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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은 집이 아니라 사람을 잃은 것"

[인터뷰] 최준영 경희대학교 문과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

등록|2010.04.21 15:07 수정|2010.04.21 15:07
"정말 숱하게 들었어요. 그 질문은."

너무 뻔한 질문이었을까? 노숙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를 묻자 최준영 경희대학교 문과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삶의 동기를 회복하는 겁니다. 하루 이틀을 살려면 물론 밥이나 잠자리가 필요하죠. 문제는 '왜 사느냐'거든요. 삶의 의미, 사람 관계의 소중함을 풀어가야 하는 겁니다. 인생이란 긴 여정을 걸어가려면 인문학적 성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삶의 동기를 회복하는 것"

▲ 노숙인 인문학 강의에 6년째 참여중인 최준영 경희대학교 문과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 ⓒ 이민우



지난 18일 오후 7시 경기도 수원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2005년부터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해 오고 있다. 알고 지내던 성공회 임영인 신부한테 제안을 받은 게 계기였다.

임 신부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하려는 데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최 교수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다.

"처음엔 망설였습니다. 아니 두려웠죠. 학위나 대학 강의 경험도 없는 내가 노숙인에게 인문학 강의를 한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순 없었거든요."

거듭된 임 신부의 요청에 최 교수는 강의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쩌면 노숙인 인문학 강좌는 자신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가 고등학교 과정을 야학으로 마쳤거든요. 검정고시로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시절엔 학업은 뒷전인 채 시위와 야학교사 활동에 미쳐 지냈고요. 거듭 재적을 당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죠. 첫 직장은 신문사였어요.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지만, 그것도 1년 만에 그만뒀어요. 엘리트 의식에 취한 그네들이 품어내는 비인간적 분위기가 싫었고,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었죠."

그래서일까. 그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인문학 교수 중에서 손으로 꼽히는 '노숙인 인문학 교수'로 통한다. 최 교수는 "나 같은 얼치기에게 강의 제의가 계속 들어오는 건 비교적 선생님(최 교수는 노숙인을 이렇게 불렀다, 수강생인 노숙인들도 서로 존중하는 뜻에서 이 호칭을 쓴다)들을 잘 이해하는 편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 이상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애써 내세우진 않으면서도 그의 말엔 은근히 긍지가 묻어난다.

노숙인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토론 수업

"저보다 훌륭한 인문학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죠. 하지만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며 인문학을 풀어내는 건 무척 부담되는 일이거든요." 

사실 그랬다.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선생님'들 앞에서 섣불리 인생과 삶을 논했다가는 자칫 욕 얻어먹기 십상이다. 최 교수 역시 강의 도중 수 없이 진땀을 뺐다. 그런 속에서도 최 교수는 모든 수업을 철저하게 토론수업으로 진행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진지하게 던진 질문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차라리 낫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토론 중에 욕설 섞인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숙인은 누구일까요" 최 교수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했다.

"얼핏 보면 돈이나 집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홈리스(homeless)라고 하죠. 하지만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느낀 건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관계가 다 깨져 버린 거예요. 이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주변에 연락할 수 없을 정도로 내몰린 사람이죠."

최 교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란 말의 앞부분 '사람'이란 단어를 '사랑'으로 바꿔도 뜻은 통한다고 했다. 결국 노숙인은 사람관계가 철저히 망가지고, 사랑을 잃은 사람인 셈이다.

"결과를 논하기 전에 그 과정 혹은 노력을 가치 있게 평가해야"

그런 노숙인들이 인문학 강좌를 진행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노숙을 그만두는 현상이 잇따랐다. 토론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배우며 자기 정체성을 찾고, 사람 관계를 회복해 나간 것이다. 노숙인 인문학 강의가 좋은 결실을 맺자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강좌들이 많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한국사회에서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노숙인 속에서 인문학의 열기가 시작됐습니다. 불과 2~3년 만에 그렇게 됐거든요. 지금은 시민들과 차상위 계층, 노인, 주부, 직장인, CEO, 정치인을 비롯해 정말 다양한 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곳곳에 열립니다. 당연한 흐름이라 생각하죠."

최 교수는 어디서 강의 요청이 오건 마다하지 않았다. 2008년엔 네 곳의 노숙인 쉼터에서 강의했고, 2009년엔 경희대와 서울교정청이 함께 마련한 교도소인문학 강좌에도 참여했다. 노숙인 인문학 강좌는 흔히 '철학', '예술사', '역사', '문학', '글쓰기' 같은 과목으로 꾸려진다. 이 가운데 최 교수가 맡은 건 '글쓰기'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는 "글 쓰는 게 직업인 나 자신도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중요한 건 좋은 글 자체가 아니라 좀 서툴고 어설퍼 보여도 진심이 담긴 글을 쓰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결과를 논하기 전에 그 과정 혹은 노력을 가치 있게 평가해야 합니다. 손이 아닌 몸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는 글이 진정한 글이라고 믿습니다."

노숙인 선생님들과 울고 웃은 사연 담긴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표지. ⓒ 자연과 인문



얼마 전 최 교수는 노숙인 선생님이나 재소자들을 비롯해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배우며 깨달은 사연들, 울고 웃은 가슴 찡한 이야기들을 오롯이 담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말 그대로 노숙인 인문학 강의가 빚어 낸 희망과 관련된 생생한 체험이 가득하다.
강의에 참여했던 한 노숙인이 스스로 털어놓은 인문학의 의미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제 무능력을 탓하며 헤어지자는 말만 반복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평소 저하고 통화하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프란시스대학에 들어와서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니까,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어제도 오늘 MT 간다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16년 만에 처음 해본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말을 하는 제가 놀랍습니다. 연애기간 포함해서 16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의 의미입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책 66쪽)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피어난 민들레꽃처럼 샛노란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노숙인 인문학 과정을 마친 뒤 취업에 성공해 주목받은 어느 선생님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은 우리가 모두 하게 될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이 오후7시 수원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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