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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보금자리마저 빼앗기게 생겼네요

땅 살리는 지렁이만도 못한 사람들 때문에...

등록|2010.04.12 16:02 수정|2010.04.12 16:02

▲ 허리가 끊어져라 나무를 캐다 만난 지렁이 ⓒ 이장연



지난 주 월요일 인천광역시로부터 난데없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공문에는 2014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건설과 토지보상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되어 있더군요.

그간 주민들 의사는 전혀 묻지 않고 경기장-선수촌 부지를 밀실에서 정하고, 선수촌 부지의 토지소유주들에게 이런 식으로 협조 아닌 강요를 하는 공문을 달랑 보낸 것입니다.

선수촌 부지에 자기 땅이 얼만큼 어디까지 수용되는 것인지도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대신 4월 안에 바로 지장물 조사를 끝내고 올해 안으로 보상을 마치겠다는 일정만 나와있습니다.

더구나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건설은 그 사업비마저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라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선수촌 부지의 토지들은 말그대로 헐값으로 인천시가 집어 삼킬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세금이 감면되는 것도 대체 농지를 인천시가 마련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 회양목을 심었던 이 밭도 선수촌부지로 넘어간다. ⓒ 이장연



그래서 봄들녘에서 땀흘려 일하는 농부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있습니다. 올해가 정든 고향땅에서 마지막 농사를 짓는 해가 될지 모르고, 땅을 빼앗긴 뒤 어디로 가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집도 이웃집도 다들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농사 다 끝났다'며 근심걱정입니다.

이 가운데 남들은 토지보상을 더 받으려고 하우스 파이프를 꽂고 장미다 나무다 이것저것 심어대는데, 우리집은 윗밭에 심어놓았던 회양목을 뽑아냈습니다. 오리걸음에 쪼그리고 앉아 곡괭이질을 하는 아버지는 "토지보상 얼마나 받으려고 그러냐"며 지장물 조사 끝난 다음에 캐지 왜 지금 캐냐는 이웃들의 말에 "돈 욕심도 없고 이제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다"고 하십니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농삿일이라, 나무를 살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임자가 있을 때 그냥 팔아버리는 게 속시원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세 식구와 할머니 세 분이서 고생한 끝에 회양목을 모두 캐내었습니다. 그 빈자리에 다시 씨를 뿌릴지 어떨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회양목을 캐면서 만난 지렁이도 그 잘난 선수촌 때문에 소중한 보금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란 것입니다. 땅을 지키고 살리는 지렁이도 농부들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게 녹색성장인가 봅니다.

▲ 나무농사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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