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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제자들, '맹자' 염장 제대로 지르네

[맹자 읽기] 스승과 제자가 있는 풍경

등록|2010.04.21 15:39 수정|2010.06.07 17:07
늦깎이 중문학도가 이제서야 고전에 재미를 붙여갑니다. 어쭙잖은 실력이지만 맹자를 읽어가면서 느끼는 이것저것들을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연재해 볼 생각입니다. 틈틈이 아주 의미심장한 부분은 원문을 문법적으로 이해해나가면서 고전을 읽는 재미를 같이 느껴 보고자 합니다. <기자 주>

공손 추(公孫丑)란 사람 이름이고 맹자(孟子)의 제자이며 제(齊)나라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스승인 맹자 앞에서 살짝, 삐딱선이다(그래서 성씨가 공손씨? ^^). 선생의 말 한마디에 자지러지던 공자(孔子)의 제자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 공손 추 하편의 첫 장을 보라.

공손 추는 맹자에게 대뜸 "선생님이 제(齊)나라에서 요직에 오르신다면 관중(管仲)과 안자(晏子) 정도는 가능하시겠지요?" 라며 관중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려 애쓰시는 스승의 염장을 제대로 질러드린다. 세상에 이런 제자라니, 이것은 제자의 자세로 보기 어렵다. 인사 청문회장에 나와 앉은 패널이나 가능함 직한 삐딱한 자세. 맹자의 화가 치민다. 분을 삭이며 에둘러 제자를 비난한다. 탄식하듯, 子誠齊人也.

예전에 공자께서 돌아가시니 3 년 후에 문인이 맡은 일을 다스리고 돌아가려 할 때에 (중략) 다른 날에 자하와 자장과 자유가 유약이 스승의 모습과 비슷하니 스승을 섬기던 것과 같이 그를 섬기고자하여 증자에게 강권하니, 증자가 '불가하다. 스승님이 풍모는 마치 양자강과 한수의 물로 깨끗이 씻어 가을볕에 말린 것처럼 희디희니 거기에다 무엇을 더하겠는가?'라고 했다. (公孫丑 章句 下)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왜 공자 다음에 증자(曾子)가 되는지 의아했었다.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己(가을 햇볕 좋은 날, 흰 빨래를 널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불이라도 널어본 적이 있는가. 그 상쾌함을 아는가?) 그 무엇으로도 스승의 풍모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이 대목에서, 증자가 그런 분분한 논의들을 단숨에 잠재워버리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가 왜 공자 다음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 증자의 제자됨이여.

증자는 이 학문(斯文)은 종교(宗敎)가 아니라 정신(精神)이 되어야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것이 스승의 뜻이었음을 제자는 심득(心得)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이런 절절한 그리움과 스승의 부재의 허망함을 불러일으키는 공자와 달리 맹자의 뒤에는 기억나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승 되기 어려움이여. 제자 되기 어려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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