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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브라궁전의 추억

스페인 세계문화탐방

등록|2010.04.27 16:17 수정|2010.04.27 16:17
2010년 2월 겨울방학의 어느 날, 6년 만에 다시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찾았다.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코르도바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2시 30분쯤 그라나다로 향했다. 코르도바에서 그라나다까지 약 200km 거리로, 시간상은 2~3시간 정도 걸린다.

드디어 오후 3시경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 도착했다. 그라나다의 언덕 위에 알람브라 궁전이 자리 잡고 있다. '알람브라(Alhambra)'는 붉은 성 또는 붉은 요새라는 뜻을 지닌다. 이 궁전은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흙을 사용하여 궁전의 외벽을 꾸밈으로써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석양의 알람브라궁전의 아름다운 모습- 헤네랄리페에서는 알람브라 궁전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 박태상


알람브라 궁전은 13세기에 착공하여 무려 260여 년이 걸려서 완공되었다. 면적은 총 1만4000㎡에 이르고 성벽 길이만 해도 약 2km에 달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교도들이 건축한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다. 코란은 인간의 육체를 형상화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알람브라 궁전에는 인간의 형상에 대한 묘사가 없다. 다만 섬세한 세공으로 기하학에 기초한 곡선으로 다양한 자연의 사물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멕시코의 비평가 프란시스코 데 이카사는 그의 서정시에서 "그라나다에서 장님이 되는 것만큼 더 큰 형벌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도로 예찬하였다.  알람브라궁전의 정원을 거닐다보면, 타레가의 기타연주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이 어디선가 흘러 나와 아름다운 선율이 요정처럼 숲 속을 헤엄쳐 다닌다.       

알람브라 궁전의 뜰에 전시되어 있는 대포 - 카를로스 V세 궁전 옆에 대포가 있어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만큼 그라나다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교의 나사리 왕조와 북부로부터 남하해오던 가톨릭왕조간의 전쟁이 치열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 박태상


알람브라 궁전은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중세기 이슬람 궁전이다. 알람브라 요새는 당시 두 가지 유형의 건축 전통 중 하나를 대표한다. 하나는 지중해에서 유래한 보통 농장에 둘러싸인 시골에 위치하여 개인 저택으로 사용되던 귀족 전통으로 후기 로마 저택들이 이 유형이다.

처음에는 방어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으나 나중에 여러 다른 기능들이 추가되어 최종적으로 건축유형의 하나가 된 경우이다. 다른 하나의 전통은 큰 규모의 도시 중심부 안에 왕실 도시가 위치한 유형으로 알레포, 예루살렘 또는 카이로와 같은 시타델(스페인어로 Ciudadela)을 의미한다. 알람브라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시타델' 도시에 속한다. 

알람브라 궁전은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즉 알카사바(Alcazaba, 요새), 사자궁전(Palacio de los Leones), 카를로스 V세 궁전 그리고 헤네랄리페(Generalife)로 구성되어 있다. 언덕 서쪽에 위치한 알카사바는 알람브라 시타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이 요새 건물은 왕의 근위병들과 군대를 위한 구역이었다. 불규칙한 거의 삼각형의 평면 건물로 북쪽과 남쪽에 있는 면이 가장 길다. 오메나헤, 께브라다, 아다르게로 및 벨라 탑은 나사리 시대에 세워져 상당히 엄숙하고 구조적인 감각을 특징으로 하는 알모하드 군사용 건축의 건설기술을 볼 수 있다. 원래 알람브라 궁전은 6개의 궁전과 2개 탑을 수용하지만, 오늘날은 각각 유수프 I세와 무하마드 V세의 작품인  꼬마레스 궁전과 사자의 궁전만이 보존되어 있다. 

카를로스 V세궁전의 원형 회랑- 회랑은 1층의 기둥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중정에서 투우 등이 개최되었다고 하나, 현재는 매년 열리는 그라나다 국제 음악 무용제의 대회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박태상


우선 카를로스 V세 궁전부터 들어갔다. 입구를 들어서자 말자 큰 원형 건물이 나타났다. 소위 원형궁전이다. 카를로스 V세가 왕비와 함께 지낼 여름별장을 짓다가 자금부족으로 중단된 채 방치되었다고 한다.

메수아르 방의 천장과 벽면의 문양 - 알함브라 궁전의 관람은 왕의 집무실이었던 메수아르방(Sala del Mexuar)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방에서 우리 일행 모두는 벽면과 천장에 장식된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과 석회 세공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다. ⓒ 박태상


카를로스 V세 궁전을 벗어나면 바로 왕궁 관람으로 접어들게 된다. 알람브라 궁전 관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앞서 카를로스 V세 궁전이 그리스도교의 문화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면, 이에 비해 왕궁은 이슬람교의 문화양식을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왕궁은 무하마드 V세의 두 번째 통치기간 중에 건설되었다. 왕궁(Palacio Real)의 중심부에는 사자의 안뜰이라 불리고 있는 417㎡의 직사각형으로  사면에 포르티코가 있는 대규모 중정이 있는데, 안뜰 중앙에 있는 12마리 사자로 장식된 분수 때문에 '사자의 중정'(Palacio de los Leones)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전체 회랑은 124개의 하얀 대리석으로 덮인 기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 기둥들은 매우 복합적으로 배분되어 있어서 마치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2~4개의 그룹으로 조합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중심으로 하여 완전히 다른 용도의 4개의 건물인 모사라베스방(Sala de los Mocárabes, 서쪽), 아벤세라헤스 방(Sala de Abencerrajes, 남쪽), 왕의 방(Sala de los Reyes, 동쪽) 그리고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 북쪽)이 총체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건축 구조적 조화미를 느끼게 해준다.

관람은 왕의 집무실이었던 메수아르방(Sala del Mexuar)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방을 들어서는 관람객 모두는 벽면과 천장에 장식된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과 석회 세공의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첫 방에서 이미 눈이 황홀하여 정신이 혼미해졌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왕의 집무실의 문양 장식은 후세에 기독교시대에 일부 교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을 준다. 방의 북쪽 안에는 벽을 석회 세공으로 마감한 예배실이 있다.

메수아르방을 모두 둘러보면, 바로 아라야네스 중정(Patoo de los Anayanes)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안뜰은 남북 35m, 동서 7m의 커다란 직사각형의 연못 양 옆에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 있어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관광객 대부분이 뒤엉켜 사진촬영을 하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연못을 바라보면, 더욱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정면에 가늘고 우아한 석주가 지탱하는 7개의 아치, 그 앞에 붉게 빛나는 높이 45m의 코마레스 탑(Torre de Comares), 그리고 탑 위로 푸른 안달루시아의 맑은 하늘과 차가운 겨울 바람이 잔잔하게 아라야네스 연못을 여울지게 하는 풍경이 가히 환상적이다.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 los Anayanes)-이 안뜰은 남북 35m, 동서 7m의 커다란 직사각형의 연못 양 옆에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 있어 이러한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 박태상


바르카의 방(Sala de le Barca)을 건너 코마레스탑을 지나치면, '대사의 방(Salon de Embaladores)'으로 접어든다. 코마레스탑을 지나자 말자 바로 장대한 홀이 나오는데, 왕궁에서 가장 넓은, 한 면이 11m인 정사각형의 방으로 여러 나라 사절들의 알현 등 왕국의 공식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천장의 상감세공, 벽의 석회세공,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슬레호(그림 타일)는 물론 바닥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기 짝이 없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거대한 파노라마에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아울러 코마레스탑의 동·북·서쪽은 발코니로 구성되어 있어 왕이 통치하고 있던 사크라몬테 언덕이나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엇 무엇해도 왕궁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사자의 중정(Patio Los Leones)'이다. 정원과 정원을 에워싼 몇 개의 방은 왕의 사적인 공간인 할렘(Harem)으로 왕 이외의 남성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이 공간을 통칭하여 '사자의 궁전'이라고 부른다. 정원은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둥머리를 아치로 연결한 모든 벽면에는 정교하고 수려한 석회세공이 촘촘히 입혀져 있다. 정원의 중앙에는 정원의 이름이 유래된 12마리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대형 원형분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자의 정원 남쪽에는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jes)의 방', 북쪽에는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이 있다. 각각 둥근 천장에는 모카라베(Macarabe)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 모카라베란 천장을 뒤덮은 무수한 종유석 모양의 복잡한 장식을 말한다. 정원의 동쪽에는 천장에 10인의 왕이 묘사된 '왕의 방(Sala de Los Reyes)'이 있다. 왕의 방의 내부에는 몇 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는데 역대 왕들의 침실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자의 궁전을 관람하고 나면, 바로 '파르탈 정원(Jardínes del Partal)'으로 나아가게 된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연못에 '귀부인의 탑(Torre de las Damas)'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곳에서 다음으로 볼 곳은 두 자매의 방 북쪽, '알히메세스의 방(Sala de los Allimeces)'에 있는 '린다라하의 출창(Mirador de Lindaraja)'이다. 출창에서 린다라하의 정원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뒤쪽의 모카라베나 아슬레호 쪽으로 환상적인 문양이 장식된 천장과 벽을 바라다보는 것이 더욱 즐거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만큼 아라비아양식은 우리들에게 이국정취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 사자의 정원 남쪽에는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jes)의 방’, 북쪽에는 ‘두 자매의 방(Sala de las Dos Hermanas)'이 있다. 각각 둥근 천장에는 모카라베(Macarabe)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 모카라베란 천장을 뒤덮은 무수한 종유석 모양의 복잡한 장식을 말한다. ⓒ 박태상


어빙의 방(Habitaciones de Irving) -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1783 ~ 1859)은 ?알람브라의 전설?을 집필함으로써 그 당시 거의 폐궁으로 방치되어 있던 궁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재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 박태상


19세기에 복구 작업을 통해 선명한 색채를 되찾은 왕의 욕실에 잠시 눈을 둔 후 북쪽 가장자리에 있는 '어빙의 방(Habitaciones de Irving)'으로 향했다.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1783~1859)은 <알람브라의 전설>을 집필함으로써 그 당시 거의 폐궁으로 방치되어 도둑들과 노숙자들의 주거지로 슬럼화 되어 있던 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재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어빙은  1826년부터 3년 동안 마드리드의 미국공사관에 근무하면서 에스파냐 문화를 연구하고, <알람브라 전설 The Alhambra>(1832)과 그 밖의 책을 출판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어빙은 다시 1831년, 태수의 허락을 얻어 알람브라 궁에 머물면서  여왕의 규방에서 묵고 사자의 정원에서 점심을 먹는 등 낭만적 사치를 즐겼다. 

작가 어빙이 알람브라에 머물고 있을 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준 착한 하녀 안토니아와 그녀의 조카들이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 중에는 특히 수다쟁이인 '알람브라의 아들' 마테오 히메네스도 있었다. 유난스러운 넉살로 어빙의 여행 안내자이자 가이드·경호원·역사문헌에 관한 시종 역할을 꿰찬 그는 온갖 전설과 설화들을 그에게 실어 날랐다. 그가 전해준 설화와 이웃의 이야기가 덧보태져  익살스런 책 <알람브라>로 탄생했던 것이다.

알카사바(Alcazaba, 요새) - 이미 9세기부터 이곳에 있었던 요새를 나사리왕조를 개창한 무하마드 I세가 현재의 규모로 정비, 확장하였다. 그라나다의 나사리 왕조가 나름대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천연의 요새가 구축되어 있어서 방어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전성기 때는 24개 탑과 군인들의 숙소, 창고, 터널 그리고 목욕탕까지 갖추고 있었던 견고한 성채였으나 지금은 그 때의 강건한 왕국의 흔적만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 박태상


망루로도 쓰이는 거대한 무어식 사각탑인 '정의의 문'은 알람브라로 들어서는 입구인데, 이곳에 얽힌 풍성한 이야기는 어빙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설화에 따르면, 정의의 문은 알람브라가 지어지기 전에 이미 있었다.

수백 년 전 그라나다를 다스리던 아벤 하부즈 왕과 늙은 점성술사는 아름다운 고트족의 공주를 사이에 두고 다투게 되었는데, 점성술사는 자신의 마술에 계책을 더하여 왕으로부터 공주를 납치하였다. 그리하여 정의의 문 지하, 마술로 봉해진 동굴에서는 지금도 아름다운 공주의 리라 소리에 맞춰 꾸벅꾸벅 조는 점성술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공주의 리라 소리는 사람들이 잠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문 앞에서 보초를 서는 병사들은 근무지에서 조용히 존다. 어빙에 따르면 이곳은 "기독교 세계를 통틀어 가장 졸음이 많이 오는 군주둔지"인데, 그 배후에는 이러한 마력의 힘이 작용했던 것이다.

헤네랄리페(Generalife)의 수로 분수대 앞에 선 필자-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물을 적절히 이용하고 왕실가족들의 전원주택의 용도로 활용한 것이 헤네랄리페의 특징이다. 따라서 분수, 수로, 연못이 아름다운 것이 이 별궁의 특장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아세키아 중정(Patio de la AceQuia)'이다. 아세키아란 ’수로‘라는 뜻이다. ⓒ 박태상


어빙의 방을 끝으로 왕궁에 대한 스케치를 마치고 알카사바(Alcazaba, 요새)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니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우기임에도 유럽의 날씨는 예측불가라는 말이 실감났다. 

언덕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 요새는 알람브라 시타델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이미 9세기부터 이곳에 있었던 요새를 나사리왕조를 개창한 무하마드 I세가 현재의 규모로 정비, 확장하였다. 그 이유는 주변의 이슬람왕국들이 북쪽으로부터 남하하는 가톨릭왕국들에 의해 하나하나씩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라나다의 나사리 왕조가 나름대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천연의 요새가 구축되어 있어서 방어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전성기 때는 24개 탑과 군인들의 숙소, 찬고, 터널 그리고 목욕탕까지 갖추고 있었던 견고한 성채였으나 지금은 그 때의 강건한 왕국의 흔적만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요새의 옥상에 위치한 벨라탑(Torre de Vela)에서의 전망이 대장관인데, 알바이신 지역, 사크로몬테 언덕, 그라나다 시내 다운타운,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헤네랄리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알람브라궁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인기 사진촬영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요새 방문을 마치니 벌써 시계가 오후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계단을 거의 뛰다시피 내려가 마지막 방문지인 헤네랄리페(Generalife)로 발걸음을 옮겼다. 헤네랄리페는 14세기에 건축된 무하마드 III의 여름별궁으로 왕궁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헤네랄리페는 왕실 가족의 휴식과 음식 제공을 위해 사용되던 정원과 밭으로 둘러싸인 전원주택 또는 왕실농장의 개념을 지녔다. 따라서 분수, 수로, 연못이 아름다운 것이 이 별궁의 특장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아세키아 중정(Patio de la AceQuia)'이다. 아세키아란 '수로'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중정에는 전체 길이 50m 정도의 세로형 정원 중앙에 기다란 수로를 설치하여 좌우에 많은 분수를 간직하고 있어 사진촬영 장소로 매우 인기가 있다.

헤네랄리페에는 시트론나무, 배롱이 나무, 오렌지 그리고 장미 등이 조화롭게 심어져 있어 봄, 여름에는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아마도 스페인이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인 6200만 명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이 곳 알함브라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무- 나사리 왕조의 늙은 왕에게는 왕비와 후궁 5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젊은 후궁이 근위대 장교와 몰래 통정을 하였다. 후궁은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귀족의 딸이었는데, 왕은 용서를 해준다고 말했다. 얼마 후 왕은 헤네랄리페 별궁에서 파티를 개최하여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귀족 청년 24 ~ 30명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는 결국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근위대원을 풀어 청년들의 목을 모두 베어 분수 앞에 걸어놓았다. 그 핏물은 3일간이나 씻겨 내려가 흘러내렸다고 전해진다. ⓒ 박태상


관람을 마치고 알람브라궁전을 빠져나오니 지쳐서 기운이 쇠락함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어디선가 타레가의 기타 연주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와 원기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것이 비록 환청일지라도 분명 발걸음을 힘차게 해주었다. 아세키아 안뜰의 초록물결과 분수대의 물방울이 요술의 힘을 발휘했던 모양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에 다시 플라멩코 춤(Flamenco)을 감상하러 나갈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분명 아세키아 연못의 요정들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떠나면서 바라다본 '석양에 비친 알람브라 궁전'도 앙드레 김 버전으로 내뱉는다면, 가히 "환타스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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