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중앙일보 11자 사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에 대한 반론
▲ 중앙일보 11자 사설 캡쳐. ⓒ 인터넷 갈무리
중앙일보 11일자 사설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라는 모순적인 제목의 이 글은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로켓공격을 계속하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으로 쳐들어가 하마스 근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테러로 무너진 건물마다 정확히 한 개씩 정권을 무너뜨렸다. 과다(過多)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도발에 응징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원칙적으로는 북한의 잠수함 기지를 부숴야 한다."
우선 '도발에 응징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라는 단정은 그 예로 거론한 나라들 때문에 실소가 나온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국민소득의 규모를 가지고 선진국을 말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 왜 깨어졌겠는가. 국민소득은 높지만 그것이 어느 특정 계층에게 과다하게 쏠리면서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희망보다 절망을, 기쁨보다 고통을 더 많이 안겨주는 상황을 과연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 츠츠미 미카는 이미 2008년에 미국의 민생 현장을 취재한 후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를 출간했다. 미국이 가지던 가치와 걸어왔던 길이 실패로 접어들고 이제는 유러피언 드림이 부상하고 있다.
또한 지구라는 공동체를 살아가는 국제 시민들로부터도, 지지보단 우려와 비난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은 어떠한가. 한번 시작된 힘의 논리와 독선적 배타주의는 반발만 일으키며 분쟁지역으로 전락했다. 이스라엘에 사는 젊은이들조차 자국 정세에 불만을 품고 평화를 외치는 마당에 과연 진정한 선진국을 논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어디가 선진국 면모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끊임없는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이스라엘과 보복전의 정당성까지 문제가 되면서 그 휴유증에 시달리는 미국이 과연 선진국인가.
물론 아직도 예전의 기준으로 선진국을 정의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하기에 이 사설의 클라이맥스에 다음과 같은 지난날의 예제가 등장하는 것일 테니까.
"대한민국 역사에서 무력도발이나 테러에 대해 국가가 전쟁을 결심한 후 행동에 옮긴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을 북한군이 공격했다. 북한군은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찍어 죽였다. 다음날 새벽 김일성은 북한군에 전투태세 돌입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개성을 탈환하고 연백평야까지 진군하자고 미군과 합의했다. 그러고는 21일 미루나무 완전 절단 작전을 감행했다. 북한은 도발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휴전 이후 처음으로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는 굴욕적인 메시지를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택한 방법은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시간상으로도 당시엔 즉각적인 대응이었으며 무엇보다 나무만 베고 끝났다. 북한이 잘못했으니 유감 표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군사적 조건을 고려하며 일단은 정치적인 대응을 했다. 온전하게 군사적 판단만 있었다면 함무라비 법전을 연상시키는 이 사설의 앞부분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한군의 시설을 부수고 북한 장교들까지 몰살시켜야 맞지 않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사설은 일의 원인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논의에서 제시하는 해결의 폭을 힘과 힘의 대립에만 국한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역사를 온전히 거론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발언 역시 지난날의 제한된 모습에서만 근거를 찾기 때문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북한과의 갈등은 어디에서 오는가. 휴전상태와 대립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과의 종전을 선포해야 맞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역사에 교훈이 있다면 전쟁은 타인에게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극일 뿐이며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란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현재 또한 지난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6.25를 겪은 이 땅에서, 전쟁으로 인해 생이별을 하고 고통 속에 살아오신 분들의 비극이 또 다시 반복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천안함 참사도 왜 우리가 슬픔을 느끼며 애도하는가. 생명이 죽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이 사설 역시 이러한 국민정서를 알고 있는지 결국엔 전쟁이 없길 바란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잘못되어 있다. 그 모순이 다음과 같은 문단에서 잘 드러난다.
"눈알 찌르기가 특기인 깡패가 있다고 치자. 그가 아름다운 애인을 빼앗으려는데 눈알 잃을 게 두려워 한강백사장 결투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해를 각오하고라도 결심해야 할 전쟁이 있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백사장 결투라는 노스텔지어적인 정서를 끌어들이며 제시한 예를 보라. 결투를 결심하면 결국 싸우게 됨이 자명한 이치다. 실제로 싸움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때문에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결심해야 할 전쟁이라는 말 뒤엔, 그 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제시가 전혀 없다. 핸드폰도 없는 시절이 배경인지, 다른 방법 따위는 제시하지 않는 이 사설의 말미는, 정말이지 대단한 무책임과 모순의 전형이지 않나.
그렇다면 현명하게 전쟁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북한과의 종전부터 선포하는 것이다. 더 많이 대화하며 존중하고 화합하는 것이다. 평화를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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