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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인형을 만들었을까

발레 <코펠리아>에서 현대인의 쓸쓸한 초상을 읽다

등록|2010.04.29 14:46 수정|2010.04.29 14:46

발레 <코펠리아>인형 코펠리아와 그녀를 만든 마법사 코펠리우스 ⓒ 국립발레단



S#1 인형의 역사를 생각한다

제게는 꽤 많은 컬렉티블 바비인형이 있습니다. 물론 시대별 패션을 정교하게 고증해놓은 탓에, 공부를 위해, 사 모은 것이지요. 인간은 언제부터 인형을 곁에 두었을까요? 인형은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생활의 일환을 구성해왔습니다. 놀이기구, 혹은 종교적 형상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구요.

초기 인형들은 대부분 흙이나 모피, 나무로 만들어졌죠. 바빌로니아 시절 움직일수 있는 팔을 가진 석회 인형 파편이 최근 발견되었고, 이집트의 부유한 가문의 무덤엔 도자인형이 함께 매장되었으며, 그리스와 로마 시대 아이들의 무덤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여아들은 성인식을 마친 후, 여신의 신전에 나무로 만든 인형을 헌납하는 관습까지 있었다는군요. 이미 기원전 600년경, 사람들은 인형을 통해 사람의 형상을 재현하고 '닮은 꼴'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답니다. 결국 움직이는 사지와 착탈식이 가능한 인형의복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죠. 역사가 정말 길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국과 러시아의 도자 인형들을 한때 사모으곤 했습니다. 앨라베스터 인형이라고 불리는데, 그건 인형을 만드는 흙의 이름을 딴 것이지요.

<코펠리아>의 원작자 호프만호두까기 인형의 원작자이자 발레 코펠리아의 원작 <모래인간>의 작가 ⓒ 베를린 국립미술관



오늘 소개할 발레 <코펠리아>는 이 인형을 둘러싼 해프닝을 그린 작품입니다. 발레작품 '코펠리아'는 희극입니다. '지젤'이란 슬픈 비극 발레가 있다면 그 대칭에는 이 '코펠리아'가 서 있습니다. 이 코펠리아는 에른스트 테어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이라는(꽤 긴 이름이죠?) 작가의 소설 작품에 기초한 발레입니다. 이 호프만이란 작가, 알고보면 꽤 유명한 18세기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이지요. 독일에서 태어나 판타지와 공포물 장르의 글을 주로 많이 남겼답니다. 이외에도 음악평론과 작곡, 기능공에 캐리커쳐를 그리는 만화가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로 못하는 게 없는 '르네상스적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작곡가 자크 오펜바하의 가상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저자이기도 하죠. 오늘 소개할 코펠리아는 그의 작품 <모래인간>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발레<코펠리아>축제를 위해 춤을 추는 스와닐다 ⓒ 국립발레단




이 작품의 이름이 '코펠리아'인 이유는 소설 속 주인공 나타니엘이 사람으로 착각, 사랑에 빠지는 '올랭피아'와 '코펠리우스'의 합성어죠. 발레 코펠리아에선 인형을 만든 괴팍한 마법사이자, 과학자의 이름이 코펠리우스였습니다. 사실 발레 코펠리아는 마냥 웃기는 '가족을 위한 작품' 만은 아닙니다.

작가 호프만이 활동했던 18세기는 혁명 이후, 시민세력과 구 귀족 세력 간의 치열한 다툼 끝에 민주정이 들어서지만, 나폴레옹이 황제에 등극하면서 많은 지식인은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 대해 환멸에 빠졌고, 사회적 진실보단 현실도피용 몽환과 판타지에 빠져듭니다. 호프만의 작품은 로마 시대 이후로 내려오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 이데아를 포착하는데 실패한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았지요.

자 이제 작품 해설로 들어갑니다. 극이 시작되면 마을 광장이 보입니다. 무대 한쪽엔 여주인공 스와닐다가 사는 집이, 또 다른 한쪽엔 예쁜 이층 발코니가 있는 집이 있죠. 이곳엔 마술을 부린다는 소문이 도는 장난감 제조업자 코펠리우스가 살고 있습니다. 창가에서 책을 들고 읽고 있는 한 소녀. 바로 코펠리아 입니다. 그녀는 코펠리아에게 인사를 나눕니다만, 전혀 무반응을 보이는 그녀. 삐지기 시작합니다. 요즘 애들 표현대로 하면 한마디로 '헐'이 된 거죠.

발레<코펠리아>동네 처녀들과 코펠리아의 첫 대면 ⓒ 국립발레단



동네에서 그래도 가장 예쁘다는 말을 듣는, 자칭 '침 좀 뱉는' 우리의 스와닐다. 자신의 우호에 찬 목례와 거동에 아랑곳하지 않는 코펠리아에게 잔뜩 화가 납니다. 이도 모자라, 자신의 애인 프란츠는 코펠리아에게 관심을 보이지요. 아주 염장을 지르는군요. 애인 프란츠, 코펠리아에게 던지는 시선이 심상치 않습니다.

애인에게 사랑을 빼앗길까, 자신의 화려한 춤 솜씨를 보여주는 스와닐다. 유독 발레작품을 보다보면, 극의 전개와 상관없이 군무가 등장하거나, 솔리스트의 화려한 발레 테크닉이 삽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걸 흔히 발레용어로 '디베르티스망'이라고 하는데요. 말 그대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무용입니다. 무용의 역사 자체가 무용수의 화려한 기술을 중심으로 볼거리를 제공해 온 일면이 녹아 있는 것이죠.

스와닐다의 춤이 끝나면, 지방영주가 선사한 거대한 신종(댕그렁 댕그렁 그 종이요)이 등장합니다. 당시야 교회를 중심으로 방사형 혹은 오밀하게 촌읍을 구성하고 이것이 모여 시를 이룰 때였으니, 종을 다는 일은 꽤나 큰 행사였을 터. 시장까지 이 축전에 와서 종을 다는 날 결혼하는 커플한테는 '결혼지참금'까지 주겠다는 근사한 약속까지 합니다.

그런데 애인 프란츠는 코펠리아에게 푹 빠져 있으니 속이 상할대로 상한 스와닐다. 2막이 시작되면 동네의 침뱉는 애들이 코펠리우스 박사를 괴롭힙니다. 이때 땅에 떨어뜨린 열쇠를 드는 스와닐다의 친구들, 그녀들의 제안에 따라 스와닐다는 의문투성이인 박사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집은 황량합니다. 내부엔 이상한 형태의 광대인형, 목이 없는 인형, 또 다른 소녀 인형들이 즐비하죠. 아무리 만져도 반응이 없는 코펠리아. 그제서야 스와닐다는 그녀가 인형임을 알아차립니다.

발레 <코펠리아>코펠리아로 위장한 스와닐다 ⓒ 국립발레단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프란츠도 창을 통해 집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분노에 찬 코펠리우스가 들어와 프란츠에게 마법을 걸어 잠들게 합니다. 스와닐다, 이 난국을 어떻게 빠져나갈까요? 코펠리우스의 옷을 뺏어입고 인형인 척 하는 스와닐다.

알고보니 이 박사, 약간 변태스런 기운까지 있습니다 그려. 마치 영화 <공기인형>에서 노조미로 분한 배두나를 매일 밤, 휠체어에 태워 공원으로 산책가는 남자와 닮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대신 인형을 만든 것인데요. 스와닐다가 살아움직이는 인형인줄 착각을 하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되죠. 결국 끝에가선 인형은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발레<코펠리아>중스와닐다와 프란츠의 결혼식 장면 ⓒ 국립발레단




원래 코펠리아의 스토리는 좀 다릅니다. 스와닐다가 애인을 구해내지만 이 과정에서 박사의 집은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죠. 박사는 그녀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스와닐다는 소원하던 프란츠와의 결혼식에서 시장에게 받는 지참금을 주겠다며, 무마합니다. 물론 시장은 박사에게 황금단지를 주며 이 사건을 묻어버립니다. 아이들을 위한 버전으로 안무가 제임스 전 선생님이 축약본으로 만들어서일 겁니다.

이번 국립발레단의 <코펠리아>는 가족들과 아이들이 볼수 있도록 해설을 곁들였습니다. 어른 수 만큼의 아이들이 있더군요. 발레 레퍼토리 중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지요. 실제로 1870년 5월 25일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에요. 일본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만든 발레의상이 어찌나 화사하던지, 봄꽃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발레 <코펠리아> 테마사진 중세명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프란츠, 코펠리아, 스와닐다 ⓒ 국립발레단





사실 이 작품은 인격을 대체할 수 없는 가상의 현실을 다룬 작품으로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갑자기 성인버전이 되긴 하는데요. 스와닐다와 프란츠의 사랑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런 부분을 읽어내기 어렵죠. 인형과 사랑에 빠진 박사. 그것은 당대, 무대 속 화려한 현실과는 달리 암울한 황제의 독재로 이어지던 시대, 꿈을 상실한 채, 몽환의 세계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야 했던 지식인들의 초상이 담겨 있습니다.

***
본 공연은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립니다.

이번 리뷰는 내용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풀어썼습니다.  이유는 발레는 무언으로 몸동작과 마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처음 보시는 분들은 의외로 극 전개가 이해가 잘 안 갈 때가 많습니다. 내용을 전체적으로 훓어보고 가시면 극 전개 중 무용수들의 테크닉과 움직임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겠죠?
덧붙이는 글 다음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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