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창녕 교동고분, 1500년전 '은제허리띠' 완형 출토

창녕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 설명 ... 8~10일 일반인 현장 공개

등록|2010.04.07 16:00 수정|2010.04.07 16:00
경남 창녕군 교동고분에서 1500년 전 은제허리띠가 완전한 형태로 출토됐다. 7일 창녕군에 따르면,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이날  창녕 교동고분군 주차장 정비구역 안에서 발굴조사 자문회의를 열었다.

사적 제80호인 창녕 교동고분군은 이전에도 발굴조사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8~19년 사이 9기를 조사했으며, 1992년 동아대가 5기를 발굴조사했다. 이번에 발굴조사는 동아대 조사 이후 18년 만이다.

▲ 창녕 교동고분군 전경. ⓒ 창녕군청


창녕군이 '교동고분군 주차장 정비사업' 진행 중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발굴이 이루어졌다. 창녕군은 유적 보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2009년 10월 21일부터 발굴조사를 추진하게 되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봉분 직경 19m에 이르는 중대형의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1기와 조선시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이 무덤은 장축이 6.7m에 이르는 세장방형으로, 유물부장칸과 시상대(시신안치), 순장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창녕 교동고분군. ⓒ 창녕군청

이 무덤의 주인공은 관옥, 은제허리띠와 고리자루큰칼을 차고 있었으며, 부장칸에는 각종 토기류, 마구류와 순장인골편 등이 출토되어 고대 매장의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은제허리띠와 장식은 완형이 세트로 출토되어 출토 예가 드문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무덤 서쪽에는 조선시대 후기(18∼19C)에 조성된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 아래에는 기와를 바닥 전면(길이 4m, 폭 1.5m)에 깔은 구조가 확인되었는데, 서편에는 완형의 암키와를 방형으로 구획하는 등 특수용도의 시설로 보인다.

현재 이곳은 고분군 정중앙 대형고분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조성된 고분 제사 관련 시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조사된 무덤은 조선시대 때 이미 봉분이 유실되어 일제강점기 조사에서는 인지되지 않았다. 따라서 머리쪽에 일부 교란된 것 이외에는 도굴의 피해가 적어 대부분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이번에 출토된 은제허리띠·장식은 창녕지역에서 교동 7호분 출토품 등 총 15건이 알려져 있으며 1918년, 1967, 1968년 발굴에서 출토된 이후 43년만에 완형이 세트로 출토되었다. 허리띠는 교동 '동아대 발굴' 1호분과 같은 형식으로 창녕에서 가장 이른 형식에 속하며, 무덤의 시기는 5세기 중반 이후로 보인다.

주인공이 장착한 은제허리띠와 고리자루큰칼 등은 경주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것과 동일한 형식으로 위세관계 연구자료로 활용 가치가 크며, 신라 세력의 진출과 기존 가야세력과의 역학 관계를 구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발굴현장을 오는 8~10일 사이(오후 3~4시) 일반인을 위해 현장 공개 설명회를 연다.

▲ 창녕 교동고분군에서 나온 '은제허리띠'와 '고리자루큰칼'의 모습. ⓒ 창녕군청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