섞인 색깔이라고 해야 하나?
▲ 아주 팍~~ 자, 몽땅 보세요. 이게 나예요~~ ⓒ 조명자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꽃 야생화를 본 적이 없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같이 온 친구들도 난생 처음 본 꽃이라 이름을 알 리가 있나. 나중에 야생화 전문가한테 물어 봤더니 그 꽃이 바로 '얼레지' 꽃이란다.
얼레지? 엘레지가 아니고? 처음 들은 꽃 이름이 하도 독특해 이유미 박사의 '한국의 야생화' 책을 구입해 찾아 봤더니 과연 '얼레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소개되어 있었다.
▲ 얼레지꽃 군락...아 이 곳을 헤치지 않은 어느 농부에게 감사할 뿐~~ ⓒ 조명자
각설하고. 해마다 그 얼레지 꽃이 눈에 삼삼해 5월 5일만 기다려 꼭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후 한 번도 그 때를 맞춰 올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기억력 나쁜 내가 꽃 이름은 물론 생김새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좋아하는 '얼레지' 꽃을 뜻하지 않게 매화구경 갔다가 발견한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산골 어느 매화마을을 며칠 전 찾았다. 구례와 광양 같은 유명한 매화마을은 이미 만개가 넘어 지고 있을 판인데 그 마을은 워낙 산골짝이 깊고 올라 가 있어 매화 만개 시기가 두 주일 정도 늦다.
▲ 마을 이름은 알으켜드리기 어렵고~~^^ 아주 양쪽 산골짝이 매화 천지다. ⓒ 조명자
산골짝 가운데 마을을 양 옆에 끼고 두 줄기로 길게 내려 온 산등성. 온 마을, 온 골짝이 온통 하얀 꽃구름에 덮여 있었다. 매화향이 가장 진한 때는 막 꽃송이를 열 때라고 한다.
그 때를 맞춰 그 마을에 가면 온 마을에 꽃향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데 향기가 조금 연한 만개 때를 만났어도 하도 매화가 많아 향기에 취하는 덴 문제가 없었다.
흐드러진 매화꽃을 보며 산비탈 위로, 위로 올라갔는데 글쎄 생각지도 않았던 얼레지 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꿈인가, 생신가? 얼떨떨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는데 고맙게도 그 곳이 바로 얼레지 꽃 군락이었다.
어떤 아이는 약간 시들어가는 것도 있고 약간 그늘에 있는 아이들은 아주 한창이었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내가 못 잊어하는 줄 알고 기다려 주었구나."
못 잊어 가슴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연인을 만난 듯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매화마을 산골짝은 해발고도가 낮아 얼레지 꽃 만개가 빠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심심산골로 아닌 시골 골짜기에 이런 귀한 꽃 군락이. 이 꽃을 캐지 않은 어느 농부가 너무 감사했다.
▲ 얼레지꽃 이파리? 요렇게 생겼다 ⓒ 조명자
점박이가 있는 녹색의 넓적한 잎사귀가 두어 장이 땅바닥에 착 깔아 엎드려 있고 6장의 진분홍 꽃잎사귀가 완전히 팔을 꺾어 하늘을 향해 마주 손을 잡듯 젖혀지면 긴 보랏빛 암술대와 주변을 둘러 선 수술대가 고스란히 드러나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이유미 박사 설명에 의하면 얼레지는 백합과 식물로 뿌리가 깊어 옮겨 심기가 쉽지 않단다. 마치 직근인 차나무를 옮기면 죽이기 딱 알맞듯이. 익은 씨앗을 따 바로 뿌리면 다음 해에 싹이 나오지만 몇 해를 기다려야만 꽃을 볼 수 있단다.
포기 나누기가 어려워 대량번식이 어려운 얼레지 꽃. 생김만큼이나 도도하고 까탈스러운 이 꽃이 그런데 강원도에선 마구 채취해 묵나물로 팔고 있다니. 그러다가 얼레지 꽃 보기 힘들어질까봐 은근히 겁이 난다.
요염하고도 청초한 얼레지 꽃밭 근처에 '복수초' 군락도 상당히 넓었다. 봄의 전령사, 눈 속을 뚫고 나와 노란 꽃송이를 펼쳐주는 복수초 꽃. 투명한 꽃잎파리에 뿅 가 봄이면 숨은 그 곳을 답사했는데 2년 동안 놓쳤다.
▲ 흔해서 별로라고요? 무슨 실례의 말씀을...제비꽃, 너무 귀엽지요. ⓒ 조명자
▲ 현호색 무리...삐약삐약 물 좀 주세요~~병아리들처럼 ⓒ 조명자
▲ 산야는 물론 논두럭까지...흔하지만 너무나 청초한 산자고꽃 ⓒ 조명자
▲ 복수초 군락. 이 아이는 너무 유명해 설명이 필요없고... ⓒ 조명자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이렇게 뒤늦게, 마지막 향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 피어나고 있는 하얀 산자고 꽃, 사방에 지천인 현호색. 아아 그 곳은 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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