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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한 아이와 입씨름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비난하는 것은 다릅니다

등록|2010.04.10 16:40 수정|2010.04.10 16:40
수업시간에 한 아이와 입씨름을 했습니다. 평소 수업태도가 나쁘지 않던 아이였는데 어쩌다가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단어공부를 마치고 본문해석을 하기 위해 책이 제대로 펼쳐져 있는지 살펴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아이의 왼쪽 팔이 하필이면 배워야할 본문을 가리고 있었는데 아이는 준비가 되었느냐는 영어 질문에 "예"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이 곁에 다가가 이렇게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수업준비가 된 거야?"
"예."
"오늘 배울 본문이 네 팔에 가려 있는데도?"
"아닙니다. 저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배울 본문이 지금 팔에 가려 있다니까."
"그래도 제가 떠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이 이쯤 되자 저는 아이를 조용히 일으켜 세웠습니다.

"내가 너더러 언제 떠들었다고 했니?"
"저 수업시간에 잘 하지 않습니까?"
"나 너에게 수업시간에 잘 못한다고 말한 적 없어."
"그런데요?"

"네 팔뚝이 우리가 공부해야할 본문을 가리고 있었는데 넌 수업준비가 되었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그걸 지적해준 거고. 내가 지적해주지 않았으면 넌 그냥 그대로 수업을 했을 거 아니야. 그러면 공부를 제대로 못했을 거고. 그럼 네 손해 아니야?"

"잘못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된 거야. 앉아."

그렇게 상황이 쉽게 종료되었습니다. 제 머리 속에서도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말끔히 지워졌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과 유머를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다가 교실을 나오면서 저도 모르게 영어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I did it(해냈어)!" 

바로 그날 저녁 무렵, 저는 인문계 특성화학교로 유명한 담양 한빛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미리 메일로 보내드린 강의 원고가 있었지만 그날 있었던 일을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아이의 잘못은 논점을 이탈한 것이었지요. 전 오늘 배울 본문이 팔에 가려져 있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아이는 내가 언제 떠들었냐는 식이었으니까요. 나중에는 수업을 잘하지 않았느냐고 항변을 했고요. 그런 논점이탈의 오류는 아이들이 지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요. 문제는 우리 교사들도 논점이탈의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교사들의 범주에 저도 포함이 됩니다.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거나 호흡조절을 하지 못했다면 저 또한 이런 식으로 사태를 악화시켰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말 수업준비가 된 거야?"
"예."
"너 왜 거짓말 하는 거야?"
"저 거짓말 안 했는데요?"
"오늘 배울 본문이 지금 팔에 가려 있는데도 수업 준비가 다 되었다고 했잖아?"

"그래도 제가 떠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야? 네가 한 번도 안 떠들었다고?"
"저 수업시간에 잘 하지 않습니까?"
"이게 어디서 대들어?"

이런 경우 대개는 그 잘못을 상대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범한 논리적 오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을 방어하는 일에 급급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논점에서 이탈한 학생의 태도를 '미숙한 행동'이 아닌 교사의 권위에 도전한 '싸가지 없는 짓'으로 받아들였으니 일이 꼬일 수밖에요. 저는 선생님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아이가 태도를 바꾸어 잘못했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 교사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지도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지만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을 비난하는 것을 지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오늘 그 아이를 비난하지 않고 가르친 것이지요."

'다행히도'라는 말을 쓴 것은 앞으로 그런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고백한 셈입니다. 그날 교실을 나오면서 "해냈어!"라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것도 알고보면 그만한 일로 자신의 성공을 자축해야 할만큼 제 자신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비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봅니다. 아이들은 가르침의 대상은 될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꼭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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