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들 연합군'이 아이패드를 당해낼 수 없는 까닭
[사용기] 아이패드 무용론자, 1주일 만에 잡스 팬이 되다
▲ 전자책 행사장에 가져갔다 방송사 취재 대상이 된 '아이패드' ⓒ 김시연
내 손에 아이패드가 들어왔다. 낯선 제품을 접한 첫 느낌은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 20일 강남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KT e북 마켓 '쿡 북카페' 오픈 행사에 참석한 KT 관계자와 기자들도 처음 만져보는 아이패드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 김시연
행사장에 두 대뿐이었던 아이패드는 금세 참석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옆자리에 앉은 KT 임원과 기자들도 번갈아가며 아이패드를 직접 만져보곤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움직이는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애플 아이북에서 무료 제공하는 e북 <아기곰 푸>를 보고는 "잘 만들었다", "읽어볼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이날 가져간 아이패드가 e북 단말기보다 먼저 TV 방송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날 e북 단말기 홍보 부스에선 "책을 읽는 데는 전자잉크를 쓰는 e북 단말기가 경쟁력이 있다"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아이패드는 액정(LCD) 화면을 쓰기 때문에 오랜 시간 보면 눈이 피로하고 햇볕이 있는 곳에선 반사돼 읽기 불편하다는 얘기였다.
과연 아이패드가 킨들이나 스토리 같은 e북 단말기들의 적수가 될까? 독서 외에 또 어떤 일에 쓸모가 있을까? 아이패드를 손에 쥔 지난 1주일 IT 담당 기자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아이패드는 '컴퓨터'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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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패드로 본 신문과 잡지미국 일간지 'USA투데이' 앱과 디지털 잡지 앱 'zinio'에서 볼 수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 김시연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 강인규 기자는 지난 18일 쓴 <아이패드는 '컴퓨터'가 아니다>란 글에서 아이패드는 '태블릿PC'나 '컴퓨터' 같은 '생산 기기'가 아닌 '종합미디어 소비기기'라고 정의했다. 난 직접 아이패드를 만져보고 나서야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⓵ 아이패드는 '살아있는 그림책'이다
먼저 아이패드를 네 살배기 딸에게 던져줬다. 마땅한 유아용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아래 앱)이 없어 일종의 그림판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어도비 아이디어' 앱을 열어줬다. 이미 아이폰으로 내공을 쌓은 덕인지 터치스크린엔 금방 적응했다. 손가락으로 점도 찍고 선도 그어가며 신기한 듯 스크린 위를 휘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싫증을 내곤 뽀로로 동영상 본다고 아빠 아이폰을 달란다.
▲ 아이패드용 디지털북 '토이스토리'에 빠진 딸아이 ⓒ 김시연
다음 카드는 움직이는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아이패드를 흔들면 삽화 속 물건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전자책이었다. 처음엔 아이도 신기한 듯 쳐다봤지만 단순한 움직임에 싫증이 났는지 곧 목차 버튼을 누를 때마다 등장하는 뿌웅뿌웅 나발 소리에만 꽂혔다. 소리 나는 그림책 앱인 '트럭' 역시 다양한 트럭 그림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림을 누를 때 차 이름이 음성으로 나오는 단순한 구성 때문인지 오래 붙들고 있지는 않았다.
시큰둥하던 딸아이가 결정적으로 꽂힌 건 월트 디즈니 디지털 북 '토이스토리'였다. 워낙 익숙한 캐릭터들인 데다 배경 음악에 맞춰 해설자가 직접 책을 읽어주고, 중간 중간 애니메이션 장면도 등장해 살아있는 동화책 같았다. 여기에 아이패드를 움직여 낙하산 떨어뜨리기, 미로 찾기 같은 게임과 노래 따라 부르기, 색칠 놀이 같은 부록들까지 있어 아이패드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고 있었다.
⓶ 아이패드는 '아이폰 게임기 확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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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패드 전자책 비교애플 아이북 '아기곰 푸'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이패드 앱, '토이 스토리' 디지털 북 비교 ⓒ 김시연
아이패드를 쓰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주변에 와이파이(무선랜) 존이나 무선공유기(AP)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당장 집에서는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했고, 사무실 주변에도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은 한정돼 있었다. 3G망을 함께 쓰는 아이폰을 쓸 때는 체감하지 못한 불편함이었다. 그래서 주로 무선공유기가 잡힐 때마다 필요한 앱을 다운받아 써야 했다.
일단 게임은 앱만 다운받아 놓으면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국내 앱 스토어에서 게임 카테고리는 사전 심의 문제로 아직 차단된 상태지만, 아이패드는 일단 현지 계정으로 등록해 접근이 자유로웠다.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 톱 차트를 가득 채운 게임 앱들을 보는 것만으로 색다른 느낌이었다.
▲ 아이패드용 게임들. 왼쪽이 카드게임 ‘더 솔리테르’, 오른쪽이 테니스게임 ‘히트 테니스2’ 2인용 게임 장면. ⓒ 김시연
우선 무료 앱 가운데 상위 20위권에 있는 카드게임 '더 솔리테르', 테니스게임 '히트 테니스2', 미로 핀볼 게임인 '라비린스2 HD 라이트', 블록격파게임인 '브레이크 HD 라이트'를 차례차례 다운 받았다. 'HD' 표시에서 알 수 있듯 기존 아이폰용 게임을 아이패드에 맞게 고화질 버전으로 만든 앱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이패드에서도 기존 아이폰 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화질이 떨어져, 게임 환경에선 실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전용 게임은 화면이 작은 아이폰의 한계를 깨는 한편 멀티 플레이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게 장점이었다. 히트 테니스 같은 경우 넓은 화면을 이용해 2인용 게임도 가능했고, 라비린스는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로 아이폰 등 다른 단말기와 연결해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이밖에 '가드핑거' 같은 소셜 네트워크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마치 자기가 신이 된 것처럼 손가락으로 캐릭터와 작은 행성을 가꿔나가며 주변 다른 사용자들과 교류하는 독특한 온라인 게임이다.
⓷ 아이패드는 '박학다식한 강의 노트'다
▲ 아이패드 강의 노트 애플리케이션 '선드리 노트' ⓒ
아이폰이 휴대용 수첩이라면 아이패드는 대학 노트다. '캘린더'나 '노트', '연락처' 같은 기본 앱들도 아이폰보다 훨씬 널찍널찍했고 활용도도 다양했다. 그런 특성을 반영한 대표적인 앱이 우리말로 '잡학 공책' 격인 '선드리 노트'다. 겉보기엔 일반 노트처럼 단순하지만, 텍스트 뿐 아니라 복잡한 수식이나 공학 기호와 그림, 도표, 사진, 음성 등 멀티미디어 입력이 가능하다. 또 노트를 작성하면서 위키피디아나 구글을 검색하고 직접 링크를 걸 수도 있다.
문제는 텍스트 입력 속도. 아직 터치 자판이 익숙하지 않아 오타가 많이 나긴 했지만 아이폰과 달리 10손가락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장문 입력에도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미국 현지에선 이미 무선 키보드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쓰는 방법도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⓸ 아이패드는 '돈 되는 미디어 뷰어'다
▲ USA투데이 인터넷판과 아이패드 앱, 아이폰 앱을 비교한 모습 ⓒ 김시연
특히 아이패드의 널찍한 화면은 아이폰에서와 달리 '사진 보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특히 목격자란 뜻을 지닌 <더 가디언> 사진 칼럼 '아이위트니스' 속 사진들은 그 백미다. 지구촌 현장을 담은 고화질 사진들은 그대로 갈무리해 아이패드 배경화면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이패드용 신문 앱들의 지면 배치도 단순 목록 나열식이었던 아이폰 앱들과 달리 기존 인터넷판이나 종이신문 편집 형태에 더 가까워졌다. 사진을 키워 시각 효과를 높였고, 광고 배치도 훨씬 자연스럽다.
가장 고마웠던 건 우리 와이파이 환경을 배려한 듯 한 장치들이다. <USA투데이>나 <뉴욕타임스>는 인터넷에 접속해 본 기사들 뿐 아니라 해당 시점에 제공된 다른 기사들과 사진들까지 패키지로 저장해 놓고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기사를 찾아 읽을 수 있게 했다. 미디어 입장에선 온라인의 '속보성' 외에 기존 종이신문 못지않은 '상품성'까지 갖춤으로써 유료화에 훨씬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 <더 가디언> 사진 칼럼 '아이위트니스' ⓒ
아이패드가 넷북까지 몰아낼 수 있을까?
아이패드를 며칠 쓰면서 카메라 기능이 없다거나 '스캔서치' 같은 증강현실 앱을 쓰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새 '미디어 소비 기기'인 아이패드에 적응한 탓도 있지만 카메라처럼 들고 다니며 이리저리 비춰 보기엔 아이폰 정도 크기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미련이 남았던 건 아이패드가 킨들 같은 e북 단말기뿐 아니라 넷북이나 노트북PC까지 대체해 줬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사실 지금 취재 다니는데 노트북PC와 스마트폰이면 충분하다. 아이패드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지난 1월 말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를 손가락으로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도 남 일처럼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애플 마니아'인 고윤환 캘커타커뮤니케이션 대표 생각은 달랐다. "맥북 에어와 아이폰 사이에도 분명 틈새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킨들 산 사람들 속 좀 쓰렸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 e북 단말기의 미래는? ⓒ 김시연
실제 지난 3일 미국 현지에 아이패드가 출시되자마자 하루 만에 30만 대가 팔려나가며 인기를 입증했다. 미국 투자전문회사 파이퍼 제프리(Piper Jaffray)가 아이패드 초기 구매자 448명을 조사했더니 이 가운데 킨들을 갖고 있던 사람은 13%에 불과했지만, 이들 가운데 58%가 앞으로 킨들 대신 아이패드를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또 아이패드 주된 활용 목적에서도 '웹 서핑'이 74%로 가장 많았지만 '독서'도 38%로 이메일(34%), 동영상(26%), 게임/앱(18%) 등을 앞섰다.
지난 1월 초 KT경제경영연구소에서 국내 아이폰 구매자 1400명을 대상으로 아이폰 용도를 조사했을 때 아예 '독서'란 항목 자체가 없었던 걸 감안하면 큰 차이다. 당시에도 '인터넷 이용'이 연령대에 따라 60~74%으로 가장 많았고 '아이팟(음악/동영상)', '이메일/SNS', 'LBS(위치기반서비스)', 게임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아이패드를 직접 사용해본 고윤환 대표는 "이제 e북 만들어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구입한 책을 아이패드에 넣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꺼내 읽을 수 있다는 건 기존 PC가 담보할 수 없었던 개인 소장성 문제를 해소한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운영체제가 4.0으로 업그레이드돼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릴 수 있는 '멀티태스킹' 환경이 갖춰지면 넷북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1주일 남짓 아이패드를 직접 써보고 내린 결론도 비슷했다. 적어도 앞으로 전자책 시장을 기존 'e북 전용 단말기'가 주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제 아무리 전자 잉크 기술을 사용해 종이책 읽는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하지만, 이미 전자책 시장엔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과 융합한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북'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는 그 변화를 담을 수 있지만 킨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 아이패드와 아이폰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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