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소녀시대, 통닭 먹고 싶어 어쩌니?

[아이돌 따라잡기-여] 걸그룹 식단, 3일만에 포기했어요

등록|2010.04.22 19:19 수정|2010.04.22 23:13

▲ 소녀시대와 시크릿의 식단표가 내게 전달되었다. 보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나는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식단표였다. ⓒ smtown.com


올해만큼 봄이 더디 온 때도 없을 것이다. 이제 좀 따뜻해졌나 싶으면 찬바람이 '쌩쌩' 불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또 뭘 입지"로 고민이다. '춘4월'에도 겨울 코트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니, 이러다가 봄은 그냥 건너뛰고 여름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치명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아직도, 여전히, 춥다는 핑계로 '노출의 계절' 여름을 대비한 몸매 관리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나긴 겨우내 두꺼운 코트 속 내 몸은 세상 누구라도 품어줄 태세로 '후덕하고 관대한 몸'이 되어 있었다.

한 주먹씩 잡히는 배 둘레 살을 칼로 끊어낼 수도 없고….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다! 급하게 '몸매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단 점심시간을 이용한 직장인 요가를 등록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내 다이어트 계획을 어떻게 알았는지 <오마이뉴스>의 '특명'이 떨어졌다. 소녀시대, 시크릿 등 걸그룹들의 식단을 일주일간 체험해보고 글을 써주지 않겠냐는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나는 어떤 식단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 있게 "OK"를 외쳤다. 다이어트 식단에 요가까지 곁들이면 얼마나 큰 효과를 볼까? 그 순간만큼은 살들이 '쭉쭉'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불과 한 시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봄볕에 눈 녹듯 사라졌다.

걸그룹 다이어트 식단표, 생지옥이 따로없구나

시크릿 식단3일 하고 집어 치운 공포의 식단 ⓒ 박진희


메일로 소녀시대와 시크릿의 식단표가 내게 전달되었다. 보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나는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식단표였다.

아침에 빵 한 조각, 점심에 고구마 하나, 저녁에 방울토마토 여덟 개? 이건 메인 요리와 함께 곁들여 먹는 간식이잖아. 그럼 주식은 어딨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식단표는 없었다. 하루에 이것만 먹으라는 소리인 것 같았다.

아무리 아프리카에서 소똥도 씹어 먹었다(관련기사 소똥,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지만 내가 과연 이걸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까. 식단표를 받아든 순간부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약속한 거니 어쩔 수 없었다.

괴로움은 다이어트를 시작한 첫날 저녁부터 찾아왔다. 요가까지 해서 그런가. 오후 네 시부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사지가 떨려왔다. 이 사지의 떨림을 방울토마토 여덟 개로 버텨내야 한다니…. 첫날부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나는 이런 지옥 체험을 하겠다고 했을까. 차라리 해병대 체험을 한다고 할 걸.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거의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세수할 여력도 없을 정도로 몸 자체를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걸 밥이라고 먹고 춤 연습까지 해야 하는 걸그룹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나는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도저히 활동할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포기 깨끗이 포기하고 맛난 통닭 한마리를 냠냠 ⓒ 박진희


다음 날, 차라리 아침 점심 저녁을 한꺼번에 다 먹어버리고 병가를 낸 뒤 집에 가서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비인간적인 식단은 나를 이틀 만에 피폐하고 비능률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5일이 남았다는 건 지옥 같은 일이다. 결국 나는 식단 체험 3일째 되는 날, 길거리 통닭집에서 튀기고 있는 닭 냄새를 못 견디고 문자를 보냈다.

"저, 죽을 것 같아요. 오늘까지만 할래요. 통닭이 너무 먹고 싶어요 ㅜㅜ. 글은 지금 체험으로도 충분히 잘 쓸 수 있어요. 믿어주세요."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다이어트를 포기한 실패자 '박진희'는 저녁 퇴근길에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와 생맥주 1000cc를 사와 <신데렐라 언니>를 보며 마냥 행복해 했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나를 '루저'라 손가락질 한다해도, 닭다리가 주는 행복감을 포기할 순 없었다.

소녀들아, 그거 먹고 행복하니?

편법 고구마마트에서 가장 큰 고구마를 골랐다. 직장 동료가 고구마 크기를 보곤 "이건 소녀시대 세 명이 먹고도 남을 크기"라고 말했다. ⓒ 박진희



걸그룹 평균연령을 대략 10대 후반이라 치자. 10대 후반 내 학창 시절엔 도시락을 두 개나 싸서 책가방에 짊어지고 다녔었다. 2교시 땡하면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4교시가 끝나면 저녁 도시락을, 6교시 끝나면 매점으로 앞 다퉈 달려가 쫄면을 먹었다. 하교 때는 근처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사먹곤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랬었다. 그렇게 먹고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어려워 가끔은 수업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기도 했던 건 비단 배가 고파서만은 아니었다. 먹는 재미, 먹는 욕구가 절정에 달했기 때문이다. 짧았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 매일매일 이 식단으로 살아야 하는 걸그룹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가엽기도 했다. 왕성한 식욕을 참고 말도 안 되는 식이요법으로 매일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실제 방송에서 아이돌들의 웃지 못할 다이어트 경험담을 듣노라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란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일례로 그룹 <슈가> 멤버였던 한예원은 다이어트 식단조차도 없이, 일정 시간에 사장님께 밥을 배정받아 먹을 정도였다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몰래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다가 문소리가 나면 밖에다 던져 버렸던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신인 그룹 <햄>(HAM)의 멤버인 미유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40대 후반인 몸무게를 42kg까지 빼다가 희귀병에 걸렸다. 살을 빼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이마, 팔, 다리에 커다란 혹이 생긴 것이다. 또 걸그룹은 아니지만 코미디언 김신영은 다이어트 부작용으로 탈모 증상도 생겼다고 고백했다.

▲ <소녀시대> 치킨 광고 장면. ⓒ 화면캡처


살 안 빠져도 괜찮아, 지금도 행복하니까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 역시 여자임에도 예쁜 여자를 보면 한 번 더 뒤돌아보고 부러워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지만, 한 번 정도만 더 쳐다볼 뿐이지,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매일 쳐다보진 않는다.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인정하지만,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정상적인 욕구가 심각하게 상처받는 건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일과에 지장을 주어가며 살을 빼서 예뻐지는 행복과, 고추장을 슥슥 비빈 따끈한 밥에 참기름 똑 떨어뜨려 한 숟가락 크게 입 안으로 가져가는 행복 중에 나를 더 즐겁게 하는 건 뭘까. 한 번 고민해보면 좋겠다.

그래도 여전히 한 주먹씩 잡히는 '배둘레햄'이 스트레스로 나가온다면 2~3일 정도는 소녀시대 식단이나 시크릿 식단을 체험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배고픔의 고통에 못 이겨 '이 정도면 나, 날씬한 것 같아' 하며 자족감(혹은 합리화)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니콜키드박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