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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까?' 쉽게 내뱉지 마시라

제주 귀농 50일, 접붙인 귤나무 새싹처럼 희망아 와라

등록|2010.05.22 17:05 수정|2010.05.22 17:10

귀농교육 5차귀농교육 받고 있다. 제주 서귀포에 있는 농업기술원에서. ⓒ 김영남


"에이, 그냥 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 볼까?"

울산에 살 때 많은 직장인으로부터 너무도 많이 들어본 말이다. 나도 그런 말 쉽게 내뱉은 사람 중 하나였다. 지난 2월 말경 사전 답사차 제주도에 왔었고 그 후 4월 2일 무작정 제주도로 와 버렸다. 느닷없이 다니던 직장을 잃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요즘은 기업마다 정규직을 뽑지 않고 있다. 대부분 회사 내 파견업체를 두고 하청 인원을 뽑아 투입한다. 나도 지난 2000년 7월 울산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 사내 하청 파견업체를 통해 들어가 일해 왔다. 비정규직이라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출퇴근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그래서 정규직 직원보다 더 성실히 더 열심히 일해 준 게 사실이다. 잘 보이면 안 잘릴까 싶어서. 그렇게 일해 온 지 10여 년. 하지만 일은 전혀 엉뚱하게 터지고 말았다.

내가 일하던 공정이 사라지고 새 공정이 들어선다고 했다. 노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공사가 진행되는 것이고 이미 정규직 직원에 대한 유급휴무 예우 방식 합의를 끝냈다는 이야기였다. 공사기간이 1년이라고 했다. 정규직은 모두 유급휴가 받으며 1년간 지내다 1년 후 새 공정 자리에 일하러 출근하면 된다. 하지만 하청인 나는 찍소리 한 번 못 내보고 정리해고 당하고 말았다. 억울하기도 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두렵기도 했지만 대기업의 큰 흐름에 저항 해 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앞으로 10년, 농사 배워 살아보자

'이웃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 힘을 통해 또 다시 취직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나이 47살. 지금처럼 10년 후 또 이런 비참한 현실과 맞닥뜨린다면 그땐 어떻게 할까? 그 땐 나이 57살. 지금도 나이 많다고 나를 써 줄 업체가 드문데 그 땐 취직자리가 더 어렵지 않겠나?'

이런저런 생각에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은 나날을 얼마간 보냈다. 그때 또 다시 지금처럼 황당하게 잘린다면 어찌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 행을 감행한 것이다. 제주도 가서 친환경 감귤 농사나 지으며 살아 보려고.

'그래... 이래사나 저래사나 10년은 간다.'

차라리 시골가서 농사 배우며 10년 보낸다면 배운 농사 기술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먼저 어느 지역으로 갈지 갈피를 잡아야 했다. 완주 쪽도 가보고 영덕 쪽도 돌아보았다. 제주도도 사전 답사를 해 보았다. 제주도가 마음에 와 닿았다. 육지는 별다른 특색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과 언어구조, 생활습관이 확연히 육지와 차이가 났고 이왕 귀농이라는 모험을 해 볼 양이면 좀 더 특이한 곳으로 귀농해 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시에서 단순노동만 하고 살아 온 나는 농부가 지어낸 농산물을 사먹을 줄만 알았지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상태지만, 급박한 상황에 처한 처지라 심사숙고할 새가 없었다. 그래서 성급하게 귀농 결정을 내렸고 실행에 옮겨 버렸다.

"차라리 시골가서 농사나 지어먹고 살까?"

도시인들이 너무도 쉽게 내뱉는 이 말에 농부들은 코웃음 친다. 1년만 시골서 농사지으며 살아보고 그딴 소리 하라고 한다. 농사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 했었다. 봄에 그냥 땅에 씨 뿌려 두면 알아서 자라고 열매 맺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을 가을에 수확만 하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이제서야 어느 정도 알 거 같다.

'친환경 귤농사 결코 쉽지 않네'

나는 친환경 귤농사에 관심 많아 귤에 대해 배우고 있다. 제주도 내려와 귤농사 배운지 지 50여 일째. 농사라는 게 결코 쉬운 것도 만만히 볼 일도 아님을 절실히 느꼈다. 도시 노동자는 출근시간 퇴근시간이 있고 휴일도 있다. 또한 한 달 후면 꼬박꼬박 노임을 받아 생활한다. 매일 출근해 같은 일 되풀이 하고 월급을 타는 것이다.

하지만 농사는 변화무쌍하다. 굴삭기, 트랙터, 경운기, 트럭과 같은 농기계 운전은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하고 낫, 호미, 곡괭이, 삽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망치나 톱, 절단기,용접기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지역 흙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날씨에도 민감해야 한다. 가지 관리, 꽃 관리, 열매 관리, 뿌리 관리를 잘해서 농작물의 생태계도 잘 알아야 한다. 갖가지 잡초와 언제 출몰할 지 모르는 병충해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울산에서 직장 생활만 하고 단순 노동만 하다 제주도 내려와 귀농 한답시고 농사를 배우면서 단순 노동보다 농사가 백배는 더 복잡하고 어렵고 힘듦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농사를 너무 만만히 보고 쉽게 여겼다. 도시생활은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다. 분업구조라 돈만 있으면 대부분 일이 진행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골생활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복합구조라 모든 일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일로 가득하다. 시골에 살려면 적어도 도시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고 움직여야 한다. 지난 50여 일간 농사를 배우면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까?"

그 말을 너무도 쉽게 많이 내뱉은 나 자신이 부끄럽다. 농사에게도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도시인들이 아무리 화나고 짜증나도 그런 말을 쉽게 내뱉지 말기를 바란다. 시골에서 농사 배우며 직접 살아보니 그 말은 곧 도시생활이 호강에 겨워 내뱉는 푸념어린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라는 것, 그리 말처럼 만만히 여길 일이 아님을, 또한 쉽게 생각할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한자를 잘 모르지만 이런 글귀가 떠오른다. 농사천하지대본 이라는 말.

그 뜻을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글 귀가 찾아 졌다. 農者天下志大本, 농사천하지대본이란: 농업은 이 세상의 가장 으뜸이 되는 근본이라는 뜻. 그러니 그냥 지나가는 말로 허투루 심심해서 쓰 일 말이 아닌듯 하다.

"시골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 볼까?" 이 말은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 쓰도록 해야 할 문장이다. 그것이 내가 제주도에서 50여 일 귀농살이 하면서 알게 된 진리다. 어쨌거나 나는 제주도로 귀농 농부 되려고 왔고 부지런히 공부 중에 있다. 몇 주 전 접붙임 작업을 했었다. 뿌리 있는 귤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거기다 작은 흠집을 내어 잔가지를 짧게 잘라 모퉁이에 붙혀 두었었는데 거기서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신기했다. 생명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 귤나무 새싹처럼 강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제주도서 터를 잡고 뿌리 내리고 정착해야 겠다. 그것이 울산에서 제주도로 귀농한 이유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희망이다.

제주 온 지 50일이다. 오늘 비가 와서 귤농장에 못 나갔다. 집에서 새로운 희망을 설계 해 본다. 접붙인 귤나무의 새싹처럼.

접 붙인 귤나무 새 순신가하네요. 처음 보았습니다. 가지를 잘라 붙혔는데 이렇게 새순이 돋아 났어요. 생명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귤나무 새순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 변창기


덧붙이는 글 제주도 땅에 귤 밭이 참 많은데도 내 귤 밭은 단 한 평도 없고요
집도 참 많은데 내 집은 없네요.
내 귤 밭과 내 집은 언제쯤 생겨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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