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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도 경차도, 여기에선 똑같습니다"

[현장] 경제가 아닌 문화현상으로 다가오는 셀프주유소

등록|2010.04.11 14:25 수정|2010.04.11 14:25

▲ 셀프주유소를 평소 자주 이용한다는 여성 고객이 능숙한 솜씨로 주유 정산을 하고 있다. ⓒ 나영준


"일단 차에서 내려 내 손으로 주유구를 열고 한다는 게 성가시고 어려운 일 같아요. 가격도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도 않고요." - 이성미(36·보험상담사)

"좀 귀찮기는 한데 해보면 할 만해요. 일부러 찾지는 않더라도 보이면 셀프주유소에서 하는 편이죠." - 손정호(41·가전제품 서비스 기사)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줄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기름 값이다.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해도, 거리나 시간 또는 직업의 특성상 온전히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대다수 운전자가 주유소 입구에 세운 가격표에 시선을 뺏기는 이유다.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셀프주유소로 쏠리고 있다. 전국 1만3천여 주유소 중 운전자가 직접 기름을 넣는 셀프주유소는 280여 곳이다.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이지만, 2008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고, 현재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익숙한 여성고객, 남편에게 "그것도 못하냐"며 핀잔

▲ 셀프 주유는 '처음 한 번'이 중요하다고. 기계에 쓰인 설명을 따라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한다. ⓒ 나영준


서울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출구에 자리 잡은 락성 셀프주유소. 끓일 듯 쉼 없이 승용차들이 드나든다. 고개 하나만 넘으면 사당 사거리로 이어진 교통의 요지다.

GS칼텍스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평일기준 1500~2000여 명 정도. 이중 4분의 1 이상이 여성고객이라고 한다. 이곳 업무를 담당하는 최성영 부장에게 주변 소비자들의 궁금함을 모아 질문을 던졌다.

- 한 번도 셀프 주유소를 이용해보지 않은 이들도 많다.
"첫 경험이 중요하다. 기계이다보니 위험하단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실수라도 할까, 기름이 튀진 않을까란 두려움을 가지신다. 쉽고 안전하다. 한 번 해보신 후론, 오히려 재미와 성취감을 많이 느끼신다."

- 여성고객들이 특히 어려워하진 않는지.
"그랬던 분들이기에 한 번 해보시면 오히려 더 큰 흥미를 가지신다. 두어 번 정도 해보면 쉽다. 매뉴얼에 상세히 설명이 되어있고, 주유원이 안내도 해드린다. 그중엔 익숙해진 후 남편과 함께 와 쩔쩔매는 남편에게 타박을 주며 가르쳐주는 분도 있었다. 사실 남자 중엔 주유구 여는 것도 잘 모르는 분들도 있다."

운전경력 20년의 손정호씨는 예전에도 셀프주유소가 유행처럼 생기다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며, 대우받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 과거에도 정유사들이 셀프주유소를 세웠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밖에 나오면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다. 유가폭등과 금융위기 탓에 경제관념이 예민해진 것도 있지만, 문화적으로도 많이 자유스러워졌다. 스스로 수용력이 생긴 것 같다."

- 그래도 대접을 받던 경험을 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오히려 불친절한 주유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등의 기분 나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는 정확한 양을 주유했는지 의심해 본 일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하면 그런 의심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

고급차량 소유주들도 많이 이용하는 셀프 주유소

▲ 셀프 주유소의 확대에는 대당 3천 만원인 기계교체 문제가 있다고 한다. ⓒ 나영준

보험 상담일을 하는 이성미씨는 집에 중형차량이 있지만, 회사에서는 소형차량을 이용한다. 평소 대형빌딩이나 호텔 주차장 등에서 중형차량들과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단다. 때문에 셀프주유소에 들어가면 혹시 그런 눈길이 반복될까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고, 부유하거나 고급외제 차량을 타는 이들은 오지 않을 거란 선입견들이 있다.
"(단호하게) 절대 그렇지 않다. 많이들 오신다. 나 역시 그런 편견을 가졌지만, 절대 아니다. 벤츠, BMW는 흔하게 들어오고 람보르기니도 온다. 점잖으신 차주들이 다 직접 하신다. 외국유학이나 이민에서 접해보시고 반가워하는 분들도 있다."

- 많은 이들이 가격경쟁력을 궁금해 한다. 셀프 주유소의 기름 값은 주변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가?
"그때그때 다르다. 딱 얼마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일반주유소 대비 리터당 30원 정도는 싸게 하려고 노력한다. 경쟁체제다 보니 일반주유소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많이 벌인다."

- 생각보다 '싸지 않다'라는 소비자들도 있다.
"서울중심가와 경기도 국도변에 위치한 곳의 가격차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주변 업소와 비교를 해 주시면 좋겠다. 경쟁관계이기에 우리가 싸게 해도 주변에서 따라온다. 한 곳의 셀프주유소가 생겨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주셨으면 한다. 물론 최소한의 가격차는 두려고 노력한다."

- 가격 말고도 셀프 주유의 장점이 있을까?
"장시간 앉아있는 것보다 차에서 잠깐 내려 움직이며 맑은 공기 쏘이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사실 개인정보가 담긴 신용카드 등을 주유원에게 건네며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찜찜함에서도 서로 해방된다. 이런 것이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셀프가 곧 가격파괴?

이처럼 많은 면에서 셀프주유소가 환영을 받고 있지만, 확대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초기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기존 설치돼 있는 일반주유기를 교체하는 비용이 1대당 3천 만 원을 호가한다. 특히 개인사업자들에겐 적잖은 부담과 고민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투자대비 효용관계를 볼 때 차츰 늘어날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전망이라고 한다.

어려운 경기여건 속, 어쨌건 소비자들의 관심은 1순위도, 2순위도 가격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최성영 부장은 한편으로 문화적으로도 접근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놓았다.

"셀프주유소의 개념을 가격파괴로 받아들이면 주변 일반 주유소들은 힘들어진다. 스타일의 차이로 해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셀프주유소도 경리업무를 보고, 주유안내를 하는 이들을 채용한다. 투자비용이 아주 안 드는 것이 아니다.

또 할인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소비자들이 직접 물건을 골라 담고, 커피숍에서도 직접 음료를 받아온다. 그런 행위 자체가 사실은 '셀프'에 해당한다. 셀프주유도 일종의 문화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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