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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에 뿌려진 볍씨는 더이상 씨앗이 아니다

이천쌀의 한살이(3)

등록|2010.04.28 15:39 수정|2010.04.28 15:39
싹튼 볍씨가 모판에 뿌려지는 것은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되는 것과 같다. 자궁벽은 모판이요, 자궁(아기집)은 온실이다. 모는 모판에서 달포 못 미칠 때까지 자란 후에 논에 심겨진다.

모판에 뿌려진 볍씨는 닻처럼 뿌리를 땅에 내리고, 돛처럼 떡잎을 하늘에 올리며 자리를 잡아간다. 점이었던 씨앗이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입체가 되면서 완전한 식물체로 자란다.
한 톨의 볍씨 안에 있던 씨눈은 단지 가능성만 가진 작은 점이었으나, 온도와 습도의 적당한 조건을 만나니 제 모양을 갖춘 입체가 되었다. 내재적인 가능성과 외부적인 환경이 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온전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볍씨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의 양분을 가수분해효소로 분해하고, 사이토키닌과 옥신 등의 호르몬을 만들어서 씨눈의 자람을 부추긴다. 모판은 갓난아이 같은 싹튼 볍씨가 잘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 모판은 가로 60cm, 세로 30cm, 높이 3cm의 사각 상자다. 그 안에 상토를 채우고 물을 충분히 적신 후 볍씨를 뿌리고 다시 상토로 덮는 모판 만들기 작업을 한다.

상토는 모가 뿌리를 잘 내리고 지탱할 수 있도록 부드러우며, 스펀지처럼 물을 잘 머금고,
모가 자라는데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으며,  4.5~5.5Ph의 알맞은 산도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산흙에 낙엽 등을 섞어서 만들었으나 요즘은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시판상토를 사용한다.

▲ 모판상자 만들기 ⓒ 박종인





4월 16일
모판에 상토를 담고 싹튼 볍씨를 뿌려서 모판상자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모판상자에 상토를 2/3가량 채우고 볍씨를 골고루 뿌린 후 다시 흙덮기(복토)를 하였다.

한 상자당 뿌리는 볍씨의 양은 130g인데, 대부분 농가들은 더 촘촘히 뿌리는 경향이 있다.
씨앗을 많이 뿌리면 많은 모가 자라면서 서로 부대끼고 약해져서 더 쉽게 병에 걸린다. 한 교실 안에 50명의 학생이 수업할 때와 30명의 학생이 수업할 때의 학습환경을 비교해보자.

약한 많은 모보다는 튼실한 적은 모가 풍성한 가을걷이의 꿈을 이루어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 병약한 모는 자라면서도 비실할 수밖에 없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듯 '모'를 보면 '벼'를 알 수 있다.

▲ 1상자에 130g 볍씨 파종 ⓒ 박종인



모판 1상자에 130g의 볍씨를 뿌릴 경우 볍씨 1포대(20kg)로는 150상자의 모판을 만들 수 있다. 촘촘하게 뿌리는 경우는 종자 1포로 100상자밖에 만들지 못하는데, 이 경우는 상자당 200g 정도를 뿌린 경우이다.

이제는 모판만들기도 대량으로 한다. 이천은 농협이나 육묘장의 시설화된 하우스에서 공정육묘나 일반육묘를 통해 전체 모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다.

▲ 볍씨 파종기를 이용한 모판만들기 작업 ⓒ 박종인




▲ 볍씨파종기 ⓒ 박종인



   
볍씨를 뿌린 후 모판을 거적 등으로 덮어 어둡게 한 상태로 30~32℃의 기온에서 이틀 정도 두면 싹이 5~10mm로 자라게 된다. 이 과정을 출아작업이라고 한다. 어린 싹은 뾰얀 우윳빛인데, 이 싹이 갑자기 밝은 빛에 노출되면 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시간을 두고 시나브로 빛과 온도에 적응시킨다.

▲ 벼 출아 1 ⓒ 박종인




▲ 벼 출아 2 ⓒ 박종인




▲ 벼 출아 3 ⓒ 박종인





모판에 뿌려진 싹튼 볍씨, 이제는 더이상 씨가 아니다. 씨가 모로 탈바꿈하면 다시는 씨로 돌아갈 수 없는 법, 오로지 뿌리를 뻗고 잎을 내어 자라는 것만이 살 길이다.

싹튼 볍씨여, 잘 자라다오. 아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DAUM 블러그 <시골뜨기의 잠꼬대>에도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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