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고 만장굴을 걷다니... 경이로운 호모 에렉투스
[세계유산 즐겨찾기④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만장굴, 성산일출봉 답사기
10년 전에 제주도에 온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렌터카를 빌려서 제주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었다. 그때도 봄이었고 3월 초였던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이라서 그런지 정확히 어디어디를 보았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제주도 흑돼지를 맛있게 먹었었고 유채꽃이 만발했던 것만은 생각난다. 그때 찍은 사진이 지금 남아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10년 만에 다시 제주도에 왔다. 이번에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제주도를 직접 보기 위해서다. 제주도 세계유산의 정식 명칭은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이렇게 세 지역이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도 일반인에게는 일부분만 공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용암동굴의 개방구간인 만장굴과 성산일출봉만 둘러 보기로 했다.
10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제주도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만장굴과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는 동일주 버스를 탔다. 터미널에서 만장굴까지는 1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만장굴 버스정거장에서 만장굴 입구까지는 3km의 거리, 시간이 많다면 걸어가도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들은 택시를 타고 입구에 도착했다.
만장굴에 들어가려면 위에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동굴이 형성된 이후에 마치 김밥 옆구리 터지듯이 동굴 천장이 함몰된 부분이 세 군데 있다. 그렇게 천장에 만들어진 구멍 중에서 일반인들은 제 2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만장굴의 개방 구간은 약 1km, 우리도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용암동굴 만장굴
컴퓨터로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주인공은 최소 한 번 이상 동굴에 들어간다. 그 안에서 보스와 맞서 싸우기도 하고 임무를 완수할 만한 보물을 찾거나 열쇠를 얻기도 한다. 만장굴이 거기에 어울릴 만한 동굴이다. 내부가 넓어서 괴물과 싸우기 좋고 천장은 오래전에 굳어 버려서 무너질 염려도 없다.
게임의 주인공처럼 동굴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임무는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다. 개방구간의 끝까지 갔다오기만하면 된다. 만장굴의 내부는 바닥과 벽에 군데군데 조명시설을 설치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운동화를 신고 걷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바닥은 오래 전에 용암이 굳은 상태 그대로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패여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삐끗할 수도 있다.
이렇게 조명시설이 있더라도 아무도 없을 때 만장굴에 혼자 들어오는 것은 꽤나 꺼려질 것만 같다. <반지의 제왕>에서 대왕거미가 사는 동굴에 들어가던 프로도의 심정도 그렇지 않았을까.
축축한 바닥을 밟으며 안쪽으로 이동한다. 동굴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조명시설이 있어도 어둠을 전부 걷어낼 수는 없다. 나의 형편없는 카메라와 더 형편없는 사진 실력으로는 동굴 내부의 모습을 제대로 찍지 못한다. 가다보면 만장굴의 명물인 거북바위와 용암석주가 있다고 하니까 그거나 좀 찍어 봐야겠다.
만장굴이 형성된 것은 대략 30만 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는 신생대 홍적세였고 한반도에는 아마 호모에렉투스(직립형 인간)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화산 폭발과 함께 만장굴의 넓이와 높이만한 거대한 용암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았을때 그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화산폭발과 용암이 뭔지는 몰랐어도 가까이 다가가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죽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흘러내리던 용암의 표면이 굳고, 그 내부로 용암이 빠져나가서 이렇게 용암동굴이 만들어졌다. 폭발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용암이 이후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동굴로 바뀌었다. 제주도 서쪽에 있는 벵뒤굴은 선사시대 인간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용암이 만든 거북바위와 용암석주
제주도와 비슷하게 생긴 거북바위를 지나서 좀더 나아가자 용암석주가 나타났다. 이 용암석주 있는 곳이 개방구간의 끝이다. 철제난간이 있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긴 난간이 아니더라도 저 너머에는 불빛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나아갈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용암석주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흐르던 용암이 굳으면서 생긴 기둥이다. 용암동굴에서는 이런 석주가 종종 발견된다. 이 용암석주의 높이는 7.6m로 가히 세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처럼 만장굴 최고의 볼거리도 끝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용암석주는 웅장하지만 개방구간이 끝났다는 것이 약간 아쉽다.
"미친 척하고 난간 넘어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그래 볼까요? 얘기 들으니까 진짜 가보고 싶네요."
물론 농담이다. 조명시설도 없고 길도 개발 안 되었을 것이 뻔한데 어떻게 우리가 저 너머로 들어갈까. 저 안에 들어갔다가는 대왕거미같은 괴생명체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도, 프로도도 아니니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저 앞에서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그런데 여성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다. 구두를 신고 걷는 나도 약간은 미끄럽고 불안한데 하이힐이라니. 입구의 매표소에는 하이힐을 신지 말라는 경고문도 붙어 있었다. 바닥이 불규칙해서 자칫하면 굽이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 여성은 하이힐을 신고 잘도 걷는다. 만장굴을 만든 것이 자연의 위대한 힘이라면, 하이힐을 신고 이 안을 걸어가는 것은 인간의 경이로운 능력이다. 왔던 길을 돌아서 동굴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제 성산일출봉으로 간다. 아까 내렸던 정거장에서 다시 동일주 버스를 잡아타고 30분 정도 달리니 성산일출봉 앞 정거장에 도착했다. 만장굴에서 성산일출봉까지의 거리는 17km, 그 거리를 오는 데 30분이 걸렸으니 정말 버스는 태평스럽게 달린 것이다.
5천 년 전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에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학교에서 단체로 왔는지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있고 정거장에는 대형버스들이 서있다. 만장굴과는 정반대다. 아까는 어두컴컴한 지하세계로 들어갔는데, 이제는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일출봉으로 올라간다.
성산일출봉의 높이는 182m니까 오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만장굴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명물들이 있다. 세 개의 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오르다 보면 등경돌바위, 초관바위, 곰바위가 차례대로 나온다. 제주도의 동쪽을 지키는 세 개의 장군바위다. 등경돌바위는 등잔걸이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등경돌바위에는 다른 전설도 있다. 제주의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과 관련 있는 전설이다.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한발이 성산일출봉에 닿았고 다른 발은 제주시 앞에 있는 관탈섬에 닿을 정도로 몸집이 컸다. 후에 결혼해서 500명의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그 솥에 빠져죽었다고 한다. 등경돌바위는 바로 이 설문대할망이 바느질할 때 촛대로 사용했다는 바위다. 바위를 언뜻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촛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관바위와 곰바위를 지나서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있는 분화구는 예전에 목초지로 사용했다는데 지금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일반 관광객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만장굴에서처럼 여기서도 길이 막힌 것이다.
"저 안에 왜 못 들어가게 했을까요?"
"들어가서 뭐하게요?"
"그냥 뒹굴게요."
멀리 우도(牛島)가 보인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코끼리를 집어삼킨 보아뱀을 살짝 눌러놓은 것 같다. 저 우도는 음력 2월 14일에 제주도를 떠난 영등신이 하룻밤을 머무는 곳이다. 바람을 타고 들어온 영등신은 역시 바람을 타고 우도를 떠나서 강남 천자국 외눈박이섬으로 돌아간다.
제주도답게 오늘도 바람이 많다. 우리는 이 바람을 맞으면서 어디로 갈까. 영등신처럼 우도에 가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한다. 그럼 제주도에 왔으니 해산물에 한라산소주 한 잔하러 가자. 비싼 다금바리회를 먹지는 못하더라도 오분작뚝배기 정도는 먹을 수 있다. 만장굴과 성산일출봉을 차례대로 둘러보느라 다리도 아프지만 배도 고프다. 일출봉의 분화구를 뒤로하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다시 제주도에 왔다. 이번에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제주도를 직접 보기 위해서다. 제주도 세계유산의 정식 명칭은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이렇게 세 지역이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0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제주도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만장굴과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는 동일주 버스를 탔다. 터미널에서 만장굴까지는 1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만장굴 버스정거장에서 만장굴 입구까지는 3km의 거리, 시간이 많다면 걸어가도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들은 택시를 타고 입구에 도착했다.
만장굴에 들어가려면 위에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동굴이 형성된 이후에 마치 김밥 옆구리 터지듯이 동굴 천장이 함몰된 부분이 세 군데 있다. 그렇게 천장에 만들어진 구멍 중에서 일반인들은 제 2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만장굴의 개방 구간은 약 1km, 우리도 계단을 따라서 내려간다.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용암동굴 만장굴
▲ 세계유산 제주도만장굴로 내려가는 계단 ⓒ 김준희
▲ 세계유산 제주도만장굴 내부, 바닥이 불규칙하다 ⓒ 김준희
컴퓨터로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주인공은 최소 한 번 이상 동굴에 들어간다. 그 안에서 보스와 맞서 싸우기도 하고 임무를 완수할 만한 보물을 찾거나 열쇠를 얻기도 한다. 만장굴이 거기에 어울릴 만한 동굴이다. 내부가 넓어서 괴물과 싸우기 좋고 천장은 오래전에 굳어 버려서 무너질 염려도 없다.
게임의 주인공처럼 동굴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임무는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다. 개방구간의 끝까지 갔다오기만하면 된다. 만장굴의 내부는 바닥과 벽에 군데군데 조명시설을 설치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운동화를 신고 걷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바닥은 오래 전에 용암이 굳은 상태 그대로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패여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삐끗할 수도 있다.
이렇게 조명시설이 있더라도 아무도 없을 때 만장굴에 혼자 들어오는 것은 꽤나 꺼려질 것만 같다. <반지의 제왕>에서 대왕거미가 사는 동굴에 들어가던 프로도의 심정도 그렇지 않았을까.
축축한 바닥을 밟으며 안쪽으로 이동한다. 동굴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조명시설이 있어도 어둠을 전부 걷어낼 수는 없다. 나의 형편없는 카메라와 더 형편없는 사진 실력으로는 동굴 내부의 모습을 제대로 찍지 못한다. 가다보면 만장굴의 명물인 거북바위와 용암석주가 있다고 하니까 그거나 좀 찍어 봐야겠다.
만장굴이 형성된 것은 대략 30만 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는 신생대 홍적세였고 한반도에는 아마 호모에렉투스(직립형 인간)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화산 폭발과 함께 만장굴의 넓이와 높이만한 거대한 용암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았을때 그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화산폭발과 용암이 뭔지는 몰랐어도 가까이 다가가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죽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흘러내리던 용암의 표면이 굳고, 그 내부로 용암이 빠져나가서 이렇게 용암동굴이 만들어졌다. 폭발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용암이 이후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동굴로 바뀌었다. 제주도 서쪽에 있는 벵뒤굴은 선사시대 인간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용암이 만든 거북바위와 용암석주
▲ 세계유산 제주도만장굴의 거북바위 ⓒ 김준희
▲ 세계유산 제주도만장굴의 용암석주 ⓒ 김준희
제주도와 비슷하게 생긴 거북바위를 지나서 좀더 나아가자 용암석주가 나타났다. 이 용암석주 있는 곳이 개방구간의 끝이다. 철제난간이 있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긴 난간이 아니더라도 저 너머에는 불빛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나아갈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용암석주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흐르던 용암이 굳으면서 생긴 기둥이다. 용암동굴에서는 이런 석주가 종종 발견된다. 이 용암석주의 높이는 7.6m로 가히 세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처럼 만장굴 최고의 볼거리도 끝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용암석주는 웅장하지만 개방구간이 끝났다는 것이 약간 아쉽다.
"미친 척하고 난간 넘어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그래 볼까요? 얘기 들으니까 진짜 가보고 싶네요."
물론 농담이다. 조명시설도 없고 길도 개발 안 되었을 것이 뻔한데 어떻게 우리가 저 너머로 들어갈까. 저 안에 들어갔다가는 대왕거미같은 괴생명체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도, 프로도도 아니니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저 앞에서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걷고 있다. 그런데 여성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다. 구두를 신고 걷는 나도 약간은 미끄럽고 불안한데 하이힐이라니. 입구의 매표소에는 하이힐을 신지 말라는 경고문도 붙어 있었다. 바닥이 불규칙해서 자칫하면 굽이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 여성은 하이힐을 신고 잘도 걷는다. 만장굴을 만든 것이 자연의 위대한 힘이라면, 하이힐을 신고 이 안을 걸어가는 것은 인간의 경이로운 능력이다. 왔던 길을 돌아서 동굴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제 성산일출봉으로 간다. 아까 내렸던 정거장에서 다시 동일주 버스를 잡아타고 30분 정도 달리니 성산일출봉 앞 정거장에 도착했다. 만장굴에서 성산일출봉까지의 거리는 17km, 그 거리를 오는 데 30분이 걸렸으니 정말 버스는 태평스럽게 달린 것이다.
5천 년 전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성산일출봉
▲ 세계유산 제주도성산일출봉에 도착했다. ⓒ 김준희
▲ 세계유산 제주도성산일출봉 올라가는 길 ⓒ 김준희
성산일출봉에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학교에서 단체로 왔는지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있고 정거장에는 대형버스들이 서있다. 만장굴과는 정반대다. 아까는 어두컴컴한 지하세계로 들어갔는데, 이제는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일출봉으로 올라간다.
성산일출봉의 높이는 182m니까 오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만장굴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명물들이 있다. 세 개의 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오르다 보면 등경돌바위, 초관바위, 곰바위가 차례대로 나온다. 제주도의 동쪽을 지키는 세 개의 장군바위다. 등경돌바위는 등잔걸이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등경돌바위에는 다른 전설도 있다. 제주의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과 관련 있는 전설이다.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한발이 성산일출봉에 닿았고 다른 발은 제주시 앞에 있는 관탈섬에 닿을 정도로 몸집이 컸다. 후에 결혼해서 500명의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그 솥에 빠져죽었다고 한다. 등경돌바위는 바로 이 설문대할망이 바느질할 때 촛대로 사용했다는 바위다. 바위를 언뜻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촛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 세계유산 제주도성산일출봉 등경돌바위 ⓒ 김준희
▲ 세계유산 제주도성산일출봉 오르는 도중, 아래쪽에 세 개의 바위가 보인다 ⓒ 김준희
초관바위와 곰바위를 지나서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있는 분화구는 예전에 목초지로 사용했다는데 지금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일반 관광객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만장굴에서처럼 여기서도 길이 막힌 것이다.
"저 안에 왜 못 들어가게 했을까요?"
"들어가서 뭐하게요?"
"그냥 뒹굴게요."
멀리 우도(牛島)가 보인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코끼리를 집어삼킨 보아뱀을 살짝 눌러놓은 것 같다. 저 우도는 음력 2월 14일에 제주도를 떠난 영등신이 하룻밤을 머무는 곳이다. 바람을 타고 들어온 영등신은 역시 바람을 타고 우도를 떠나서 강남 천자국 외눈박이섬으로 돌아간다.
제주도답게 오늘도 바람이 많다. 우리는 이 바람을 맞으면서 어디로 갈까. 영등신처럼 우도에 가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한다. 그럼 제주도에 왔으니 해산물에 한라산소주 한 잔하러 가자. 비싼 다금바리회를 먹지는 못하더라도 오분작뚝배기 정도는 먹을 수 있다. 만장굴과 성산일출봉을 차례대로 둘러보느라 다리도 아프지만 배도 고프다. 일출봉의 분화구를 뒤로하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 세계유산 제주도성산일출봉 정상의 분화구 ⓒ 김준희
▲ 세계유산 제주도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우도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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