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스님, 그날은 어머니가 급한 체증으로 갑자기 앓아 누우셨거든요. 그래서 아내와 약속을 했는데 가질 못했습니다. 집안이 갑작스러운 우환으로 소란스러워지자 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못한 거지요. 그런데···."
"그런데요?"
"저 못된 형이라는 자가 내가 감춰둔 두건을 쓰고 아내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아무리 계집의 살내음을 좋아한다지만 그게 사람으로서 할 일입니까. 그래서 조각도를 꺼내 추궁했더니 이젠 엉뚱한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엉뚱한 말이라니오?"
"자기는 나와 씨가 다르다는 겁니다. 어머니가 이곳 공덕암에 서 바람을 피워 자신을 낳았으니 '악의 씨'라는 거죠. 더구나 어머니는 형에게 명절이면 어김없이 색동저고리를 입혔어요. 그게 더욱 비감스러웠던 거죠."
"그래서 두 분이 다툰 겁니까?"
"예에 스님."
"시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곳 암자에 관아에서 관원들이 지난 밤 들이닥쳤습니다."
"그래서요?"
"재동의 김진사 자제들이 싸우지 않았는지를 물었으나 소승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정약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곁에는 잔뜩 긴장한 스님 둘이 서 있었다. 정약용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님께서 그리 잡아떼지 않아도 모든 건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제가 눈여겨보았더니 김진사의 둘째 자제께서 들어간 방에 핏방울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시생이 방에 영초를 뿌려 핏자국을 추적했더니 그 피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방안 한쪽에 흥건할 정도였어요. 아무리 피를 닦아도 방바닥에 쏟아진 양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인상사문(刃傷死門)의 측정법입니다. 두 분이 부정한다 해도 모든 건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두 분은 절 따라 오시죠."
정약용이 앞장 서 두 사람을 데려간 곳은 암자의 뒤쪽 산자락이었다. 그곳엔 봉분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덤 한 기가 서 있었다.
"이곳엔 어느 분이 묻혀 있습니까?"
대답이 없자 정약용의 뒷말이 이어졌다.
"봉분을 올릴 때는 상석이나 묘비명에 묻힌 자가 누구인지 근거를 남깁니다. 그런데 여기 누운 분은 흔적이 없는데다 이 지역은 정상적인 매장지가 아닙니다. 비록 오늘이 아니라 해도 다음날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밝혀질 것이오."
연락을 받고 출동한 관원들이 달려오는 걸 보고 스님이 입을 열었다.
"여기엔 한이 많은 불자(佛者) 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생전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아온 터라···."
눈짓을 받은 초임 관원들이 봉분을 헐어내고 안에 든 관을 끄집어냈다. 뚜껑을 벗기자 스님의 말대로 그곳에는 서른쯤으로 뵈는 스님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은 자의 몸엔 곳곳에 창상을 입은 흔적이 있었다. 영락없는 초승달 모양이었다. 관원 하나가 정약용의 눈짓을 받고 사체의 이마에 영초를 발랐다. 잠시 후 일종의 선과 같은 흔적이 이마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정약용이 그것을 가리켰다.
"이 흔적은 조선의 선비라면 지울 수 없는 것이요. 이른바 망건 자국이오. 상투를 틀면 망건을 써야 하므로 어느 누구건 이런 흔적이 나타납니다. 내가 명부전에 갔을 때 김상운(金尙雲)의 지전이 걸려 있는 걸 보았소. 그가 죽지 않았으면 그곳에 이름이 걸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해서, 상좌 일을 보는 자와 불목하니를 앞세워 이곳을 찾아낸 것이오."
무명(無明)이라 법명을 밝힌 주지 스님은 본당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일러주었다.
"소승이 이곳 공덕암에 온 것은 사형이었던 수인(垂仁)이 내게 남긴 전언(傳言) 때문이었소. 생전엔 악업이 구천을 찌를 듯 높았으나 죽어가는 자가 생전의 인연을 앞세워 뒷일을 부탁하는 데 차마 물리 칠 수 없었소. 해서, 이곳 암자를 찾아와 보덕암으로 이름을 고치고 사문(沙門)의 제자들을 불러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했소이다. 며칠 전 김선비의 큰아들 상운 도령이 암자를 찾아와 내게 말하는 것이었소. 자신은 태생이 천하니 벼슬살이 하는 것보다 땡중이 되어 천하를 돌아보고 싶다고요. 자학하듯 외치는 소리에 소승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만 자신의 출생비밀을 어머니에게 들었으니 더 이상 속일 생각을 말란 얘기였어요. 소승이 무슨 할 말이 있어 그 분을 진정시키겠습니까."
"어떻게 목숨을 잃은 것입니까?"
"···동생분과 다툼이 있었지요. 사고가 나던 그 날, 김진사님의 큰 자제분이 머무는 객방에 동생분이 찾아왔었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좋지 않은 연락을 받고 달려갔더니 이미 상운 도련님은 절명한 뒤였어요. 둘째 도련님은 관아에 자수하겠다고 했으나 소승이 말렸습니다. 그리 되면 집안이 절손할 것이고 부모님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우긴 끝에 겨우 고집을 틀어잡고 상운 도련님의 주검에 머리털을 밀고 스님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지요. 이 같은 사실은 물론 김진사님 댁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김진사의 부인 초해(草海) 마나님이 혼인 한 지 다섯 해가 되도록 아이가 없자 염공(念功)이 뛰어난 공덕암을 찾아와 치성을 드린 덕에 아들을 낳자 김진사의 즐거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덕이 많은 암자에 정성금을 치성한 것도 자식을 갖게 한 공덕에 관한 사은이었다. 암자를 다시 찾아온 초해 마나님에게 주지 공덕은 조각도를 건네며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소승의 법술을 엽색이니 뭐니 비웃기도 합니다만, 소승은 활인(活人)의 술(術)이라 믿습니다. 자식을 갖지 못하는 이에게 뒤를 이을 후손을 잇게 한 게 어찌 엽색에 해당되겠습니까. 소승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해서, 마나님에게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은 소승이 조각도를 줄 것이니 이것은 태어나는 아이에게 내려 마음에 부처를 새기게 하십시오. 또한 그 아이에겐 명절이 오면 색동저고리를 입혀 나의 행장(行狀)을 기리게 하십시오."
어렸을 적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성장하여 어느 정도 지각이 자리를 잡자 한양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자제들은 자신들이 어릴 때 색동저고리를 입고 지금껏 성장해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뿐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쥘부채에 의당 달려야 할 선추(扇錘)가 없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장안 사대부가의 자제들은 모두 부채 끝에 수실이든 선추가 달렸는데 우린 어찌 그런 게 없습니까?"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의 어미는 문갑에서 조각도를 내놓았다. 그것은 날끝이 초승달 형상으로 굽어진 모양이었다.
"한 집안이 화락하고 나라가 편하려면 이 조각도로 부처를 새겨라. 그리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다."
그래서 향나무 조각을 구해 그것으로 부처를 새기는 일을 해 왔었다. 그러던 자들이 우연히 강변에서 만났는데 제각기 같은 모양의 조각도를 들고 있었다. 왜 자신들이 그런 조각도를 지녔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공덕암 주지 수인의 파행이었지만 여느 젊은이와는 달리 김진사의 아들 상운은 심각한 자학증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 되자 조각도를 지닌 일곱 청년들을 강변칠우란 이름으로 맹약을 맺었다.
혼인을 했지만 아내와는 몇 차례 형식적인 잠자리만을 했을 뿐 술에 취하면 어머니를 들볶았다.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모두 어머니 탓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정상적으로 김씨 일문의 피를 받지 않았으니 부인과 사이에 자식을 갖는다 해도 그것은 남의 씨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인 상헌의 아내 김씨와 관계해 자신의 씨를 집안에 떨궈야겠다는 비아냥에 그의 어미는 펄쩍 뛰었다.
"네가 이 집안을 말아먹으려 작정했구나. 그래, 어디 한 번 네 뜻대로 해 보아라!"
처음엔 완강히 반대했지만 결국은 자식에게 약점을 잡힌 어미로서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아이를 얻은 뒤 곧 둘째를 얻었으므로 남편에게 이상한 의혹을 받지 않게 되자 초해 마나님은 이상한 놀이를 창안했다.
하루는 선비가 되어 아내를 찾아가는 밤을 맞이하고 그 다음엔 길거리의 부랑배가 돼 여인을 겁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어떤 날은 도를 익힌 선인이 되어 꽃을 맘껏 뿌리고 그 속에서 뒹굴었다.
처음엔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하루하루가 색다른 여흥이 이뤄지자 그 즐거움이 습관적 쾌락으로 발전했다. 이 놀이를 둘째 부부에게 일러주어 그들에게도 색다른 여흥을 즐기게 한 것이다. 상헌씨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 조각도가 아내 방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내는 모른 척 하고 있지만, 한 달에 두어 번은 형님이라는 작자가 내 대신 두건을 쓰고 침입한다는 걸 알았어요. 바로 그 점을 형이라는 놈이 거리낌 없이 주절거릴 때 살려둘 수는 없었지요.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묻지 마시고 나를 잡아다 벌을 내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정한 어미를 처단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마음에 부처를 새기라는 건 무엇인가. 선행을 쌓으라는 것인가? 아니었다. 공덕암의 주지 수인(垂仁)은 자신의 파행을 연년세세 전하려 한 것이다.
"스님, 그날은 어머니가 급한 체증으로 갑자기 앓아 누우셨거든요. 그래서 아내와 약속을 했는데 가질 못했습니다. 집안이 갑작스러운 우환으로 소란스러워지자 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못한 거지요. 그런데···."
"그런데요?"
"저 못된 형이라는 자가 내가 감춰둔 두건을 쓰고 아내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아무리 계집의 살내음을 좋아한다지만 그게 사람으로서 할 일입니까. 그래서 조각도를 꺼내 추궁했더니 이젠 엉뚱한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엉뚱한 말이라니오?"
"자기는 나와 씨가 다르다는 겁니다. 어머니가 이곳 공덕암에 서 바람을 피워 자신을 낳았으니 '악의 씨'라는 거죠. 더구나 어머니는 형에게 명절이면 어김없이 색동저고리를 입혔어요. 그게 더욱 비감스러웠던 거죠."
"그래서 두 분이 다툰 겁니까?"
"예에 스님."
"시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곳 암자에 관아에서 관원들이 지난 밤 들이닥쳤습니다."
"그래서요?"
"재동의 김진사 자제들이 싸우지 않았는지를 물었으나 소승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정약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곁에는 잔뜩 긴장한 스님 둘이 서 있었다. 정약용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스님께서 그리 잡아떼지 않아도 모든 건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제가 눈여겨보았더니 김진사의 둘째 자제께서 들어간 방에 핏방울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시생이 방에 영초를 뿌려 핏자국을 추적했더니 그 피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방안 한쪽에 흥건할 정도였어요. 아무리 피를 닦아도 방바닥에 쏟아진 양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인상사문(刃傷死門)의 측정법입니다. 두 분이 부정한다 해도 모든 건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두 분은 절 따라 오시죠."
정약용이 앞장 서 두 사람을 데려간 곳은 암자의 뒤쪽 산자락이었다. 그곳엔 봉분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덤 한 기가 서 있었다.
"이곳엔 어느 분이 묻혀 있습니까?"
대답이 없자 정약용의 뒷말이 이어졌다.
"봉분을 올릴 때는 상석이나 묘비명에 묻힌 자가 누구인지 근거를 남깁니다. 그런데 여기 누운 분은 흔적이 없는데다 이 지역은 정상적인 매장지가 아닙니다. 비록 오늘이 아니라 해도 다음날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밝혀질 것이오."
연락을 받고 출동한 관원들이 달려오는 걸 보고 스님이 입을 열었다.
"여기엔 한이 많은 불자(佛者) 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생전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아온 터라···."
눈짓을 받은 초임 관원들이 봉분을 헐어내고 안에 든 관을 끄집어냈다. 뚜껑을 벗기자 스님의 말대로 그곳에는 서른쯤으로 뵈는 스님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은 자의 몸엔 곳곳에 창상을 입은 흔적이 있었다. 영락없는 초승달 모양이었다. 관원 하나가 정약용의 눈짓을 받고 사체의 이마에 영초를 발랐다. 잠시 후 일종의 선과 같은 흔적이 이마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정약용이 그것을 가리켰다.
"이 흔적은 조선의 선비라면 지울 수 없는 것이요. 이른바 망건 자국이오. 상투를 틀면 망건을 써야 하므로 어느 누구건 이런 흔적이 나타납니다. 내가 명부전에 갔을 때 김상운(金尙雲)의 지전이 걸려 있는 걸 보았소. 그가 죽지 않았으면 그곳에 이름이 걸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해서, 상좌 일을 보는 자와 불목하니를 앞세워 이곳을 찾아낸 것이오."
무명(無明)이라 법명을 밝힌 주지 스님은 본당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일러주었다.
"소승이 이곳 공덕암에 온 것은 사형이었던 수인(垂仁)이 내게 남긴 전언(傳言) 때문이었소. 생전엔 악업이 구천을 찌를 듯 높았으나 죽어가는 자가 생전의 인연을 앞세워 뒷일을 부탁하는 데 차마 물리 칠 수 없었소. 해서, 이곳 암자를 찾아와 보덕암으로 이름을 고치고 사문(沙門)의 제자들을 불러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했소이다. 며칠 전 김선비의 큰아들 상운 도령이 암자를 찾아와 내게 말하는 것이었소. 자신은 태생이 천하니 벼슬살이 하는 것보다 땡중이 되어 천하를 돌아보고 싶다고요. 자학하듯 외치는 소리에 소승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만 자신의 출생비밀을 어머니에게 들었으니 더 이상 속일 생각을 말란 얘기였어요. 소승이 무슨 할 말이 있어 그 분을 진정시키겠습니까."
"어떻게 목숨을 잃은 것입니까?"
"···동생분과 다툼이 있었지요. 사고가 나던 그 날, 김진사님의 큰 자제분이 머무는 객방에 동생분이 찾아왔었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좋지 않은 연락을 받고 달려갔더니 이미 상운 도련님은 절명한 뒤였어요. 둘째 도련님은 관아에 자수하겠다고 했으나 소승이 말렸습니다. 그리 되면 집안이 절손할 것이고 부모님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우긴 끝에 겨우 고집을 틀어잡고 상운 도련님의 주검에 머리털을 밀고 스님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지요. 이 같은 사실은 물론 김진사님 댁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김진사의 부인 초해(草海) 마나님이 혼인 한 지 다섯 해가 되도록 아이가 없자 염공(念功)이 뛰어난 공덕암을 찾아와 치성을 드린 덕에 아들을 낳자 김진사의 즐거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덕이 많은 암자에 정성금을 치성한 것도 자식을 갖게 한 공덕에 관한 사은이었다. 암자를 다시 찾아온 초해 마나님에게 주지 공덕은 조각도를 건네며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소승의 법술을 엽색이니 뭐니 비웃기도 합니다만, 소승은 활인(活人)의 술(術)이라 믿습니다. 자식을 갖지 못하는 이에게 뒤를 이을 후손을 잇게 한 게 어찌 엽색에 해당되겠습니까. 소승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해서, 마나님에게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은 소승이 조각도를 줄 것이니 이것은 태어나는 아이에게 내려 마음에 부처를 새기게 하십시오. 또한 그 아이에겐 명절이 오면 색동저고리를 입혀 나의 행장(行狀)을 기리게 하십시오."
어렸을 적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성장하여 어느 정도 지각이 자리를 잡자 한양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자제들은 자신들이 어릴 때 색동저고리를 입고 지금껏 성장해 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뿐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쥘부채에 의당 달려야 할 선추(扇錘)가 없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장안 사대부가의 자제들은 모두 부채 끝에 수실이든 선추가 달렸는데 우린 어찌 그런 게 없습니까?"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의 어미는 문갑에서 조각도를 내놓았다. 그것은 날끝이 초승달 형상으로 굽어진 모양이었다.
"한 집안이 화락하고 나라가 편하려면 이 조각도로 부처를 새겨라. 그리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다."
그래서 향나무 조각을 구해 그것으로 부처를 새기는 일을 해 왔었다. 그러던 자들이 우연히 강변에서 만났는데 제각기 같은 모양의 조각도를 들고 있었다. 왜 자신들이 그런 조각도를 지녔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공덕암 주지 수인의 파행이었지만 여느 젊은이와는 달리 김진사의 아들 상운은 심각한 자학증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 되자 조각도를 지닌 일곱 청년들을 강변칠우란 이름으로 맹약을 맺었다.
혼인을 했지만 아내와는 몇 차례 형식적인 잠자리만을 했을 뿐 술에 취하면 어머니를 들볶았다.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모두 어머니 탓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정상적으로 김씨 일문의 피를 받지 않았으니 부인과 사이에 자식을 갖는다 해도 그것은 남의 씨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인 상헌의 아내 김씨와 관계해 자신의 씨를 집안에 떨궈야겠다는 비아냥에 그의 어미는 펄쩍 뛰었다.
"네가 이 집안을 말아먹으려 작정했구나. 그래, 어디 한 번 네 뜻대로 해 보아라!"
처음엔 완강히 반대했지만 결국은 자식에게 약점을 잡힌 어미로서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아이를 얻은 뒤 곧 둘째를 얻었으므로 남편에게 이상한 의혹을 받지 않게 되자 초해 마나님은 이상한 놀이를 창안했다.
하루는 선비가 되어 아내를 찾아가는 밤을 맞이하고 그 다음엔 길거리의 부랑배가 돼 여인을 겁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어떤 날은 도를 익힌 선인이 되어 꽃을 맘껏 뿌리고 그 속에서 뒹굴었다.
처음엔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하루하루가 색다른 여흥이 이뤄지자 그 즐거움이 습관적 쾌락으로 발전했다. 이 놀이를 둘째 부부에게 일러주어 그들에게도 색다른 여흥을 즐기게 한 것이다. 상헌씨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 조각도가 아내 방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내는 모른 척 하고 있지만, 한 달에 두어 번은 형님이라는 작자가 내 대신 두건을 쓰고 침입한다는 걸 알았어요. 바로 그 점을 형이라는 놈이 거리낌 없이 주절거릴 때 살려둘 수는 없었지요.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묻지 마시고 나를 잡아다 벌을 내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정한 어미를 처단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마음에 부처를 새기라는 건 무엇인가. 선행을 쌓으라는 것인가? 아니었다. 공덕암의 주지 수인(垂仁)은 자신의 파행을 연년세세 전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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