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9)

― '유종의 미라는 것을 일러 왔고' 다듬기

등록|2010.04.23 19:04 수정|2010.04.23 19:04

- 유종의 미

.. 그러기에 매사에 우리는 유종의 미라는 것을 일러 왔고, 그것을 참으로 갈망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  <임옥인-지하수>(성바오로출판사,1973) 19쪽

'매사(每事)에'는 '모든 일에'로 다듬고, '미(美)'는 '아름다움'으로 다듬습니다. "-라는 것을"은 "-를"로 손보고, '갈망(渴望)해'는 '바라'나 '꿈꾸어'로 손보며, "왔던 것이기도 하다"는 "오기도 했다"나 "왔던 셈이다"나 "왔다"나 "오곤 했다"로 손봅니다.

 ┌ 유종(有終) : 시작한 일에 끝이 있음
 │   - 모든 일은 유종하다 / 우리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자
 ├ 유종의 미 : 어떤 일 따위의 끝을 잘 마무리하는 성과
 │
 ├ 유종의 미라는 것을
 │→ 아름다운 마무리를
 │→ 좋은 마무리를
 └ …

'유종의 미'라는 글월은 관용구로 굳었습니다. 그렇지만 '유종하다'라는 낱말이 따로 쓰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유종'이라는 낱말 또한 외따로 쓰이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관용구로 굳은 글월이기에 사람들은 이 말투를 이냥저냥 그대로 씁니다. '유종의 미'가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지를 따로 살피기보다 "유종의 미'는 그예 '유종의 미'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유종'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올바로 돌아보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유종'과 함께 '유종의 미'라는 관용구가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유종'이란 "끝이 있음"을 뜻하는 한자말이고, '유종의 미'란 "끝을 잘 마무리하기"를 나타내는 관용구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마무리"나 "훌륭한 마무리"나 "아름다운 마무리"나 "멋진 마무리"나 "알찬 마무리"나 "즐거운 마무리"라고 하면 넉넉한 자리에, 우리들은 뜻과 느낌을 깊이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보다는 '유종의 미' 한 마디로 뭉뚱그린다고 하겠습니다.

 ┌ 마무리를 잘 지으라고
 ├ 끝을 잘 맺으라고
 ├ 마지막까지 잘 하라고
 ├ 끝까지 잘 맺으라고
 └ …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소리는 "마무리를 아름답게 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끝을 잘 맺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무리까지 알차게 여민다"는 이야기입니다. "끝을 훌륭히 맺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무리를 멋지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 깜냥껏 예부터 익히 주고받던 글월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서로서로 나누던 글월은 국어사전 관용구로 실리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우리 글월을 우리 관용구로 삼으려고 애쓴 발자국이나 손자국을 찾아볼 수 없어요.

"좋은 마무리"나 "훌륭한 끝맺음" 같은 글월을 관용구로 실은 국어사전이 있습니까. "알찬 마무리"나 "멋진 끝맺음" 같은 글월을 관용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 국어학자가 있습니까. 우리 말은 그냥 쓰는 말이라고만 여길 뿐 아닐는지요. 살가이 들려주거나 찬찬히 귀담아듣는 말마디를 알차게 엮거나 싱그럽게 여미려고 하는 매무새를 보여주는 글쟁이는 얼마나 될는지요.

 ┌ 좋은 끝마무리
 ├ 아름다운 끝마무리
 ├ 멋진 끝맺음
 ├ 훌륭한 끝맺음
 └ …

사람들 스스로, 아니 나 스스로, 그러니까 누구나 스스로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고 싱그럽고 곱고 알차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는 우리 터전입니다. 학교에서도 그렇지만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언론매체도 그렇지만 책마을도 그렇습니다. 공공기관도 그렇지만 문화예술을 한다는 모임 또한 그렇습니다.

 ┌ 갈무리
 ├ 뒷갈무리 / 뒷갈망
 ├ 마무리 / 끝맺음 / 맺음 / 끝마무리
 └ …

우리한테는 '갈무리'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갈무리'라는 낱말이 바로 '유종의 미'와 쓰임새가 거의 같습니다. 이 낱말에 '뒷-'을 붙인 '뒷갈무리'라는 낱말은 뜻이 좀더 셉니다. '마무리'라는 낱말로 '유종의 미'를 나타낼 수 있으며, '끝마무리'라는 낱말로도 너끈히 우리 마음과 넋을 담아냅니다.

'좋은끝'이나 '좋은맺음'이나 '좋은갈무리'처럼 아예 새 낱말을 일굴 수 있습니다. 따로 한 낱말로 삼지 않더라도, 이렇게 말마디를 엮고 저렇게 글줄을 이으면 된다는 말틀을 보여주면 됩니다.

사랑스레 주고받는 사이에 사랑스러움이 깊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기쁘게 나누는 동안 기쁨이 고이 스며드는 글입니다. 사랑 담은 넋으로 사랑 담은 말을 이루고 사랑 담은 삶을 꾸리면 됩니다. 기쁨 실은 얼로 기쁨 싣는 글을 이루고 기쁨 실어내는 삶을 마무리하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