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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 '기관장 물갈이', 또 졌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계약해지 부당' 판결

등록|2010.04.14 14:25 수정|2010.04.14 17:44

▲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자료사진) ⓒ 권우성


"저는 물론이고 집안 친척, 친구 계좌까지 다 뒤져서 심적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대학 제자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받았는데 그게 부정한 돈인 것처럼 수사를 해서. 물론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 장관을 이긴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회상이다. 그는 13일 자신을 해임한 국가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병대)는 김 전 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계약해지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채용계약 해지는 무효"라면서 "해지 이후 계약기간 만료시까지의 급여 합계 8193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권 출범 이후 계속돼 온 문 기관장 물갈이 인사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관장은 "제가 누명을 쓰고 불명예스럽게 나갔다, 사람들이 '부정을 저질렀구나' 생각했을 텐데 이번에 (판결로) 체면이 섰다"고 소감을 말하면서 웃었다.

"문화부에서 날 상대도 안 했다"

▲ 유인촌 문과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08년 4월 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김윤수 전 관장은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함께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으로 찍혔다. 유인촌 장관은 2008년 3월 공개석상에서 김 전 관장과 김 위원장을 겨냥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킨다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고 자진사퇴를 종용했다.

김윤수 전 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도 미술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위(문화부)의 사람들은 아예 날 상대를 안 했다, 밑에 있는 행정관 불러서 보고 받았다"고 전했다. 김 전 관장이 김장실 문화부 차관으로부터 "금년(2008년) 말까지 결심해 달라"는 통보까지 받았다는 주장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래도 그는 물러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검찰과 관세청은 국립현대미술관 수사에 나섰다. 문화부는 "국무조정실 조사결과에 따른 조사로 퇴진 압력 차원은 아니"라고 했지만, 김 전 관장은 2008년 11월 결국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김윤수 전 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자신이 버텼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문화 선진화'였다.

"지금은 저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 때의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권력기관은 그럴 수 있어도 문화기관은 독립적·중립적으로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쪽은 전문인이기 때문에 러시아나 미국·프랑스·독일은 다 임기를 보장한다. 이 정부가 이른바 선진화를 표방하면서 하는 짓거리는 오히려 과거 시절처럼 후퇴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임무'다. 그는 "70~80년대 대학을 쫓겨나는 수난도 겪었고 민주화의 중요한 단계에서 말석에나마 있었는데 (자리를) 지키는 게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김 전 관장은 1973년 장준하·백기완 선생이 주도한 '개헌청원 30인 선언'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민족미술인협의회와 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적출'됐던 김정헌 위원장과도 최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이 정부가 너무 무리하게 사람을 내보내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농담 삼아 "이번 기회로 문화예술위원회가 수억 원어치 홍보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민주화운동 말석에 있던 사람'의 임무

▲ 지난 2008년 4월 1일 오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현관에서 기다리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김윤수 전 관장은 지난해 7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도중 계약기간(2009년 9월)이 끝나자 미지급 급여를 청구하는 쪽으로 청구 취지를 바꿨다. 따라서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한 지붕 두 관장'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문화부는 약 넉 달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장직을 공석으로 비워두다가 지난 2009년 2월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임명했다. 비전문 인사가 미술관장을 맡은 게 이례적이라서 '국립미술관 민영화 수순'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배 장관은 대우전자 사장 시절 유 장관과 함께 '탱크주의' 기업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 전 관장은 이후 일정에 대해 "그동안 미술관 때문에 개인 일을 못했는데, 그림도 좀 보고 책도 좀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인촌 장관에게 패배 실어나른 <여행용 가방> 진실은...
지난 2008년 11월 문화부가 밝힌 김윤수 전 관장 해임 사유는 미술품 구입 과정에서의 규정 위반. 마르셸 뒤샹의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면서 거래사에 미리 가부를 약속했고 충분한 가격조사도 없었다는 것이다. 우편거래로 작품을 들여오면서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전 관장이 미술품 구입 공문을 보내면서 '진위 확인'과 '가격 협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고, 당시 미술품 중개사가 다른 미술관 등에 작품을 매도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작품은 오로지 한 점이어서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개사가 제안한 견적 가격을 기준으로 예정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문화부 주장을 반박했다.

거래 방식에 대해서도 "해외미술품 거래에서는 우편거래가 상당히 일반화됐고, 미술품은 무관세 품목으로 부당이득을 얻으려 신고를 안할 이유도 없다"고 김 전 관장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마르셀 뒤샹 서거 40주년을 기념해 작품전을 열 예정이었지만, 김윤수 전 관장 해임 이틀 뒤 전시를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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