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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는 학생 필요 없어요, 전학 가시죠?"

[일제고사의 문제 ⑥〕수업 파행과 무한시험...충북이 '2009 학력평가 전국최상위'된 비결

등록|2010.04.22 12:03 수정|2010.04.22 18:44

▲ 충북이 작년 일제고사 성적이 최상위권이라고 하자 전지역에 이런 펼침막이 걸렸습니다. 학교에서 스스로 걸었을까요? 교육청에서 공문 대신 전화를 돌려 걸게했다는 소문입니다. 학생들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하고 교사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상황입니다. ⓒ 신은희


새학기가 시작되고 여러 지역에서 초등학교마저 일제고사를 대비해 0교시, 7교시 수업, 놀토 없애기 현상이 나타나고, 심지어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이는 학교까지 생겨났다. 이는 수업을 빨리 끝내고 방과 후 보충수업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충북이 일제고사 점수 올린 비결이 궁금하신가요

지난해 충북과 강원 일부에 그쳤던 이런 현상이 왜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바로 두 지역이 이런 파행 현상으로 일제고사 전국점수 1, 2위라는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교육감이 학생들을 팔아 차기 선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음에도, 점수를 올리고 나니 지역 여론도 조금 달라지고 교육청은 교과부로부터 우수교육청으로 칭찬을 받았다. 게다가 앞으로 일제고사 향상 점수를 교육청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고, 학교장 평가에 이어 교원평가로까지 이어질 기미가 보이니 그간 눈치만 보던 다른 지역은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지난해 충북과 강원은 어떻게 일제고사를 점수를 올릴 수 있었을까? 지역과 중앙언론에 여러 파행현상이 보도됐지만, 이번에는 충북을 중심으로 일제고사 점수를 올린 비법을 알아보자.

지난해 2월 1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10월에 본 전국 일제고사(초6, 중3, 고1) 점수를 발표했다. 교과부는 "시골인 임실의 초등학교들이 '방과후교육'으로 전국 최상위를 차지했다"고 홍보했다가 '임실의 조작'사건으로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충북은 점수로 보면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분류되었다. 청주나 충주를 제외하면 6학급 위주의 작은 학교가 많고 경제력도 전국 하위 수준인 상황에서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막상 최하위라는 불명예는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았다.

이에 이기용 충북교육감은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교육계에서는 일제고사 점수가 곧 교육의 모든 성과를 반영할 수는 없다는 반발이 있었다. 전교조 충북지부는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미달 학생이 많은 편(국어, 영어 최하위, 사회, 수학, 과학 하위권)이지만, 중학교에서는 미달 학생이 더 적어지고(최하위과목 없고 중하위권), 고등학교에서는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현상(모든 과목 중상위권)은 바람직한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초등학교 때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공부하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가면서 점점 학력이 향상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충북교육은 오로지 일제고사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교육 현장은 학생들의 한숨과 교사·학부모의 탄식으로 채워졌다.

지역교육청, 교장 압박해서 시험 늘리고 방학보충수업 강요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교장들의 스트레스 증가'였다. 교육청 회의만 가면 교육감, 교육장, 장학사들의 점수 올리기 강조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교사들에게까지 들려왔다.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할 때는 교장에게 그 학교 학습부진아 숫자를 이야기해 만나기가 겁난다고도 했다. 5월의 교감단 회의에서는 방학보충을 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심지어 점수를 올리겠다는 선서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이에 따라 학교 구성원도 당연히 교장이나 교감이 교육청 회의에 다녀올 때마다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인가 겁을 먹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학교는 교육과정을 정상운영하면서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5월에 들어서면서 충주에서는 장학사들이 '수시장학'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학교를 돌며 "어떤 학교는 방학 때 몇 주씩 보충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흘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교사들이 협의해서 계획을 만들어도 장학사가 직접 다녀가고 나면 하루 아침에 없던 보충학습이 생겨난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장학사가 수시로 학교에 전화해서 잘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기초학력부진아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걔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지역도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교에는 "1등 할 수 있겠죠?"라는 압박도 들어왔다.

▲ 전교과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사설사이트에 돈내가며 교재연구를 하자 교육청이 수업과정을 지원한다고 만든 교수학습사이트입니다. 그런데 충북교수학습센터는 작년부터 첫화면에 모의고사 문제풀이 올렸다는 홍보가 턱하니 나와있습니다. 무려 2만 문제가 넘는다고 자랑합니다. 아예 이름은 문제풀이사이트로 바꾸는 건 어떨가요? ⓒ 신은희


교사는 문제 내는 기계, 학생은 문제 푸는 기계

도교육청은 시험문제풀이도 직접 지도하기 시작했다. 원래 교수학습지원을 위해 만든 에듀넷 지역사이트(충북교수학습센터)에 일찌감치 모의고사 10회분을 실어놓고 그걸 푼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전국교수학습센터를 다 살펴보니 이렇게 모의고사 문제를 첫 화면에 띄운 곳은 충북이 유일하다.

이 문제는 어떻게 나왔을까? 2009년 봄에 교육과학연구원에서 문제를 출제할 교사를 모집하더니 팀별로 한 달간 2000문제를 내라고 해, 교사들이 정말 미친 듯이 문제를 만드느라 애를 먹었다. 올해도 모집 공문이 내려왔다.

여름방학을 앞두고는 4·5·6학년 핵심정리도 내려 보내고 학교마다 제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저작권을 우려해서 다른 지역에는 유출하지 말라는 주의사항도 내려 보냈다. 7차 교육과정은 지식의 요약보다 학생들이 직접 경험이나 조작을 통해 지식을 내재화할 것을 강조하는데 교육청은 핵심을 요약하는 수업을 강요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교육청은 공문체계를 무시하고 이메일과 전화로 각종 민감한 지시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혹 공문을 내려 보냈다가 발목을 잡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역교육청들도 이를 본받아 이메일로 학교교육과정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험이 다가온 2학기에는 매주 점검사항을 주간보고 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강원도의 일일보고보다는 낫다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일제고사로 생긴 각종 파행현상이 낯 뜨거울 정도였다.

시험문제 내랴 분석하랴, 학원으로 바뀐 지역교육청

도교육청이 충북 전체 점수를 올리기 위한 방안을 지시했다면 충북의 각 지역교육청은 다른 지역교육청보다 점수를 올려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그래서 갖가지 방법이 다 동원됐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군 교육청 시험을 봐서 학교 간 비교를 하는 것이다.

옥천교육청이 4번이나 시험을 봤고 심지어 여름방학인 8월에도 시험을 봤다. 점수가 낮은 학교는 점수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여름방학을 거의 반납하는 곳도 생겨났다. 제천에서는 공문도 시행하지 않고 시험을 3, 4회 봤다. 음성, 보은은 교과부가 교육과정 파행금지공문을 내려 보낸 뒤에도 시험을 봤다. 청원교육청은 시험지를 내려 보내면서 '학교 자율'을 강조하고 각 학교의 시험날짜를 달리 해서 일제고사라는 비판을 피해갔다. 학원처럼 이전 시험의 경향을 분석해서 내려 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방학보충을 시행하고 2학기에는 예체능 수업은 안 하고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등 주지교과 수업과 시험지풀이만 반복했다. 충북의 교육과정이 일제고사 준비로 획일화된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밤9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곳도 있어서 초등학생들이 견디기 힘든 생활이 시작됐다.

시험 보느라 사라진 수업

▲ 올해도 역시 문제개발위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4학년이 2007개정교육과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를 바꿔야 하니까요. 개정교육과정 지원은 전혀 안하면서 문제낼 생각만 하고 있는 모습이 현장교사로서는 한심합니다. ⓒ 신은희


도교육청 문제풀이에 지역교육청, 학교로 이어지는 압박구조로 6학년은 2학기에 들어 거의 문제풀이만 하는 학급이 늘어갔다. 이 때문에 수업시간은 많이 줄어들었다. 모의고사 1회 시험 시간은 5개 과목을 40분씩 실시해 총 200분이 소요 된다. 모의고사를 10회 실시하면 2000분, 약 50교시의 수업시간이 사라진다. 약 2주간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뿐 아니라 교사가 채점을 하는 시간은 매 시험마다 3~4시간씩 소요돼 교재연구나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도 소모된다.

시험문제 풀이도 공부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시험과 수업은 엄연히 다르다. 시험은 시험문제에 나올 유형의 내용만 보는 것이고, 답을 찾는 방법을 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육과정에 제시된 내용들은 주로 활동과 체험을 통해 습득하게 되어 있고, 한 번의 활동에 그치기보다 지속적인 수업활동 속에서 학생들에게 체득되도록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워낙 교육과정에 제시된 내용이 많아 사실 전국의 학교가 진도 나가기 급급하고, 심지어 사교육을 해도 학생들이 모든 교육과정을 다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시험지 풀이를 주로 하다보면 수업을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폭넓게 사고하도록 가르친 걸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학생들이 흥미를 잃고 친구들 간에 경쟁심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부작용도 점점 심해진다. 시험점수가 실력의 전부는 아니건만 숫자에 자기 자신이 갇혀버리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도 자신이 학원강사가 된 것 같다는 자괴감에 학생을 직접 압박해야 하는 부담감, 교육이 아니라 고통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학습부진아들은 더 힘들었다. 학급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교육청에서 학습부진아 관련해 계속 전화가 오는 학교는 학생들을 특수반으로 돌렸다는 사례도 보도되었다. 제천에서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고 학습부진아와 기초학력 수준의 아이들까지 불러 부모를 욕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학생들은 날마다 보충학습을 하라니 학교 오기도 싫어질 정도이고 교사들도 양심의 가책으로 학교 다니기 싫다는 하소연이 넘쳐났다. 주변에 이 후유증으로 병을 얻은 교사도 있고, 많은 교사들이 "이게 무슨 교육이야"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책상 간격 너무 넓게 벌리지 마라?

드디어 2009년 10월 13일 시험이 다가왔다. 그러자 일부 교육청은 장학사를 학교로 급파해서 "시험 볼 때 책상 간격을 너무 넓게 벌리지 말고, 가운데 책가방을 올리는 등 경직된 분위기 만들지 말라"고 했다. 시험도 평소처럼 편안하게 봐야 한다는 건 맞는 이야기이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교사들은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때는 편하게 시험 보게 하려는 학급에도 '공정성' 운운하며 시험분위기 너무 얼게 만들다가 갑자기 편하게 하라니 이상하게 여겨질 법도 했다. 게다가 시험 보고 시험지를 바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묵히고 가채점을 한 학교도 있었다.

이렇게 2009년을 보낸 결과 충북은 전국에서 초등성적 1, 2등을 다투게 됐고 가장 혹독하게 시험공부를 시킨 지역교육청과 학교들이 좋은 점수를 얻었다. 지역교육청들은 당당하게 학교 담당자들을 불러 초등학교 7교시 수업을 우수사례라 발표하게 하는 등 수업파행사례도 부끄럼 없이 이야기했다. 거기에 도교육청에서 지역·학교별로 보낸 평균점수를 보며 교사들에게 더 올릴 수 없냐고 당당하게 주문한다.

어른들 논공행상에 학생들만 이용당한 셈

▲ 지역신문인 옥천신문(2009년 9월 11일자)은 졸업을 앞둔 학습장애 학생들이 특수학급으로 간 것이 일제고사 점수를 올리기 위한 편법이 아니냐는 기사를 보도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4월에 특수아 보고가 끝나는데 옥천과 양구는 그 뒤에도 계속 특수학급에 편입되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일제고사 성적 발표가 나온 뒤에도 교육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계속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 신은희


점수 오른 교육청과 학교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점수 올리기에 올인한 장학사들은 교장으로 승진하고 교육장의 자리도 보장됐다. 아동학대, 교육과정 파행 등 온갖 비판을 받은 옥천교육청을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방문해 격려했고 해당학교 사례는 학생 개별 맞춤식교육으로 포장되었다. 학습부진아를 집에까지 데려가 공부시킨 신규교사를 우수사례라고 전국방송에 내보냈다.

그럼 정작 아이들과 교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 한 해 점수 올리기에 동원당한 학생들은 "대체 이게 뭐냐?"고, "이까짓 시험에 우리를 내몰았냐"고 절규한다. 점수가 올랐다는 교육감 편지와 언론 보도, 학교마다 걸린 자축 플래카드에 교사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교육이 왜 자꾸 이렇게 이상해지지" 하면서도 그렇다고 뭔가 하는 시늉은 내야하는 관리자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학부모나 교사 사이에는 "어떤 학교는 7시까지 공부한다더라, 놀토 없앴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최우수 학력이라는 게 뭐예요" 물어본다.

학습부진아들에게로 낙인찍힌 아이들은 어떨까?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고, 담임교사들도 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맡는 순간 "왜 하필…" 소리가 나온다. 이런 학생을 두고 '어차피 점수 봐서 나온 학력이니 시험 봐서 점수만 올려놓으면 되지'하며 전인교육을 포기하는 교사도 있다. 헌법에서 부여받은 교육권과 전인교육이 일제고사 점수 올리기로 격하되어버린 것이다.

학교나 학급 분위기가 변해 버린 곳도 많다. 청원과 옥천에서 점수가 많이 오른 학교를 보면, 이전에는 작은 학교의 특성을 살려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교육과정을 특색 있게 운영하던 곳이 많았다. 청주나 대전과 가까워 도시의 삭막한 경쟁교육에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전학 와서 즐겁게 공부하던 학교도 있다. 옥천지역 한 교사의 말이다.

"대전에서 성적 때문에 하도 스트레스를 줘서 시골 작은 학교는 덜할 줄 알고 부모가 전학을 보냈어요. 근데 교육청에서 학습부진아 숫자를 계속 체크하니 담임이 학부모에게 '공부 못하는 아이는 필요 없다. 도로 전학가라'하고, 학부모는 교육청으로 학교로 계속 전화해도 모르는 척하고 그래서 결국 다시 못 견디고 전학 갔어요. 전에는 학생들 전학 오라고 하던 학교들이 이젠 일제고사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학습부진아는 받기 싫은 거죠."

충북은 이렇게 대한민국 일제고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교과부의 권한을 위임받아 국가교육과정을 지역 상황에 맞게 특색 있게 운영해야 할 도교육청이, 문제풀이나 지시하고 학생 인권을 침해 했지만 일제고사 점수가 올랐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은 양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일선 학교들은 알아서 기는 분위기로 점수 올리기에 올인 하면서 충북 지역 아이들은 21세기에 맞지 않는 정답 맞추기 교육과 무한경쟁으로 성장 잠재력을 손상 받고 있다. 월말고사와 잦은 시험에 정상수업을 못하는 학교가 늘어가고 옥천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전학시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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