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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아이들은 어떤 표정 지을까.

[서평] 박범신 에세이 <산다는 것은>

등록|2010.04.24 15:19 수정|2010.04.24 15:19

표지<산다는 것은> ⓒ 한겨레출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옛 얘기만은 아니다. 내 아들보다 더 좋은 대학 진학한 친구 아들을 보면 속이 쓰리고, 내차보다 더 크고 비싼 차 끄는 이 앞에서는 공연히 기죽는

이들도 많다. 과학 기술 문명은 날이 갈수록 발달한다는데 여유는 점점 더 없어지고 갈증도 더해만 간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대학이 살길이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고3 아이들에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그 애들 담임이 되어 야자 감독 하며 <산다는 것을>을 읽는다. 다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의 조급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줄 수 있을까.

몽당연필을 못 쓰는 붓뚜껑에 박아주던 어머니가 그립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어머니는 진실로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있었으나, 대학까지 보낸 내 아이들에게 나는 그것조차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치는 '불황'의 봄이다. (책 속에서)

넘치도록 풍요로운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은 전보다 더한 갈증을 느끼며 산다. 꼭 필요해서 하는 소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강요되는 소비의 부추김과 꼬드김에 넘어가 멀쩡한 걸 버리고 새것을 사들이는 낭비가 판치는 세상. 소비란 명목으로 진행되는 낭비의 대열에서 뒤떨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갈증을 느끼게 된다. 남들보다 더 많이, 남들보다 더 화려한 소비를 꿈꾸며 사는 사람들.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강원도 중소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기를 쓰고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인 서울(In Seoul)을 꿈꾸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로 학원으로 과외로 독서실로 오가면서,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인강을 듣고 EBS 교재에 매달리는 아이들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그들에게 야자 시키며 앉아 <산다는 것을>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산다는 건 무엇일까.

웰빙 웰빙 하다 보니 웰빙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웰빙'을 잃고, 자유 자유 하다 보니 자유 또한 유행의 물결이 되어 길을 잃는다. 대다수가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운 것이 우리 시대의 딜레마다. (책 속에서)

웰빙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웰빙에 목마른 이들이 많고, 자유란 말이 난무하는 사회일수록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치를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법치와는 거리가 먼 이들의 활갯짓이 도드라져 사람들은 이맛살을 찌푸린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세상은 이제 남의 가난이나 불행에 대해선 아무도 분노하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그렇지만 때로 나는 묻는다. '발전'한 것이 맞기는 맞는가. 고통 받았던 과거를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꿈꾸는 것은 어쩌면 꿈이 아니라 천박한 '욕망'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허겁지겁 욕망을 좇다 아우성치며 달려가다가도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애당초 출발했던 그곳으로 돌아가 가난이 오히려 선이라고 말했던 세월을 한번쯤 굽어볼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게 아직도 터무니없이 적을 뿐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책 속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에 매달리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잠시 짬을 내어 이 내용을 읽어주면 어떤 표정 지을까. 수능 문제지에서 잠시 눈을 떼고 산다는 게 무언지 곰곰 생각하기도 할까. 아니면 대학 가는 데 도움 안 되는 글이라 무시하고 다 읽기도 전에 문제지로 눈길 돌릴까. 궁금하다. 정말로.
덧붙이는 글 박범신/한겨레출판/2010.3/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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