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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서 다시 만난 노무현

등록|2010.04.27 11:15 수정|2010.04.27 11:15

▲ 부엉이 바위 아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 오문수




"담배 있나?"

이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담배 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싫어한다. 천식을 앓고 나서는 10미터쯤 떨어져서도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맡고 나면 싫기도 하지만 때론 미안하기도 하다. 담배는 일종의 기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담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담배 마니아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냄새가 나면 머리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걸 어쩌랴.

특히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면 나는 웃으며 바가지를 긁는다. "야이, 친구야! 환경운동을 한다면서 그렇게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해?" 담배의 해독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친구들이고 몇 번이나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안됐다고 하소연이다. 요즘은 담배 피우는 사람은 '공적'이다. 화장실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 어느 네티즌이 그린 '담배 있나?'의 그림. 네 마디 속에 오만가지 말이 들어있다 ⓒ 오문수



나는 담배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피워도 호기심이 나질 않았다. 사회에서 담배를 배운 적이 없어도 군대 가면 배운다는 군대 시절에도 담배 대신 건빵을 먹으며 담배는 아예 손 안 대는 것으로 치부하며 살았다. 부모가 담배 피는 것을 못 봤고 전혀 호기심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 시절 영어 연극에 주연으로 발탁돼 담배를 배우게 됐다. 첫 장면에 담배를, 그것도 파이프 담배를 물고 나와야 하니 그 고역은 말할 수 없었다. 추운 날 콜록콜록하며 담배를 배우느라 몸살이 났고 막상 연극을 하는 날은 목이 쉬고 떨려 약을 먹고 공연을 했던 생각이 난다. 그 뒤로 2년 정도 담배를 피웠지만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는지 두드러기가 나 아예 끊어버렸다.

내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이웃집에 살던 총각이 철로에서 자살했다. 온 시골 동네가 난리가 났다. 그 총각 아버지는 말을 잃었다. 그런데 2년 후 큰 아들이 똑같이 자살했다. 얼마 되지 않아 착하고 상냥하던 큰 며느리가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날 이후로 두 자식과 며느리를 잃은 그 어른은 말을 잃고 담배만 피웠다. 담배가 무슨 맛인지 모르지만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애꿎은 담배만 피던 그 어른의 심정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어려서 자살의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두 자식과 며느리가 떠난 그 집의 어른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동네에서는 화병이라는 말만 돌았다. 노대통령 마음이 그랬을까?
  

▲ 부엉이 바위에 올라가는 길 옆에는 애기똥풀이 널려있다. 무좀에 특효약이라고 한다. ⓒ 오문수



▲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는 길에 누워있는 마애불. 마지막 가는 길에 이 마애불을 꿈꿨을까? ⓒ 오문수



일행과 함께 봉하마을 전시관에 갔다. 거기서 한 네티즌이 그려놓은 그림 하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엉이 바위 위에서 말풍선 속에 씌어진 말. "담배 있나?"

가슴이 찡했다. 싫지가 않았다. 네 마디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오만가지 뜻이 숨겨져 있는 네 마디. 청문회 당시 권력자에게는 수십 억을 갖다 바치면서도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주지 않던 사장을 몰아붙이던 기개. 삼당야합을 비판하며 지금도 감히 어느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몸부림치던 그 분. 부산에서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몇 번이나 민주당 간판을 걸고 선거판에 뛰어든 바보!

이 바보가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우리 정치사에 이렇게 순수함을 간직한 바보가 또 있었던가? 퇴임 후 시골에 내려가 뒷자리에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탄 채 논둑길을 돌아다니던 권력자가 있었던가?

정직과 청렴결백을 내세우며 민주화와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던 그에게 형님의 뇌물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국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부끄러움. 노 대통령에게 세상은 어디에도 쉴 곳이 없는 가시밭길이었다. 해답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길밖에.

▲ 모 언론사와 한 나라당 국회의원이 아방궁이라고 불렀던 노무현 전 대통령사저 ⓒ 오문수



▲ 퇴임해 손자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이런 소박한 대통령을 다시 볼 수 있을까? ⓒ 오문수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그렇다. 자신 때문에  비서관과 후원자들까지도 조사를 받고 부인과 아들까지 굴욕을 당하는 세상은 치욕뿐이었다. 노대통령을 모셨던 모 비서관의 얘기로는 "청와대 근무 시절 좋은 보직을 달라고 그렇게 청탁하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변하더라. 참 몹쓸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죽기 전 들렀다는 정토사 뒤편에는 사자바위가 있다. 사자바위에서 봉하마을과 생가를 봤다. 어느 메이저 신문과 한나라당 모 의원이 말이 생각난다. "노 대통령이 퇴임해 아방궁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그 후 언론은 검증도 안한 채 '아방궁'이란 말로 연일 포화를 퍼부었다. 메이저 언론이 좋긴 좋은가 보다. 그런데 시골 중에서도 깡촌인  봉하마을의 땅값은 얼마나 될까? 거기에 서재와 경호원이 살 집과 창고를 짓는 게 아방궁?     

베이컨의 4대 우상에 '시장의 우상'이 있다.  보는 기사의 관점에 따라서 진실이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신문사들이 쓰는 말이나 문장이 한 신문을 주로 읽는 독자에게는 진실로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노암 촘스키는 "민주 사회의 의식통제에 있어,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매스미디어가 모든 공중의제를 설정하고, 역사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며, 언론의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딴 데로 돌려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언론이 바로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방문객이 쓴 글이다.

"사람이 정직하고 착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고 당신이 떠났나 봅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편안히 쉬십시오. 우리에겐 언제나 당신이 필요합니다. 부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뵙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 부엉이 바위 아래에 기념관을 짓기 위해 놓여있는 돌들에 돌탑이 가득하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쌓아 놓은 탑이다. ⓒ 오문수



부엉이 바위 아래에는 기념관을 짓기 위해 쌓아둔 돌들이 있다. 거의 모든 돌들 위에는 작은 돌탑이 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이면 거의 만명 정도가 찾아온다는 사람들이 쌓은 기원 탑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 묘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은 적이 있는가. 보통 돌탑을 쌓는 이유가 가슴속에 지은 소원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한다. 합장하고 부엉이 바위를 쳐다보며 경건히 고개 숙인 사람들 소원이 이루어지길 빈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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