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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과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 초등교육과정

등록|2010.04.25 11:36 수정|2010.04.25 11:36

▲ 교과부가 홍보하고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환하고 희망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바뀌겠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교육현장에서 초등교육과정 운영은 80년도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 배희철


2010년 3월 26일은

2010년 3월 26일은 천안함이 좌초된 날로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등교육계에는 소문만 무성하던 초등 월말고사가 부활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날입니다.

초등 월말고사 부활은 대한민국 초등교육과정이 좌초된 것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와 교육의 의무에 따라 국가가 지정한 일을 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너무도 슬픈 일이 동시에 벌어진 날이 3월 26일입니다.

3월 26일, 강원도 춘천시교육청(교육장 허대영) 산하 지촌초등학교(학교장 박상준)에서  월말고사를 실시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월말고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작년에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일제고사를 보도록 강제한 교육감이 있었으니, 2학년에게 월말고사를 보라고 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기자들의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강원도 교육청 담당자는 몇몇 초등학교에서 월말고사가 실시되고 있는 정황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모 방송국 J 기자가 구체적으로 월말고사를 실시하고 있는 학교 이름을 묻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작년 전국 일제고사에서 강원과 함께 1-2등을 다투었던 충북에서도 초등 월말고사가 실시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두 지역 교육감은 이번 6월 2일 실시되는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작년 일제고사 성적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현장은 빠른 속도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판치던 80년도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지역 교육청 장학사들이 학교를 규칙적으로 방문하여 일제고사 준비를 독려하는 것이 장학 컨설팅입니다.

80년대에 교직에 있던 분들이 교장이 되니, 학력 향상 방안이라는 게 결국 월말고사 실시와 아이들 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간혹 나옵니다. 교무실에서 교장은 교사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무슨 반 OOO 이름을 호명합니다.

"OOO 기초 미달된 이유가 뭐지요?"

도대체 교장이 그 아이 이름을 전체 교사에게 알리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 아이 부모 귀에 들어가 창피하다고 느끼고 다른 학교로 전학가라는 묵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건지, 아니면 그 반 교사가 무능하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건지 정말 궁금합니다. 아마 열심히 지도하라는 격려의 말이었겠지요.

정말 학생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월말고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제출하게 합니다. 학생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학교에서 학생의 개인정보가 폭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학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라고 공문이 내려오지만 학교장이 솔선하여 학생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4월 마지막 주입니다. 얼마나 많은 초등학교에서 7월 전국 일제고사를 대비하기 위하여 4월말 고사를 실시할 지 궁금합니다.

교과부, 초등학교 자체 일제고사는 국가교육과정 운영 위반

기자가 교과부와 강원도 교육청에 정보 공개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답변과 교과부 공문에 따르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와 달리 초등학교에서는 교장이 교사들에게 시험을 실시하라고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내신 성적을 산출할 자료를 만들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법정장부인 NEIS(교무업무시스템)에 기록해야만 합니다.

또한 교과부는 공문을 통해 시험 실시는 이야기할 것도 없고, 문제 풀이식 수업을 하는 것도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공문을 이미 시행한 바 있습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행과 관련하여, 각급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여 주시고, 향후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할 계획임을 알려드립니다.

○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타 시험의 성적자료로 활용
   예) 내신(중간고사, 수행평가 등) 반영, 상급학교 배치고사 대체 등
○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를 위해 정기고사 범위 변경
   예) 중3 기말고사 범위를 학업성취도 평가 범위로 동일하게 변경 등
○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를 위한 교육과정 파행 운영
   예) 문제풀이식 수업운영, 평가 미시행 교과 시간을 평가대상 교과로 대체 등

초등 월말고사가 확산되는 까닭은

1. 전국 일제고사에서 성적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 초등교육과정은 활동 중심, 탐구 중심이라 4지 선다형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교과서 문제도 모두 다 주관식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식의 수업을 해야만 합니다. 전국 일제고사는 채점의 효율성을 위해 객관식 4지 선다형 문제가 주를 이루고, 주관식 문제도 이제는 단답형으로 통일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전국 일제고사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확산적인 열린 생각을 독려하는 교육과정과 폐쇄적인 닫힌 생각을 묻는 객관식 4지 선다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교육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래서 교사들은 자조적으로 일제고사가 국가교육과정을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국가교육과정만 잡아먹은 것은 아닙니다. 교원의 교육자적 양심과 전문성도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 OMR카드 작성 연습만 시켜도 반 평균이 올라갑니다. 아동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고3생이 수학능력시험에서 사용하는 OMR카드에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 전국 일제고사에서 초등학생은 OMR카드 답안 작성 연습만 시켜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교사들의 판단에 따르면 논증이 필요 없는 만장일치의 경험칙입니다.

단답형 주관식 문제도 연습을 시키면 효과가 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남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딱 하나의 낱말로,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 월말고사를 실시하면, 아이들은 반 아이들의 성적을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경쟁을 하게 됩니다. 가정에서는 망신스러워서라도 문제지를 구입하거나 학원 수강을 하게 됩니다. 시골지역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방과후학교에서 강제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에 반대를 못하게 됩니다. 이래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사교육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 교사들은 일제고사 대비를 위한 문제에 익숙해지면서, 수업 방식이 변합니다. 자연스럽게 국가교육과정 운영이 아닌 일제고사 대비를 위한 수업을 진행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라는 열린 질문은 사라지고, "이것은 무엇일까요?"라는 닫힌 발문이 늘어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매달 월말고사를 매개로하여 교사도 학원 강사처럼 문제풀이 전문가로 변하고 있습니다.

2. 교장과 장학사가 암묵적으로 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위에 제시한 교과부 공문 내용은 보기 드문 초강경의 처벌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도 감독해야 할 교장이나 장학사가 알고도 처벌을 하지 않습니다.

교장은 교과별 문제지를 구입해서 교사와 학생에게 주고, 장학사는 비밀이라며 보안에 주의하라고 하면서 문제지 CD를 돌리고 있는 판국입니다.

◇ 학교교육과정 운영을 지도 감독해야 할 지역교육청 장학사는 학교교육과정 운영계획서에 학교 자체 일제고사를 실시하겠다고 해도 이를 묵인하고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충북 청주교육청은 옥천교육청의 사례를 모범이라며 독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3. 교원평가에 암묵적으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학습 부진학생을 위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평가에 일제고사 성적을 반영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암묵적으로 학교 평가에, 교원 성과급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일반적인 의견입니다. '팔라우 해외여행'은 그런 맥락에서 2009년에 제시된 가장 환상적인 당근이었습니다.

◇ 작년 가을, 철원의 C초등학교 교장은 교무회의 시간에 "일제고사 성적으로 교사 성과급을 지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는 합니다. 이제 학생의 일제고사 성적은 교사와 교장의 쩐과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국가교육과정을 잡아먹는 월말고사가 확산되는 자체 동력이 생겼습니다.

4. 학교별로 성적을 공개하기 때문입니다.

◇ 2010년 전국 일제고사 성적은 학교별로 성적이 공개됩니다. 아마도 J 신문에 전국의 모든 학교가 성적순으로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32개 지역교육청을 나열한 것으로도 일제고사 쓰나미라는 표현이 나왔던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 이제 전국 일제고사는 학교장의 체면과 쩐과 인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초강수의 불법이 자행될 겁니다. 초등학교 휴식 시간이 5분으로 줄었다는 것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할 겁니다.

◇ 4월 24일 보도된, 의무교육기관인 초등학교에서 퇴학 처분이 내려졌다는 기사는 2010년 아비규환에 빠질 초등교육의 실상을 알리는 불길한 전조 같습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학생이 수업에 방해가 되고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교사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31조(학생의 징계 등) 4항은 의무교육 대상자에게 퇴학처분을 내릴 수 없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 학교 주변 아파트 가격과도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이제 학부모의 압력이 대도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도 이러한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됩니다.

싹트는 패거리 문화

어떤 학교의 모든 교원이 국가교육과정을 파행 운영하였습니다. 초등 월말고사를 실시했습니다. 초등 월말고사가 실시된 날은 고등학교에서 모의고사 실시 후에 그렇듯이 학교 회식이 있을 듯합니다. 융통성 있는 교장이라면 체육 연수까지 포함할 겁니다. 월말고사만 실시하고 학생을 일찍 귀가 시킵니다. 오후에는 교직원 등산을 나섭니다. 하산해서는 회식을 거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동지 의식을, 패거리 의식을 다지게 됩니다.

같은 교대 출신이라는, 같은 교원단체 소속이라는 패거리 의식으로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교육비리가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조직적으로 교육비리가 저질러질지 걱정이 앞섭니다.

22일 '청렴 선진국 실현을 위한 반부패 정책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국민권익위원회 이재오 위원장은 "검사 사건이 터지면서 돈을 주는 더러운 것이 다 드러났고 심지어 교장도 그렇다"고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이재오 위원장은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청렴을 지도 감독해야 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 걸맞게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명예와 쩐과 인사를 위해 초등학생까지 퇴학시키는 이런 아수라를 겪어내면 앞으로  어떤 비리인들 두려울 게 있겠습니까? 이재오 위원장은 교육 비리 사과는 하지만 대책에는 반대하는 분에게 적합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책임도 짊어지고 있습니다.

희망사항

학부모님들이 교육관련 서적을 보며, 아이 미래를 위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육 쇼크"나 "핀란드 교육혁명"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읽어보시면 좋은 책입니다. 연령별로 창의적 인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발달과제가 있습니다. 의지나 태도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 확인하시고 여유 있는 부모가 되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장관은 공문만 시행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감사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언론에 구체적으로 지역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행정 지도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 아닐까요? 국가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국가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국가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국가교육과정이 개판되었다는 것 뻔히 알면서 일제고사 실시하는 건 모순 아닌가요?

교장은 교육비리 척결의지를 스스로 내 놓아야 한다. 교육 비리를 신중하게 조사하라는 주장은 정말 아닙니다. 오히려 일제고사처럼 전수 조사를 하여 청렴한 교장이 누구인지 학부모에게 알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교육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첫 실천이 교장공모제 확대 반대가 아니라 영국 교장처럼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문제 풀이 수업도 하지 말라는 국가의 명령을 왜 불복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학생들 앞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교사들의 실천 속에서 시작됩니다. 침묵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가 교단에 처음 서면서 했던 선서 내용을 음미하고 실천 의지를 다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                                  서            

   본인은 공직자로서 긍지와 보람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서합니다.         

1. 본인은 법령을 준수하고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한다.   

1. 본인은 국민의 편에 서서 정직과 성실로 직무에 전념한다.

1. 본인은 창의적인 노력과 능동적인 자세로 소임을 완수한다.

1. 본인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라도 직무상 알게 된 기밀을 절대로 누설하지 아니한다.

1. 본인은 정의의 실천자로서 부정의 발본에 앞장선다.
덧붙이는 글 학교 현장에 국가공무원은 멸종되어 가고 교장의 사무원들만 넘치고 있는 세태가 기가 막힙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꼴지가 되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자랑스러운 꼴지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재를 위해 교과부에 한 정보공개 요청에서 실망스러웠던 것이 있었습니다. "학력"에 대해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과부가 생각하고 있는 "학력"의 개념을 기사에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학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학력 향상을 외친다. 참 갑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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