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5천 원 아까워서 올라갔다, 왜?
아이들과 주말에 월출산을 오르며
▲ 월춘산 표지석 앞에서 강혁이와 남혁이 ⓒ 박미경
순전히 본전 생각 때문이었다. 순전히 주차료가 너무 비싸게 느껴져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월출산을 올랐다. 무슨 소리냐고?
지난 주말 아이들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절경이라는 영암을 찾았다. 방송을 통해 수십킬로미터에 걸쳐 아름답게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영암의 모습을 보게 됐고 놀토이고 하니 아이들과 드라이브겸 한번 가보기로 했다.
▲ 월출산 야영장에서 강혁이와 남혁이 ⓒ 박미경
입구에 도착하니 멀리 공용주차장 표지가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변에 차들이 제법 주차되어 있어 눈치로 주차료를 받는구나 싶었다. 순간 주차료를 아낄 요량에 도로변에 차를 주차할까 하다가 주차료라고 해야 2~3천원 정도겠거니 생각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기로 했다.
하지만 웬걸, 주차료가 5천원이란다.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바위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구름다리를 확인하고 인근 상가에 물어보니 구름다리까지 왕복 2시간이면 족히 다녀올 수 있다고 했다. 구름다리까지의 거리는 2km정도. 5천원이나 냈는데 구름다리는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오후 2시경. 남편은 월출산이 그리 만만한 산이 아닌데다 내려올 시간도 생각해야한다며 그냥 돌아가지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왕에 화순에서 영암까지 왔는데, 다음에 언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절대로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으니 구름다리만이라도 보고 오자"고 했다.
그래서 중간에 주전부리하며 먹을 오징어와 육포, 커다란 생수 한 병을 사들고 구름다리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애초에 벚꽃구경이 목적이었기에 산을 오를 복장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아이들도 너끈히 오를 수 있다는 상가아저씨의 말이 힘이 됐다.
▲ 월출산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 박미경
천황사입구까지는 사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강혁이와 남혁이도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들과 파릇파릇 돋기 시작하는 나무의 새순들을 바라보거나 흐르는 계곡물에 땀을 닦으며 신나했다.
그렇게 바람의계곡 방향으로 길을 잡고 1시간여를 오르다보니 구름다리가 훨씬 가까워졌지만 산이 조금씩 험해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벌써 절반정도를 오른 터라 중간에 포기하기는 아깝고, 5천원씩이나 냈는데 구름다리도 못 보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길을 재촉했다.
산을 오를수록 딸리는 체력을 한탄하면서도 힘이 들만도 한데 씩씩거리며 산을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니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 위로 구름다리의 모습이 보였다. 다 왔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얼마 남지않은 계단을 오르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 계단을 오르가 지친 남혁이 ⓒ 박미경
남편과 강혁이는 보조를 맞추며 올라가기가 버거웠는지 일찌감치 앞서 가는데 막내라 그런지 세 아이중 유독 엄마와 끈끈한 정을 자랑하는 남혁이는 차마 엄마를 두고 혼자 가지 못하겠는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엄마 빨리와"를 외쳤다. 대견한 녀석.
깎아지른 경사 위로 100여 개 정도의 계단만 오르면 구름다리인데 몸은 왜 그리 무거운건지,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그리그리 오른 구름다리 위 경치는 장관이었다. 어떻게 저기서부터 저 험한 산길을 올랐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발 아래 보이는 풍경이 이채로왔다.
내친김에 천황봉까지 오를까 했지만 딸리는 체력과 늦은 시간인 탓에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왔던 길과는 달리 천황사를 지나는 길을 택했다. 올라왔던 길보다는 훨씬 완만한 때문이다.
▲ 강혁이예요, 멋지죠? ⓒ 박미경
아이들과 남편은 내려가는 길이 훨씬 수월하고 평탄한지 달려내려가는데 웬걸 내 몸은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무리가 가서 자칫하면 무릎과 발목이 접질러져 혼자 힘으로는 내려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말이다.
행여 구조대라도 출동해서는 안 되겠기에 주변에 널브러진 나무가지 하나를 주워 지팡이 삼고 최대한 체중을 나무에 싣고, 주변의 나무를 붙잡고 체중을 실으며 사정사정하면서 길을 재촉했다. 그 때문에 아직도 손목이 시큰시큰하다.
여차여차 천황사까지 내려오니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살았다 싶었다. 산 아래 야영장에 도착해 구름다리를 바라보니 내가 저곳까지 올라갔다왔다는 사실이 새삼 대견스러워졌다. 그러고도 힘이 넘쳐서 야영장에 있는 그네를 타고 야영장 옆 조각공원에서 달려다니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누구는 산에 산이 있어 산을 오른다는데 그 산을 채 오르지 못하고 되돌아섰다는 아쉬움.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다음에는 정상까지 한번쯤은 꼭 올라보고 싶다는 욕심.
▲ 월출산 구름다리에서 ⓒ 박미경
월출산을 내려와 왕인박사유적지를 들러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한 후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된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당신, 산이라면 질색을 하는데, 주차료 5천원 아까워서 올라가자고 한 거지? 본전 뽑으려고 가자고 한 거지? 2천원만 냈으면 안 올라갔을 거지? 그치?"
"헐, 누가 주차료 아깝다고 산에 올라가? 올라갈 만하니까 올라가는 거지. 애들도 좋아했잖아. 한번 가보면 애들한테도 좋으니까 가자고 한 거지. 내가 닭이야? 주차료 아깝다고 산을 올라가자고 하게."
"그래도 다행이지. 5천원 안 받았어봐라. 당신이 생전 월출산 중턱에나 가겠나."
"아까워서 올라간 거 아니라니까!"
하지만 사실 나는 닭이 맞다. 주차료가 아까와서 기어이 올라갔으니.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알 것이다. 5천원에 산을 오른 내 심정을.
지금도 월출산을 올랐던 내 무릎과 발목, 그리고 체중을 실었던 팔목에는 1만 원어치가 넘는 파스가 붙어있다.
▲ 바위 틈사이를 잘 살펴보면 누군가가 그려놓은 태극기가 있답니다 ⓒ 박미경
▲ 월출산, 멀리 보이는 곳이 천황봉입니다 ⓒ 박미경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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