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말에도 산 속에는 봄꽃이 흐드러지네
[충북 도계탐사 보완탐사: 제천시 백운면의 배재에서 오두재까지]
제천시 백운면에서 보완탐사를 하게 된 사연
충북 도계탐사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2006년 5월13일 시작했으니 금년이 벌써 5년차이다. 도계탐사는 충북 청원군과 충남 연기군의 경계를 이루는 조천교에서 시작,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 현재 충북 옥천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에 와 있다.
계획대로라면 금년 7월에 출발지인 조천교로 원점 회귀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5년의 도계탐사 중 기상악화 또는 도계 이탈로 인해 탐사하지 못한 곳이 네 군데 있다. 이들을 보완탐사하면 8월에 도계탐사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이들 네 구간의 보완탐사 중 배재-오두재 구간 탐사가 4월24일 진행되었다. 이곳은 2007년 3월10일 탐사를 진행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포기한 구간이다. 당시 대원을 이끌었던 박연수 대장은 더 이상 무리하게 진행을 했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 백운면 덕동리로 하산했다고 한다.
이번 탐사는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배재에서 덕동리 오두재까지 7㎞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고개가 바로 도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배재는 백운면 화당리와 귀래면 운남리를 이어주고, 오두재는 백운면 덕동리와 흥업면 매지리를 이어준다. 배재는 원주시 흥업면, 귀래면과 제천시 백운면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이다.
또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통행하기에도 편리하다. 우리는 화당리의 끝 배재 정상에서 탐사를 시작한다.
배재에 얽힌 이야기
화당리는 서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화당천이 흘러내린다. 그러므로 마을은 화당천을 따라 동서로 형성되어 있다.
화당리는 순 우리말로 꽃댕이다. 꽃댕이라면 이곳에 꽃처럼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은 그 연못을 찾을 수 없지만 옥녀봉, 시루봉, 용마산 등의 이름을 통해 그 존재를 유추할 수는 있다. 옥녀가 그 연못에서 목욕했을 것이고, 용마가 연못을 근거로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당리 사람들은 마을 서쪽 끝에 있는 배재를 뱃재 또는 배티라고 부른다. 뱃재, 배티, 이 지명이 어떻게 생겨난 걸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배가 한자 절 배(拜)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전설이 두 가지다. 하나는 신라 경순왕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조선 단종과 관련이 있다.
경순왕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이 고려(高麗)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넘기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려 명산(名山)을 찾아다니다, 평동리 궁평이 마음에 들어 이궁(離宮)을 짓고 살았다. 그는 화당리 황나절골에 황산사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절을 찾아 예불을 드리곤 했다.
특히 저녁나절 저녁종이 은은하게 울려 퍼질 때면, 뱃재에 올라 남쪽 경주를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후대 사람들이 이 고개에 뱃재 또는 배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천년도 넘는 옛날 얘기가 된다.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550년 전인 1457년 6월22일 노산군으로 격하된 단종은 서울의 화양정(華陽亭)을 떠난다. 단종은 광나루로 가 배를 타고 양평과 여주 땅을 지나 원주의 흥원창에 이른다. 이곳에서 단종은 말을 타고 부론과 귀래를 지나 백운 땅으로 향한다.
단종은 그때까지 비교적 평탄한 길을 지나왔지만, 귀래와 백운을 잇는 고개(해발 480m)에서는 상당히 고생을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이 고개까지 호종하면서 영월로 떠나는 단종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고개가 배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둘 중 더 신빙성이 있는 얘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단종이 유배 중 쉬어갔다는 얘기가 부론면 단강리 단강정에 전해지고, 백운에서 신림을 거쳐 영월 주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청령포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탐사대원들에게 단종에 얽힌 배재 이야기를 하고, 오두재로 이어지는 도계탐사를 시작한다.
높은 산 능선에서 만난 봄꽃들
이른 아침이어선지 아니면 어제 온 비 때문인지 배재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또 기온도 낮은 편이다. 우리는 간단한 체조를 마치고 북쪽 사면으로 탐사를 시작한다. 오늘의 탐사는 745m 뒷산을 지나 최고봉인 984m 십자봉을 오른 뒤 720m 오두재로 하산하게 되어 있다. 745m 뒷산까지는 완만한 경사여서 그런지 산행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중간 중간 야생화와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하며 가서인지 산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표적인 야생화로는 제비꽃, 별꽃, 복수초, 바람꽃이 있다. 제비꽃은 한 마디로 지천이다. 노랑색이 가장 많고 흰색과 보라색도 보인다. 처음 눈에 띈 것이 보라색 제비꽃이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모습이 정말 청초하고 아름답다. 전문가인 윤태동 선생이 보라색 제비꽃만 해도 종류가 6가지나 된다고 한다. 내 눈에는 다 똑 같아 보이는데 잎과 꽃 모양에 따라 다르게 분류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본 것이 별꽃인데 흰색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흰색 꽃 속에 보라색 수술이 꽃잎과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 수술이 아직 나오지 않은 별꽃은 순수한 매력이 있고, 수술이 나온 별꽃은 성숙한 매력이 있다. 남자를 안 여자와 모르는 여자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번 탐사에서 본 꽃 중 비교적 귀한 것이 복수초와 바람꽃이었다. 복수초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알려져 있는데 4월말에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곳 산의 지대가 높아 이제야 꽃을 피우는 것 같다. 노란색으로 정말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봄꽃 중 가장 빨리 피는 꽃들이 노란색인데, 복수초도 그 계열로 볼 수 있다. 처음 꽃잎을 펼칠 때는 황금색인데, 만개를 하면 연노랑이 된다. 또 몇 개의 복수초 꽃이 어울려 주위를 밝게 만든다.
바람꽃은 정말 오래간만에 보았다. 사실 야생 상태의 바람꽃을 본 것은 처음인지도 모른다. 바람꽃은 우리들에게 아네모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네모네라는 꽃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자의 '아네모네' 한 소절을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이슬에 젖은 꽃송이 아네모네 지는데
별빛에 피어나서 쓸쓸히 시들 줄이야.
마음 바쳐 그 사람을 사모하고 있지만
허무한 그 사랑을 달랠 길은 없는가."
'비록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아도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아네모네의 꽃말 때문에, 그런 노래가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번에 야생화 안내를 제대로 해 준 윤태동 선생의 닉네임이 바람꽃이라고 한다. 나는 닉네임에 얽힌 사연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야생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꽃들을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마음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상 표지석을 두 개나 세울 필요가 있나?
이번 도계 탐사 배재-오두재 구간에는 별 이슈가 없다. 이슈라고 하면 산경, 생태, 문화, 마을 분야에서 새롭거나 독특한 것이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야생화라는 생태 환경을 만나, 오히려 재미있는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꽃들 외에도 양지꽃이 보이고,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야생화 서너 가지를 더 볼 수 있었다.
또 족두리풀이라는 독초를 만났는데, 잎과 꽃이 자주와 보라색의 중간이다. 독초라서 그런지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니 족두리풀도 여러 종류인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녀석도 있었다. 도계탐사를 하면서 만난 대표적인 독초에 천남성이 있었는데, 이번 탐사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세 시간쯤 산행을 한 뒤 우리는 이번 탐사의 최고봉인 십자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십자봉, 산봉우리에 붙은 이름 치고는 특이하다. 산 정상에서는 동쪽의 백운면 덕동리와 서쪽의 귀래면 운남리쪽 19번 국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서 꼴불견을 볼 수가 있다. 정상 표지석이 두 개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충북 제천시에서 세웠고, 다른 하나는 강원 원주시에서 세웠다. 이름은 같은 십자봉인데, 높이도 1m 차이가 난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곳에서 표지석을 세웠으면 다른 곳에서 세우지 말든지, 아니면 산 이름의 유래와 전설을 쓰든지. 이번 도계 탐사를 하면서 정상 표지석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 위치에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높이가 틀린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산의 이름이 틀린 경우도 있었다. 표지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좀 더 많이 연구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일이다.
백운면을 관통하는 원서천
십자봉 이후로는 크게 두 개의 봉우리가 남았다. 971m 봉우리와 848m 봉우리다. 971m 봉우리에는 서낭당처럼 돌무더기가 있고, 옆의 팻말에 삼거리라 쓰여 있다. 이곳은 남쪽 배재로 가는 길과 북쪽 오두재로 가는 길 그리고 서쪽 양안치 고개로 가는 길이 갈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탄다. 이곳에서 1시간을 못 가면 오두재에 닿을 수 있다.
오두재에 이르는 동안에도 능선 주변에서 여러 가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제비꽃과 현호색이 가장 많다. 또 소복하게 쌓인 고라니 털과 배설물을 볼 수도 있었다.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자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덕동계곡 지역은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되어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곳 덕동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이 모여 원서천이 되고, 원서천은 운학천과 화당천을 받아들여 백운면 지역을 남북으로 흘러간다. 원서천은 충주시 산척면에 이르러 제천천과 합류하여 충주호로 흘러 들어간다. 원서천이라는 하천 이름은 백운면의 옛 이름인 원서면에서 나왔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백운면이 되었으나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오두재에서 400m를 내려오면 산림청에서 만든 임도가 나타난다. 이 임도는 북쪽으로 백운산 아래까지, 남쪽으로 십자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임도가 개설된 것은 2004년이다. 산불 등에 대비하고 숲 가꾸기 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6년쯤 지나서인지 임도 주변의 삼림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임도 주변으로는 가로수 겸 해서 산수유를 심었는데, 노란 산수유꽃이 아직도 한창이다. 올해는 봄이 늦어 4월말에도 산수유 꽃을 볼 수 있다. 또 조림한 소나무, 전나무 등도 보인다. 전나무는 우리 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수종으로 특별히 심은 것 같다. 이번 도계 탐사는 이래저래 꽃과 나무 중심의 생태 탐사가 되었다. 문화와 문화유산에 생태를 더 하면, 재미가 두 배 세 배 된다는 것을 차츰 실감하고 있다.
▲ 제천시 백운면 배재-오두재 구간 ⓒ 이상기
▲ 충북쪽 표지판 ⓒ 이상기
충북 도계탐사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2006년 5월13일 시작했으니 금년이 벌써 5년차이다. 도계탐사는 충북 청원군과 충남 연기군의 경계를 이루는 조천교에서 시작,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 현재 충북 옥천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에 와 있다.
계획대로라면 금년 7월에 출발지인 조천교로 원점 회귀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5년의 도계탐사 중 기상악화 또는 도계 이탈로 인해 탐사하지 못한 곳이 네 군데 있다. 이들을 보완탐사하면 8월에 도계탐사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이들 네 구간의 보완탐사 중 배재-오두재 구간 탐사가 4월24일 진행되었다. 이곳은 2007년 3월10일 탐사를 진행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포기한 구간이다. 당시 대원을 이끌었던 박연수 대장은 더 이상 무리하게 진행을 했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 백운면 덕동리로 하산했다고 한다.
▲ 강원쪽 표지판 ⓒ 이상기
이번 탐사는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배재에서 덕동리 오두재까지 7㎞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고개가 바로 도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배재는 백운면 화당리와 귀래면 운남리를 이어주고, 오두재는 백운면 덕동리와 흥업면 매지리를 이어준다. 배재는 원주시 흥업면, 귀래면과 제천시 백운면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이다.
또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통행하기에도 편리하다. 우리는 화당리의 끝 배재 정상에서 탐사를 시작한다.
배재에 얽힌 이야기
화당리는 서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화당천이 흘러내린다. 그러므로 마을은 화당천을 따라 동서로 형성되어 있다.
화당리는 순 우리말로 꽃댕이다. 꽃댕이라면 이곳에 꽃처럼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은 그 연못을 찾을 수 없지만 옥녀봉, 시루봉, 용마산 등의 이름을 통해 그 존재를 유추할 수는 있다. 옥녀가 그 연못에서 목욕했을 것이고, 용마가 연못을 근거로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 경기도 연천에 있는 경순왕릉 ⓒ 이상기
화당리 사람들은 마을 서쪽 끝에 있는 배재를 뱃재 또는 배티라고 부른다. 뱃재, 배티, 이 지명이 어떻게 생겨난 걸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배가 한자 절 배(拜)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전설이 두 가지다. 하나는 신라 경순왕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조선 단종과 관련이 있다.
경순왕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이 고려(高麗)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넘기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려 명산(名山)을 찾아다니다, 평동리 궁평이 마음에 들어 이궁(離宮)을 짓고 살았다. 그는 화당리 황나절골에 황산사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절을 찾아 예불을 드리곤 했다.
특히 저녁나절 저녁종이 은은하게 울려 퍼질 때면, 뱃재에 올라 남쪽 경주를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후대 사람들이 이 고개에 뱃재 또는 배티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천년도 넘는 옛날 얘기가 된다.
▲ 단강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느티나무: 안내판에는 수령 600년으로 단종대왕이 영월로 유배갈 때 쉬어갔다고 적혀 있다. ⓒ 이상기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550년 전인 1457년 6월22일 노산군으로 격하된 단종은 서울의 화양정(華陽亭)을 떠난다. 단종은 광나루로 가 배를 타고 양평과 여주 땅을 지나 원주의 흥원창에 이른다. 이곳에서 단종은 말을 타고 부론과 귀래를 지나 백운 땅으로 향한다.
단종은 그때까지 비교적 평탄한 길을 지나왔지만, 귀래와 백운을 잇는 고개(해발 480m)에서는 상당히 고생을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이 고개까지 호종하면서 영월로 떠나는 단종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고개가 배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둘 중 더 신빙성이 있는 얘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단종이 유배 중 쉬어갔다는 얘기가 부론면 단강리 단강정에 전해지고, 백운에서 신림을 거쳐 영월 주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청령포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탐사대원들에게 단종에 얽힌 배재 이야기를 하고, 오두재로 이어지는 도계탐사를 시작한다.
높은 산 능선에서 만난 봄꽃들
▲ 제비꽃 ⓒ 이상기
이른 아침이어선지 아니면 어제 온 비 때문인지 배재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또 기온도 낮은 편이다. 우리는 간단한 체조를 마치고 북쪽 사면으로 탐사를 시작한다. 오늘의 탐사는 745m 뒷산을 지나 최고봉인 984m 십자봉을 오른 뒤 720m 오두재로 하산하게 되어 있다. 745m 뒷산까지는 완만한 경사여서 그런지 산행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중간 중간 야생화와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하며 가서인지 산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표적인 야생화로는 제비꽃, 별꽃, 복수초, 바람꽃이 있다. 제비꽃은 한 마디로 지천이다. 노랑색이 가장 많고 흰색과 보라색도 보인다. 처음 눈에 띈 것이 보라색 제비꽃이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모습이 정말 청초하고 아름답다. 전문가인 윤태동 선생이 보라색 제비꽃만 해도 종류가 6가지나 된다고 한다. 내 눈에는 다 똑 같아 보이는데 잎과 꽃 모양에 따라 다르게 분류된다는 것이다.
▲ 별꽃 ⓒ 이상기
다음으로 본 것이 별꽃인데 흰색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흰색 꽃 속에 보라색 수술이 꽃잎과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 수술이 아직 나오지 않은 별꽃은 순수한 매력이 있고, 수술이 나온 별꽃은 성숙한 매력이 있다. 남자를 안 여자와 모르는 여자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번 탐사에서 본 꽃 중 비교적 귀한 것이 복수초와 바람꽃이었다. 복수초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알려져 있는데 4월말에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곳 산의 지대가 높아 이제야 꽃을 피우는 것 같다. 노란색으로 정말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봄꽃 중 가장 빨리 피는 꽃들이 노란색인데, 복수초도 그 계열로 볼 수 있다. 처음 꽃잎을 펼칠 때는 황금색인데, 만개를 하면 연노랑이 된다. 또 몇 개의 복수초 꽃이 어울려 주위를 밝게 만든다.
▲ 복수초 ⓒ 이상기
바람꽃은 정말 오래간만에 보았다. 사실 야생 상태의 바람꽃을 본 것은 처음인지도 모른다. 바람꽃은 우리들에게 아네모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네모네라는 꽃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자의 '아네모네' 한 소절을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이슬에 젖은 꽃송이 아네모네 지는데
별빛에 피어나서 쓸쓸히 시들 줄이야.
마음 바쳐 그 사람을 사모하고 있지만
허무한 그 사랑을 달랠 길은 없는가."
▲ 아네모네로 불리는 바람꽃 ⓒ 이상기
▲ 바람꽃 ⓒ 이상기
'비록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아도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아네모네의 꽃말 때문에, 그런 노래가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번에 야생화 안내를 제대로 해 준 윤태동 선생의 닉네임이 바람꽃이라고 한다. 나는 닉네임에 얽힌 사연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야생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꽃들을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마음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상 표지석을 두 개나 세울 필요가 있나?
▲ 족두리풀 ⓒ 이상기
이번 도계 탐사 배재-오두재 구간에는 별 이슈가 없다. 이슈라고 하면 산경, 생태, 문화, 마을 분야에서 새롭거나 독특한 것이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야생화라는 생태 환경을 만나, 오히려 재미있는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꽃들 외에도 양지꽃이 보이고,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야생화 서너 가지를 더 볼 수 있었다.
또 족두리풀이라는 독초를 만났는데, 잎과 꽃이 자주와 보라색의 중간이다. 독초라서 그런지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니 족두리풀도 여러 종류인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녀석도 있었다. 도계탐사를 하면서 만난 대표적인 독초에 천남성이 있었는데, 이번 탐사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 십자봉의 탐사대원들 ⓒ 이상기
세 시간쯤 산행을 한 뒤 우리는 이번 탐사의 최고봉인 십자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십자봉, 산봉우리에 붙은 이름 치고는 특이하다. 산 정상에서는 동쪽의 백운면 덕동리와 서쪽의 귀래면 운남리쪽 19번 국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서 꼴불견을 볼 수가 있다. 정상 표지석이 두 개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충북 제천시에서 세웠고, 다른 하나는 강원 원주시에서 세웠다. 이름은 같은 십자봉인데, 높이도 1m 차이가 난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곳에서 표지석을 세웠으면 다른 곳에서 세우지 말든지, 아니면 산 이름의 유래와 전설을 쓰든지. 이번 도계 탐사를 하면서 정상 표지석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 위치에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높이가 틀린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산의 이름이 틀린 경우도 있었다. 표지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좀 더 많이 연구하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일이다.
백운면을 관통하는 원서천
▲ 오두재 ⓒ 이상기
십자봉 이후로는 크게 두 개의 봉우리가 남았다. 971m 봉우리와 848m 봉우리다. 971m 봉우리에는 서낭당처럼 돌무더기가 있고, 옆의 팻말에 삼거리라 쓰여 있다. 이곳은 남쪽 배재로 가는 길과 북쪽 오두재로 가는 길 그리고 서쪽 양안치 고개로 가는 길이 갈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탄다. 이곳에서 1시간을 못 가면 오두재에 닿을 수 있다.
오두재에 이르는 동안에도 능선 주변에서 여러 가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제비꽃과 현호색이 가장 많다. 또 소복하게 쌓인 고라니 털과 배설물을 볼 수도 있었다.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자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덕동계곡 지역은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되어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 원서천 상류인 덕동계곡 ⓒ 이상기
이곳 덕동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이 모여 원서천이 되고, 원서천은 운학천과 화당천을 받아들여 백운면 지역을 남북으로 흘러간다. 원서천은 충주시 산척면에 이르러 제천천과 합류하여 충주호로 흘러 들어간다. 원서천이라는 하천 이름은 백운면의 옛 이름인 원서면에서 나왔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백운면이 되었으나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오두재에서 400m를 내려오면 산림청에서 만든 임도가 나타난다. 이 임도는 북쪽으로 백운산 아래까지, 남쪽으로 십자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임도가 개설된 것은 2004년이다. 산불 등에 대비하고 숲 가꾸기 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6년쯤 지나서인지 임도 주변의 삼림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임도 주변으로는 가로수 겸 해서 산수유를 심었는데, 노란 산수유꽃이 아직도 한창이다. 올해는 봄이 늦어 4월말에도 산수유 꽃을 볼 수 있다. 또 조림한 소나무, 전나무 등도 보인다. 전나무는 우리 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수종으로 특별히 심은 것 같다. 이번 도계 탐사는 이래저래 꽃과 나무 중심의 생태 탐사가 되었다. 문화와 문화유산에 생태를 더 하면, 재미가 두 배 세 배 된다는 것을 차츰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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